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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06. 2021

힘든 당신이 가끔 욕을 해야 하는 이유

뱉어낸 욕이 지치고, 힘든 당신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아이~씨~!  이런 식빵, 식~빵~! 에~~ 휴~~


오늘도 출근해 앉은 책상에서 연신 욕이 튀어나온다. 주변 시선  아랑곳없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는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될 거라는 걸 알린다. 마치 예약해 놓은 알람시계와 같이 반사적으로 9시가 되면 입 밖을 나와 내 귀를 때린다. 게다가 땅이 꺼져라고 터져 나오는 한숨에 옆에 있는 동료조차도 기운 빠질까 걱정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버티기 힘들 거 같다. 그래서 그러는지 요즘은 날 보는 사람들마다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관리자조차 내 눈치를 보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니 오히려 피하는 느낌까지 든다.


오늘은 얼마 전 갑자기 퇴사한다는 개발자와 잠시 얘길 나눴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거야? 어디 좋은데 가면 나도 좀 소개 좀 해줘. 아니면 좋은 아이템 가지고 나랑 창업하자" 

 "에이, 부장님 여기서 그냥 쭈욱 다녀요. 부장님 나이에는 버텨야죠. 지금 밖에 나가면  더 고생이에요" 

 "요즘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번아웃 직전이야. 같은 부서 아니니까 요즘 내 상황 잘 모르지?" 

 "왜  몰라요. 우리 본부에서 요즘 부장님 힘든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벌써 몇 달째 고생하는 거 다 알죠. 업무가 달라도 요즘 부장님 분위기에 혼자 씩씩되는 거 보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죠"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 쏟아낼 에너지가 바닥을 인 지 오래다. 아침에 눈이 떨어지자마자 오늘 하루 쌓여있는 업무 걱정으로 머리가 무거워 온다. 서둘러 나선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평소와 같이 책은 들고 있지만 좀처럼 읽히지가 않는다. 한 시간 이상 이동한 지하철 안에서 읽은 책 페이지가 이십 페이지가 체 넘지 않는다. 그마저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 처진 어깨와 몸을 카페인으로라도 깨우기 위해 테이크아웃 커피에는 샷 추가까지 감행해 봤지만 출근과 동시에 정신만 어지러울 뿐 카페인 효과는 전혀 없다. 컴퓨터 모니터 우측 하단의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그래 봤자 10시도 되지 않았다. 이런 떨어진 텐션과 에너지로 버텨야 할 시간은 오후 9시까지, 그마저도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요즘 난 바닥난 에너지를 전원 오프가 되지 않게 꾸역꾸역 버티며 일을 하고 있다. 배터리가 없어서 빨간색 경고 표시가 뜬 스마트폰에 급하게 전원을 끼웠다, 뺐다 하는 식이다. 평일 하루하루가 이런 식이니 주말이면 거의 녹다운 상태로 무념의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다. 이렇게라도 충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스스로가 하고 있는 반강제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이렇게 애쓴들 월요일 오전이 지나면 주말 충전했던 내 에너지는 금세 바닥을 보인다.


에너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 생산적 활동부터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동물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허기짐을 해결하기 위해 사냥을 하고, 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하고, 무리의 질서를 위해서는 동료와 싸움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에너지다. 사람들도 동물들과 비슷하게 다양한 관계에서의 생산적 활동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런 에너지가 소진이 되거나, 나이가 들어 에너지가 약해지면 조금 더 강한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무리 생활을 하던 동물이면 무리에서 떨려나가기 십상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법칙이지만 그만큼 자연의 냉정하고, 냉혹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람은 동물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들 중에 정년에 가까워지면서 가진 능력이 더 힘을 바라거나, 더 강력해지거나, 혹은 그 힘을 유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물과 유사하게 나이가 들면 신체적 능력도 떨어지고, 두뇌 활동도 둔해진다. 한참 신체적 활동 능력이 좋은 에너지 충만한 젊은 사람들에게 밀려나 자신의 자리를 차츰차츰 잃어간다. 일할 수 있는 정년이 짧아지고, 연봉 피크제 등의 도입이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30, 40대를 그리워하며 라떼를 읊조리는 자리를 잃고, 외로움에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의 현재이자, 당신의 미래다.


에너지가 넘쳐나던  그 시절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늦출 수도 없는 게 당연한 일이란 걸 받아들이고 나면 그제야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지금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볼 수 있게 된다. 고통과 통증에 대한 자각을 정확히 그리고 사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이다. 참고, 버티는 것도 내구성이 좋던 한창때나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이 참을성도, 인내심도 오히려 더 이겨내기 힘들 때가 온다. 그런 날이 오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욕설과 한숨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뱉어낸 말들로 왠지 모를 청량감과 치유를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승승장구하며 끝없이 훨훨 날면 좋겠지만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 언젠가 땅으로 내려와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해 고집을 피우면 땅으로 곤두박질 칠 일이 생길 수 있다. 나이가 들면 현명하게 순서를 기다리며 고공비행에서 착륙을 위해 낮게, 낮게 내려올 때라는 걸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오히려 낮게 비행하다 보면 구름만 보이던 높은 하늘과 다르게 집도, 산도, 물도, 사람 사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멋진 스카이뷰도 좋지만 아기자기하게 사람 사는 모습이 정겹게 보이고, 지루하지 않아 오래오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난 오늘 출근해서도 튀어나오는 욕 한소끔 과 한숨 한 스푼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마음에 담아두고, 삭히는 게 주변  사람들에겐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내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가끔은 이렇게 뱉어내는 게 좋은 것 같다.


운동 선수들은 경기 중에 입 밖으로 뱉어내는 욕들이 선수 자신에게 어느 정도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한다. 체력을 온통 쏟아내는 경기중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몸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덜 고통스럽게 되길 바랄 것이다. 이럴 때 뱉어내는 욕이 어느 정도는 진통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난 내 마음과 몸에게 조금만 덜 고통스럽고, 덜 아프라고 오늘도 마음에 담아놨던 욕을 뱉어낸다. '에이~ 식빵~'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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