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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29. 2021

입사 3개월 만에 퇴사를 걱정했다

수습 기간에 입사 취소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다들 삼 개월 수습 과정이 지나면 시험 보는 거 알지? 시험에서 떨어지면 입사 취소야. 그러니 다들 열심히 해"


예상은 했지만 청천벽력 같은 교육 담당 선배의 말이 전해졌다.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선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잔뜩 주눅 든 얼굴을 하고서는 서로 눈치만 봤다. 입사 삼 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난 하루의 일과라고 해봤자 하루 한, 두 시간의 교육과 교육에서 주어졌던 과제를 시험하는 일이 전부였다. 틈틈이 선배들이 지시하는 보고서 타이핑이나 자료 조사 등을 수행하는 일은 우리가 회사를 다니며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은 유일한 위안을 줬다.


 회사 입사하기까지 무엇보다 힘들었고, 어렵게 입사한 직장의 첫 출근날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긴장됐었다. 하지만 취업 성공의 기쁨은 잠시였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선배들 눈치를 보며,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놓고 참고 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부서의 모든 선배들이 군 복무 시절 선임들만큼 두려웠고, 그들이 지시한 일이나, 부탁한 업무에 실수라도 할까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런 두려움도 조금씩 무뎌져 갔다. 회사도 사람 사는 평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입사 후 한 달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친해진 선배도 생기고, 선배들이 부탁한 업무를 해낼 때마다 듣는 칭찬 덕에 마음은 한층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편안한 마음이 들다가사건, 사고가 생길 때면 마음의 불편함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럴 때마다 회사라는 곳은 어렵고, 긴장감 넘치는 곳이 되어있었다. 수습 딱지를 떼기 위해 열심히 교육을 받았고, 업무 자료도 찾아가며 공부했지만 마음 한편엔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선배들이 업무를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 난 언제쯤 저렇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도 늘었다. 그러던 입사 삼 개월이 되어 갈 때쯤 조금은 직장인 같은 모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고 아주 긴 시간 첫 회사를 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때였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교육 담당 선배의 프로젝트 구축 사례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동기들과 난 조금은 지루한 교육시간을 버티면서 쏟아져오는 졸음을 쫓으며 피교육생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삼 개월간의 교육은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들 고생했다"

 "정말입니까? 저희 이젠 교육이 없나요? 그럼 다음 달부터는 급여도 백 퍼센트 다 나오겠네요"

 "그럼 매일 해야 하는 과제도 안 해도 되겠네요"


조금 들떠있는 동기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나도 묻고 싶었던 질문들이라 선배의 답변이 너무도 궁금했다. 하지만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의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했고, 어느새 나와 동기들은 그간 많이 줄었다고 생각했던 긴장감이 다시 생겨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급여 부분은 내가 인사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겠고, 수습이 무조건 끝나는 건 아니야.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수습 삼 개월 지나면 시험 보고 입사가 최종 결정돼. 시험은 일주일 뒤에 하니까 준비 열심히 해"  


처음부터 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입사하고 삼 개월이나 됐는데 설마 입사 결정을 취소할까 하고. 하지만 너무도 진지했던 선배의 표정과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들으면 그런 이야기가 그냥 하는 말은 아닌 듯싶었다. 대학 4년을 공부하며 배웠던 것들 대부분이 실제 회사에서 들었던 교육과정과 연관 지어지지 않았다. 나에겐 전공을 살려 입사한 회사임에도 너무도 낯선 교육 과정이었다. 하루하루가 늘 불안했고, 선배들이 지나가며 한 마디씩 던지는 질문에 답변을 못할 때면 항상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삼 개월이 지났음에도 처음 입사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아직도 취업 성공의 기쁨보다 입사 취소의 두려움을 난 여전히 안고 지내고 있었다. 수습 삼 개월 후 시험대에 오르는 하루 전까지 난 그런 두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고, 시험을 보면서도 난 입사 취소 후를 계획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지를 받아 들고 한 시간이 가까운 시간을 씨름하고, 실습 시험 또한 어렵게 마무리지었다. 시험을 치르고 난 결과야 어찌 되었든 나와 동기들은 한 결 가벼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우리끼리 따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습지만 난 조금은 마음이 더 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셋 모두 시험 통과에 필요한 최소 점수를 지 못한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신기했다.


 "아, 난 절반도 못 맞췄어. 젠장 그냥 다른 곳 알아봐야 할까 봐"

 "에이, 설마 정말 그만두라고 할까? 기회라는 게 삼 세 번은 줘야지 이렇게 단번에 날리지는 않을 거야"

 "난 마음을 비웠어. 여기 업무도 너무 어렵고, 업무도 잘 안 맞는 거 같아. 취업 준비 다시 해야지"


나와 동기들은 비슷한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쌓였던 긴장을 풀었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은 회사에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로 위로받는 건 잠시였고, 입사하자마자 삼 개월 만에 퇴사를 걱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퇴사 후에 대한 계획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했고, 수습 삼 개월이 경력이 될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교육 담당 선배나, 부서 관리자는 시험 결과 관련해서 전혀 이야기가 없었다. 조바심도 나고 결과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지만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하루하루가 흘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난 다른 선배를 통해 자연스럽게 시험 결과와 수습 이후에 거취를 알 수 있었다.


 "철수 씨, 이번 시험 결과 들었어?"

 "아뇨, 대리님. 안 그래도 궁금하긴 했는데 말씀을 안 해주셔서"

 "신입사원 모두 시험 다 잘 봤데요. 김 대리님 말로는 그래도 생각했던 거보다는 점수가 잘 나왔다는데"

 "저희 모두 절반 정도밖에 못 맞춘 거 같은데요. 그게 잘 본 건가요?"

 "그거 시험이 신입사원들이 다 풀 수 있는 레벨이 아니거든요. 그거 자격시험 중에서도 최고 레벨 문제라"

 "그럼 저희들 계속 회사 다닐 수 있는 건가요? 수습 시험 통과 못하면 수습 딱지 못 뗀다고 했는데요"

 "아, 사실 그런 규정 우리 회사에 없어요. 그냥 신입사원들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 말이지"


결국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며칠 아니 한 달을 고민했던 '입사 취소'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그날의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고, 그렇게 입사한 회사를 난 5년 동안 무사히 다닐 수 있었다.

 

첫 직장 처음으로 퇴사를 걱정했던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한 순간 해프닝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내게 퇴직, 퇴사, 이직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고민하게 했던 그날의 기억이다. 제대로 계획을 갖고 준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긴장, 걱정은 이직과 퇴사를 고민하는 마음의 무게만큼은 최근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퇴사나 이직의 고민에 앞서 늘 한번 더 생각하고, 감정 없이 이성만으로 고민해야 후회 없는 이직을 결정할 수 있다. 잠깐의 걱정이나, 조급한 결정은 몇 년을 후회할지도 모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번에 선택하지 않으면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직장이나 기회 같아도 자신에게 맞는 또 다른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겐 언제나 열려있다. 걱정한다고, 고민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퇴사는 시기가 문제이지 언제고 내 앞에 생길 수 있는 위기이자 기회임을 잊지 말고 항상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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