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어차피 계속 쓸 거잖아?
누군가 내 직업을 묻는다면 아주 당당하게 턱을 꼿꼿이 세우며 '나 글쓰는 사람이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로지 '글'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 고급 시계 등을 선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한 바람임과 동시에 30대가 되어서야 꿈을 찾은 나 스스로를 향한 자문으로 시작된 1년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 어린 20대 중반의 나는 그간 나 자신에 대해 꽤 탐구를 했다 생각했지만 '일'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였다. 그저 여행만 실컷 다니고 친구들과 놀기 바빴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나는 무슨 일을 잘하고 또 잘 맞는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멋모르고 시작한 공무원이었다. 단순히 '잘 맞겠지, 뭐. 안정적이라잖아?' 이 정도의 가벼운 감각만으로 나는 나 자신을 공무원 세계로 밀어 넣었다.
출근 첫날부터 정신이 아득해졌다. 평생 이 일을 해야 해? 평생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같은 일을 해야 해? 내 일도 아닌데, 시키는 일만 하면서···?
시험 과목에 '행정학'이 있었기에, 공무원 조직이 어떻고 무슨 일을 하고 진급 체계까지도 샅샅이 공부하고 암기했다. 그러니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답을 맞히기 위해 그저 글로써 읽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출근 첫날에 나는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내가 '정석적으로 회사에 다니는 삶'에 취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 '취약함'이라는 게 어느 정도였냐면, 가만히 있으면 월급 따박따박 받으며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내게는 전혀 미래가 없다고 느낄 정도. 빛이라고는 한 점 없는 단지 새까만 어둠만이 가득한 정도. 나는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라는 걸, 타고난 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가 막 좋아하겠냐마는 나는 그걸 아예 못 견딜 정도였으니 단순히 의지로 버틸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참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와 돌아보면 그 생각이 틀렸다. 그때 그렇게 빨리 그만두지 않았더라도 나는 결국은, 언젠가는 반드시 도망쳤을 것이다. 그게 내 살길이었으니까.
그 후 나는 '내 일'을 찾아 방황을 시작했다. 모험이라는 알록달록한 가면을 쓴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고, 몹시도 길었다. 나는 안 해 본 게 없다. 내가 뭘 좋아하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찾을 수 있지? '좋아하는 일을 찾는 법' 주제의 영상은 모조리 섭렵하고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따라해봤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다. 아, 이건가? 이거 내가 좋아하나? 어렴풋한 확신만이 눈앞에서 얼쩡거리기만 할 뿐. '아! 이거야! 이거 내 일이야!' 하는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어렴풋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남편과 함께 세계 곳곳을 방랑하듯 살았다. 어렴풋이긴 해도 어쨌든 나는 좋아하기는 한 요소들에 온통 둘러싸여 살고 있었으니 만족했다. 분명 만족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숨통이 다시 꽉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오래 방황했음에도 아직도 그놈의 '내 일'을 못 찾았다는 답답함에서 기인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네 번째 모험지, 네 번째 나라인 폴란드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일'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그간 이걸 찾으려 아주 열심히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내 노력이 무색하게 그 계기는 무척이나 사소했다.
아! 이거다! 이거, 내 일이야!
속으로 조용한 비명을 질렀다. 그 기쁨은 꽤나 컸지만, 밖으로 마음껏 분출해 버리면 내 이 열정이든 흥분이든 아이디어든 뭐든 바스스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그냥 목 뒤로 삼켰다. 그만큼 소중하다 느껴졌다.
하루 종일 혼자 노트북을 붙잡고 글만 냅다 쓰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흥분되고,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얼른 쓰고 싶어서 더욱 손가락 놀림에 박차를 가하고. 허리가 끊어질 듯 찌릿찌릿한데도 쉬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조금만 더 쓰고, 이 장면까지만 쓰고···. 내가 만들어내는 원고 하나하나들이 소중하고 애틋했다.
진정한 글쟁이가 되기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에세이, 여행기, 블로그, 브런치, 소설, 시나리오(단막극, 영화, 드라마), 웹소설, 그리고 장르소설까지 범위를 넓히며 나름의 고군분투기를 썼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대부분이 나태하고 여유로운 삶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할 때는 또 알아서 인생의 큰 흔적이 남는 순간마다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이번은 그보다도 더더, 더더 열심히 살았다.
1년 간 써낸 글의 '양'부터가 그를 증명했다.
이 글에 기록한 첫 6개월 간의 완고는 이러했고,
소설 : 단편3 / 중편2 / 장편3
시나리오 : 극영화 100분 분량 4
대본 : 단막3 /미니시리즈2 (1,2화)
항마력이 딸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가장 처음에 쓴, 최초의 소설 2개를 포함하면 공백 포함 총 글자 수는 100만자를 넘었다.
이후의 6개월 역시 속도는 비슷했다.
소설:
1) 중편->장편으로 분량 늘림(38,000자 추가)
2) 장르소설 1개(장편, 130,000자)
대본(드라마):
1) 8부작 미니시리즈(1,2화 대본, 52,000자)
웹소설:
1) 연재&출간용 메인 작품(장편, 현 600,000자 이상)
2) 공모전용 서브 작품(67,000자)
또 다른 반년 동안 887,000자 정도를 썼으니, 1년 동안 거의 200만자에 가까운 글을 만들어 낸 셈이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해서 유의미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닌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나름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게 참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더라. 그리고 다행히, 허리 건강과 맞바꾼 노력에 응답을 해주듯, 절망으로 꺾이기 전에 나를 세워준 두 개의 빛이 있었다.
웹소설 대형 출판사 컨택과 계약, 그리고 교보 스토리 대상 최종심.
웹소설 컨택도 컨택이지만, 나는 교보 스토리 공모전에서 최종심에 올랐다는 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믿기지 않는다. 전문가분들이 내 글을 보고, 삼천편이 넘는 우수한 작품들 중에서 내 것을 뽑아주셨다고···? 나도 내가 만든 이야기를 좋아하긴 한다만 씁, 이래도 되나? 어째서인지 기묘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대형 공모전 최종심 선정, 글쓰기 독학 1년 만에 이룬 쾌거. 최종심 리스트 발표부터 최종 수상작 발표 사이의 2주 동안 나는 아닌 척하면서도 사실 거대한 희망을 품고 살았다. 그래서 그저 최종심에 그쳤음을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을 때 내게는 잔잔한 파도에서 거센 폭풍우로 몸집을 키운 슬픔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여유롭게 눈물을 짓고 있을 새는 없었다.
내게는 하늘이 두쪽 나도 지켜야 할 계약작 마감이 있었고, 이번 달 다음 달 다다음달 공모전 마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며칠간은 '교보' 생각을 하기만 해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울렁이는 아쉬움을 붙잡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최종심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나 스스로에게 했던 무수한 칭찬은 어느새 형체가 흐트러지고, 내 머릿속은 '왜 안 됐지? 역시, 영 아니었나?' 같은 의문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던 그 대단한 아쉬움은 겨우 며칠 뒤에 막이 내려졌다. 엄마의 말 덕분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계속 쓸 거잖아?
그래. 맞다.
엄마의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나는 쓰고 있던 장르소설의 다음 장면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결과야 어떻든 나는 계속 쓰고 있었고, 앞으로도 쓸 것이고, 어차피 계속 쓸 것이다.
1, 2년 안에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모차르트도 10년을 걸렸다며, 제발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네 글을 찾으라고 남편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않았'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이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완벽히 인지하고 또 인정하게 되었으니까.
붙잡아지지 못한 기회를 아쉬워 말자. 애초에 그건 내 것이 아니었고, 내 자리가 아니었다.
이 일은 나의 메인을 이룰 것이다.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고 때때로는 다른 직업에도 발을 담가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로지 이 글이라는 걸 쓰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뿐. 내가 평생 지고 갈 일은 오로지 이것뿐이다.
그러니 열심히 하자. 요령을 피우지 말고, 지름길을 찾지 말고. 뒤늦게 찾은 나의 일, 정직하고 성실하게 걸으며 나의 길을 찾아가자. 1년 동안에도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었으니 앞으로는 더 할 테다. 뭐든지 받아들이고, 뭐든지 최선을 다하자.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 집중하되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모험을 찾아 헤매자.
언젠가는 내게 찰떡같은 장르, 찰떡같은 글의 분위기가 만들어질 지어니.
기죽지 말고 싸워.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