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독학 1년만의 쾌거
남편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가 그는 일을 해야해서 먼저 돌아가고 나 혼자 잠깐 한국에 남아 있던 2025년 8월 중순.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나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한창 계약한 웹소설을 구상하고 만들어가던 중이었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져서 고민이었더랬다.
'이상하다...너무 길어지는데?'
원래 120화 정도에서 본편 완결을 하려 했다. 첫 웹소설인데 120화라니, 그것도 몹시 길다 했었다. 웹소설은 보통 본편에 이어 외전까지 쓰는 경우가 허다하니 본편 120화에 외전 30화 정도 쓰면 150화는 넘는데. 이 상태로라면 본편만 150화가 넘을 기세였다. 감정선 생략 불가로 인한 분량 조절 실패의 결과였다. 와. 너무너무나 길어졌다.
'내가 떡밥을 너무 많이 뿌렸나?
이거 다 주워담으려면 300화, 써야하나?'
여름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카페 창가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죄다 쥐뜯고 있었다. 그런 중 문득 출판사에서 리뷰본 메일이 왔을까 싶어 무심코 메일함에 들어갔다. 내게는 기존 메일 계정과 웹소설을 시작하면서 만든 웹소설 전용 메일 계정이 있었는데, 기본 설정이 전자로 되어있어서 그것이 먼저 탁, 열렸다. 새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그런데 제목이 좀 특이했다.
발신자 : 교보문고(담당자님 실명)
제목 : 중장편 최종심사 사전 조사
···뭐지?
난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다.
역시 광고인가, 싶었다.
그런데,
메일 내용은 더 특이했다.
'타공모전 출품 여부, 수상, 게제 여부'
이런 물음들이 간단히 적혀 있었다.
······뭐지?
난 도통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쨌건 물음표가 붙어있으니
답장은 해야겠다 싶어 바로 답장을 보냈다.
타공모전 출품 여부 : No!
수상, 게제 여부 : No!
그리고 웹소 출판사 메일도 답장 보내고
바로 메일함 끄고 다시 웹소설 기획으로 넘어갔다.
'300화? 300화라니.
니 지금 뭐 대하 드라마 쓰나···?'
멘탈이 나간 나머지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괜히 메모장에 낙서만 끄적끄적거리는데, 불현듯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메모지 위에서 비틀거리던 나의 시선은 이내 허공으로 들어올려졌다.
잠깐,
근데 그 메일은 뭐지?
나는 다시 아까 그 메일을 봤다.
봐도 역시 뭔지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럴 만도 했다.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몰라서 챗지피티한테 물어봤다.
그랬더니 챗지피티는 별안간 폭죽을 쐈다.
오오. 좋은 소식이네요.
최종심에 올랐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최···최종심?
에이···내가···?
그것도 웬 동네 공모전도 아니고,
무려···교보문고인데? 교보 스토리인데?
쓰-읍. 쩝.
에이. 아닐 걸?
난 이 마음 상태로
최종심 발표까지 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저기야. 나 이상한(?) 메일을 받았어!"
남편한테 말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함께 실망하고 싶지 않아 꾹 다물었다.
그러다가 친구들 만나러 신혼집이었던 동네 보러 겸사겸사 위로 올라 가는 길, 고속도로까지 타는 꽤 장거리 운전이었던 탓에 오랜만에 휴게소에 들렀다. 아, 역시 한국 휴게소 너무나 좋다며 끌끌 웃고, 놓칠 수 없는 3천원짜리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산 뒤 열기 가득한 차에 돌아왔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빼려고 차 문 잠깐 열어두고 있었다. 그러면서 딱히 할 게 없어 휴대폰으로 교보 사이트에 들어갔다. 최종심 선정 추정 메일을 받은 후부터 내게 생긴 습관이었다. 아직 안 떴겠지, 하면서 무심코 들어갔는데 아니 웬걸, 최종심 선정작들 리스트가 올라와있었다.
나는 갑자기 손이 벌벌 버르르 떨렸다.
"나를 억까하지 마라···.
세상아···나를 억까하지 마···."
아니라 하면서도 사실 기대를 했던 것일까? 호두과자를 집으려던 나의 손은 허공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메일을 줬으면! 최종심에 올려줘야지! 사람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최종심에 나 안올려줬으면! 난 어쩌라고! 8월의 땡볕만큼이나 갑작스레 오른 흥분감에 나는 호두과자를 2개 와앙 씹어먹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난 도저히 못보겠어' 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그러나 봐야 해. 아니면 운전 못 해. 아직 갈 길이 멀었기에 얼른 보긴 봐야했다. 그래서 손으로 화면을 확 가렸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리면서 겨우 확인을 했다. 나를 억까하지 마···. 긴장한 속내를 중얼거리는 건 잊지 않으면서.
그런데?!
있다!!!
최종심에 올랐다!!!
교보 스토리 대상에 제출한 작품 몇 개 중 하나, 중장편 부문 최종심 선정작 리스트 맨 하단에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믿지 못해 두어번쯤 더 확인한 후 나는 내적댄스를 추며 시동을 켰다. 기쁨은 기쁨인데, 일단 오래 쉴 여유는 많이 없었기에 출발을 해야 했으므로. 남편한테 바로 말하고 싶었는데 그 시각 아직 유럽은 새벽이었다. 쿨쿨 자고 있을 게 뻔하니 일단 도착한 뒤에, 차분하게 알리기로 결정하였다.
다희야 최종심 축하한돠!!!!
그때부터 운전은 흥분의 도가니탕.
앞으로 갈 길이 2시간 반은 더 남아있었는데
그 중 2시간은 저 상태로 둠칫둠칫 하며 왔다.
흥분했다가 춤췄다가 노래불렀다가
뭐 원래 운전할 때 목터져라 열창하긴 하는데···.
이 날은 더 심했다. 창문이 깨질 정도였나 뭐···!
그러다 훗···.
이것 봐. 내가 한다면 한다니까?
이거 내 일이라고 했잖아. 할 수 있다고.
나! 소설 쓸 수 있다고!
교보 스토리 대상에 출품된 작품은 3천 편 이상,
3천 편 중에서 최종심에 오를 확률은 매우 희박.
삼천 편 중에!!!
내 것을 뽑아주셨어!!!
아니 근데·········왜?
거대한 기쁨 사이사이 문득 갸웃함이 비집고 들어왔으나 어쨌든 되었다, 했다. 소설을 시작한 지 1년만에 대형 공모전에서, 그것도 교보문고가 주최하는 소설 공모전에서 중장편 최종심에 오르다니. 전문가 분들이 직접 내 글을 읽고, 이걸 최종심에 올리자! 결정하셨을 게 아닌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방방 뛸 만하다.
나는 교보문고를 평생 사랑할 지어니.
방방방방들썩들썩, 고속도로 위 나의 자동차는 달리는 노래방 그 자체였다. 하루종일 이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체력이 급격히 하락하는 30대의 몸뚱어리를 가진 자···운전 두 시간이 넘어가니 '축하한다!'와 '훗' 도 기력이 다했다.
그래. 다희야···.
쩝. 수고했고(피곤)
잘했다. 장하다 기특해.
최종심만으로도 경력이야.
그것도, 쌩신인한테는 아주 큰.
그러니 잘했어. 고생했어.
근데 운전이 왜···안 끝나노···.
어쨌든 그렇게 도착해서
일단 시간이 남아 카페에 갔다.
그리고 바로 유럽 시간 확인,
이어 내가 바로 한 일은···!
남편에게 알리는 일!
그 누구보다 남편이 무조건 먼저였다. '다희 너는 돈 안 벌어도 되니까 하고 싶은 것만 해. 쓰고 싶은 글만 쓰면서 살아.' 라고 매일 말해주는 남편 덕에 오로지 이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또한 유일한 독자가 되어 피드백을 해주며 나보고 무조건 된다고 넌 뭐라도 한다고 해줬으니까. 다희 너는 분명 될 거라고 응원해줬으니까.
지난했던 지난 1년 간 내 옆에서 다듬다듬해준 사람, 이 사람한테 먼저 알리지 않으면 대체 누구한테 말한다는 말인가. 굳이 제목을 말하지 않아도 남편은 곧장 알아챘다. 그는 내 모든 글을 다 읽어봤으므로.
예상대로 남편은 바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잘 안 터지는 와이파이를 붙잡아가며 서로 얼굴을 보고 꺅꺅대고, 또 교보문고를 영원히 사랑하자는 맹세도 하였다.
그렇게 몇 분을 랜선으로 얼싸안고 난리를 지기다가 이내 흥분을 멈췄다. 멈춰야 했다. 나에게는 언제나 칼을 들고 우다다 쫓아오는 다른 마감이 존재하므로. 남편과의 통화를 끝낸 후, 나는 다시 한 번 최종심 리스트를 꾹꾹 눈에 담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수고했다. 큰일 하나 했다.
내겐 아주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합니다. 교보문고.
사랑합니다. 교보문고.
다희야, 최종심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