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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고고 May 19. 2024

쉼에 익숙한 순간이 많아지길 응원하며

부모님, 쉰다는 것이 어색하고 두려운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풍덩풍덩.

개굴개굴.


부모님이 귀촌을 위한 공간이 있어요. 가족끼리는 이곳을 별장이라고 칭하는데요. 반팔을 입을까, 긴팔을 입을까 고민하는 딱 이 시점에 그곳에 가는 걸 저는 좋아합니다. 해가 지려는 시점에 개구리가 갑자기 합창을 시작하는데요. 논 근처에 가면 시끄러운 공연장의 스피커 앞에 서있는 기분이 든답니다. 귀 주변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소리가 엄청 큰데 모순적이게도 시끄러운 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아요. 괜히 저녁에 논 근처에 가서 소리 한번 크게 '개! 굴!'이라고 외쳐서 개구리들을 다시 깨워버리거든요. 그리고 밖에 나와 숯에 불을 올려 구워 먹는 고기가 정말 맛있어요. 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5월 중순이 지나는 이 시점에도 밤에는 긴팔과 긴바지를 입어야 하는데요. 적당히 껴입고 불 근처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면 배도 부른데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에 기분까지 배불러지는 기분이 든답니다.


사실 이번에 내려와 고기를 먹게 된 이유는 부모님의 귀촌이 진짜로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빠에게 퇴사를 축하한다고 이야기했더니, 퇴사가 축하할 일이냐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의 의지로 일을 마무리한 것이지만, 부모님에게는 퇴사라는 것이 매일 나가던 일터에 가지 않게 되고 소득도 없어지는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일을 하다가 이제 온전히 본인의 시간만 있으니 얼마나 어색할까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색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님이 안쓰럽지만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떠오르는 햇살과 해가 지면 울어대는 개구리에게 더 익숙해지며 기대하던 온전한 귀촌의 삶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2024. 05. 18

(시골에 가면서 충전기를 안 가져가서 하루 늦게 올려봅니다)



ps. 돌미나리도 밭에서 뜯어다가 고기를 구워 먹었어요. 근데... 고기의 연기가 엄청나더라고요. 바람 한번 불면 눈으로 연기가 돌진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였어요. 제가 고기를 구워보겠다고 까불다가 양파 까며 울듯이 한바탕 눈물을 쏟았는데요. 아빠는 눈이 안 매운 건가요.. 안 매운 척을 하시는 걸까요.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굽던 아빠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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