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키건
클레어 키건의 말은 간결하고 짧지만 생각을 하게끔 만듭니다
가볍게 무심히 읽어내려가면 '그렇구나' 하며 금방 읽어버립니다 하지만 문장을 천천히 생각하며 읽으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것 같습니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소녀는 형제가 많은 가난한 집에서 엄마의 막내 동생 출산에 임박해 잠시 먼 친적집에 맡겨집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있는듯 없는듯 자기 주장을 못하고 참아야 하는 소녀의 입장에서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 친절함, 배려를 킨셀라 아저씨, 에드나 아줌마로부터 경험하게 됩니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말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을 한다는건 소녀가 이미 킨셀라 아저씨와 에드나 아주머니와의 생활에 기대감을 가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소녀는 평소에 집에 있을 때에도 말이 없었던 듯 합니다 슬플 때, 우울할 때 말을 안하는 것처럼 행복할 때에도 마음이 충만해서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저 또한 그런것 같습니다 눈빛만 보아도 행복하니까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일수 있으니까요
소녀는 아저씨 아줌마의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으면서 풍족하고 걱정 없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 됨으로써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 이 부분은 읽으면서 잠시 소녀의 입장이 되어 보았습니다 소녀는 '아빠가 없는 맛'을 좋아했을거라고,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으로 여기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여름의 이 짧은 기억은 살면서 행복한 기억이 되어 줄 것입니다
아저씨 마음속 저 안쪽에서 커다란 문제가 기지개를 켜는것 같다 "시내에 나가려면 너도 손이랑 얼굴을 씻어야겠다" 아저씨가 말한다 "아빠가 그 정도도 안 가르쳐줬니?" 아저씨는 자기가 한 말의 파도에 갇혀서 거기 그대로 서있다
킨셀라 아저씨와 에드나 아줌마에게는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들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소녀가 입고 있는 옷들은 그 남자아이가 입던 옷이었습니다 킨셀라 아저씨는 소녀가 죽은 아들의 옷을 입는게 마음에 걸리고 해서 새옷을 사러 시내에 가려합니다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죽은 아들이 생각이나서 순간 소녀에게 맘에 없는 말,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해서 후회합니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말은 상황에 따라 가려서 하는게 중요합니다
말 때문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히고, 쓸데 없는 불화를 만들어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기도 합니다
바닷가를 킨셀라 아저씨와 산책하면서 소녀는 아저씨의 인생에서 깨달은 지혜를 듣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불을 빤히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
엄마가 막내 동생을 낳아서 소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짧은 여름을 행복하게 보낸 소녀는 킨셀라 아저씨와 에드나 아주머니와 헤어질때가 온 것이 슬프지만 울지 않으려 애씁니다 어느정도 헤어질날이 올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했겠지요
"제대로 돌보질 못하시는군요? 본인도 아시잖아요" 아빠가 말한다
소녀는 우물에 빠져서 오한이 났습니다 감기에 걸린걸 아빠가 알고서는 킨셀라 아저씨와 에드나 아주머니에게 잘 돌보지 못했다는 가시가 돋힌말을 합니다 본인도 안다는 말은 죽은 아들도 잘 돌보지 못해서 불행한일이 일어났다는 책망을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아빠에게 화가 났습니다 먼 친척에게 딸을 맡기면서도 미안함도 없고 배려심 또한 없는 아빠의 똘똘 뭉친 열등감과 막말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본인만 모르는것 같습니다
'본인도 아시잖아요' 이 말은 입 다물기에 딱 좋은 말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엄마는 소녀에게 어떤 변화를 감지하고 물어보지만 소녀는 아저씨와 아줌마와 보낸 시간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아마도 소녀만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것일 수 도 있고 엄마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아저씨 아줌마의 집에서 보낸 생활이 엄마에겐 자격지심으로 남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것이라고 그래서 소녀가 말하지 않기로 했을거라 추측을 해봅니다
킨셀라 아저씨의 어깨 너머 진입로를 아저씨가 볼 수 없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소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평소에 단련한 달리기 실력으로 질주해서 따라잡습니다 아저씨의 품에 안기면서 소녀는 아저씨 어깨너머로 달려오는 아빠를 보면서 아저씨에게 '아빠'가 온다고 경고합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작가가 독자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서 결론을 내게하는 열린 결론인것 같습니다 독자가 생각하는것이 결론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결론은 소녀가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하는 마지막 작별인사입니다 그리고 아빠가 오고 있는 그 짦은 시간 소녀와 아저씨 아줌마는 말을 하지 않아도 행복한 기억을 서로 공유했을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각자의 인생을 살 것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처럼 2번 읽었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책은 최소 2번은 읽어야 이해가 되면서 이제서야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게되는 완독을 한 느낌이 옵니다
소녀는 킨셀라 아저씨와 에드나 아줌마와의 지냈던 짧은 여름의 행복한 기억이 앞으로 살면서 고난을 해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유년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말이 필요 없는 행복한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