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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애 Jan 13. 2021

눈 내리는 날

추억 소환

낮부터 눈이 내렸다. 창밖으로 조용히 예고 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세차했으면 억울할 뻔했다.'였다. 지난주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렸고 주말에 잠깐 운전을 했는데 차가 지저분해져 오늘 맘먹고 세차를 해야지 했었는데 눈을 보는 순간 늑장 부리길 잘했다 하며 뿌듯해했다.


순간 핸드폰으로 톡이 왔다.

「 어렸을 때는 눈 오는 거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힘들다. 나이를 먹어가는 거 같다.」


맞다. 나도 어렸을 땐 눈 오는 거 참 좋아했었다. 눈 내리는 날이면 엄마 아빠가 마당을 쓸기 전에 얼른 나가 강아지 마냥 돌아다니고 눈싸움을 하고 누가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드나 내기도 했었다. 물론 결국엔 눈 치우는 것을 도와드려야 했지만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젠 눈을 쓸지도 않고 눈이 온다고 좋아 나가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다만 운전할 일을 걱정하고, 길이 미끄러울 텐데 어쩌지 걱정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재미도 없고, 걱정거리만 늘어가는 거 같다.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던 짱구가 우연히 창밖을 보더니 놀라 베란다로 뛰어 나간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뒤돌아 보는 짱구의 눈엔 간절함이 가득하다.

안돼. 지금 나가면 감기 걸려.
엄마! 조금만 놀다 오자.

조금만 논다는 것은 거짓이다. 나가서 눈을 만지고 싶으니까 나를 설득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리라. 귀찮기도 하고 감기 걸릴까 걱정도 되지만 맨날 눈이 오는 것도 아니고, 눈이 내릴 때 나가서 논 적은 없는 거 같아 눈사람 하나만 만들고 들어오기로 약속하고 꾸역꾸역 나갈 준비를 한다.

   

신나서 눈사람을 만드는 짱구를 보면서도 난 옷깃만 여미며 눈을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고 피할 곳을 찾아다닌다. 지난번 눈은 잘 뭉쳐지질 않아 내가 손으로 눈을 뭉쳐줬어야 했는데 오늘 내린 눈은 잘 뭉쳐져 더욱더 신난 짱구는 만화에서 본 것처럼 자기만큼 큰 눈사람을 만들겠다 눈을 굴리고 다니는데 난 그 옆에서 '그건 만화니까 가능한 거다. 실제로 그렇게 큰 눈사람을 만들면 안 예쁘다.'며 설득을 한다.

 


조정을 통해 서로가 만족할 만한 크기의 눈사람을 만든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두르기만 한 게 미안했던 나는 주차된 차에 쌓여있는 눈을 뭉쳐 짱구에게 던지며 장난을 친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하필이면 그 앞에서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다. 그걸 보고는 짱구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나도 눈싸움하고 싶어.
이제까지 했잖아.
형아들이랑도 하고 싶어.
그럼 짱구가 가서 물어봐. 같이 눈싸움할 수 있는지.

내 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짱구가 무리 중 한 명에게 눈싸움 같이 할 수 있는지 물었고, 아이들은 흔쾌히 좋다고 답한다. 또래보다 한참 어린 짱구랑 노는 게 재미없고 귀찮을 법도 한데 아이들 특유의 친화력으로 잘 어울려 논다. 친구들에게 공격할 때는 세게 하지만 어린 동생에게 던질 때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짝 던지는 것을 보니 고맙고 미안하다. 그러다 눈덩이 하나가 나에게 날라 왔다.

야! 난 아니야! 나한텐 공격하지 마!

이렇게 말은 했지만 순간 나도 눈을 뭉쳐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어 졌다. 그리고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연신 웃으며 형들 따라다니며 눈을 뭉치고 부지런히 던지는 짱구를 보니 괜스레 눈싸움을 말렸던 내가 미안해진다. 나도 어렸을 때 감기 걸린다, 넘어진다며 따라다니며 말리셨던 엄마를 피해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고 놀았었는데 어른이 되니 어렸을 적 엄마가 했던 것처럼 짱구를 말리고 있다. 나도 저렇게 아무 걱정 없이 눈이 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오래간만에 기억 저편에 간직해둔 행복한 추억 하나를 소환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나도 잠깐이지만 어린아이처럼 웃을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오늘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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