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고 이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가끔 친구들이 물어본다.
이혼하니까 좀 괜찮아?
힘든 건 좀 나아졌어?
이혼하니까 행복해?
이혼한다고 행복해질까?
이혼하지 않으면 불행한 걸까?
이혼했으니 불행할까?
이혼하지 않았으니 행복할까?
사실 이혼과 행복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사람들은 가끔 이혼하면 행복할 거라는 기대를 하나보다
이혼이 뭐가 행복하겠나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고, 다치고, 상처 받는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인데
그 상처가 도장 찍고 신고하고 이제 남이 되었다는 선포 하나로 갑자기 행복해지겠는가?
행복은 이혼이랑 상관없다.
내가 그냥 행복하면 행복한 거지 이혼했으니 행복하니?라는 물음은 내 결정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 때가 있다.
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이혼을 결정했을 때 분명히 그 안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각오도 충분히 했었다.
이혼 후 나의 생활은 그전의 생활과 180도 달라질 것이며, 나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도, 나의 경제적 상태도, 나의 자존감도 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남들과 다른 핸디캡을 지고 살 것이며, 내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며 평생을 미안해하곤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혼을 결정한 건.
행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덜 불행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나의 생활이 너무 불행하여 그 상황보다 1/200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 결정 안에는 내 아들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했었다.
얼마 전에 올린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크게 상처를 받았었다
우리들 부모님들도 서로 다투지만 참고 사셨는데 이혼이 잘한 일이라면, 님의 자녀분들도 꼭 이혼하기를...
물론 저 댓글을 쓰신 분의 마음도 알 것 같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걱정이란 생각보단 저주라는 생각이 더 들긴 했지만..)
그래 다들 참고 사는데 넌 도대체 뭐가 그리 힘들다고 이혼을 쉽게 하나?
그까짓 것도 못 참아서 홱 하고 이혼하고 앞으로 뭘 하고 살겠니?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던데. 당신은 참 이혼이 쉬운가 보네요.
충분히 이해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니..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싶진 않다.
나 또한 당신들과 다를 수 있음을 이해받길 바라니 그분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혼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 당사자 말고는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비난하거나 축하하거나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당사자들만 아는 사연이 있듯 당사자들의 결정에 따라오는 결과 또한 그들이 감당할 것이니.
늘 얘기했듯 나의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은 노부부가 되어 함께 손잡고 소소하게 산책을 하며 같이 늙어가는 모습이었다.
이혼은 분명히 어렵다.
이혼을 결정하기 까지기의 힘든 결혼생활도 어렵고
이혼 후 이혼녀, 이혼남이라는 꼬리표에 주눅 들어 살아야 하는 편견도 어렵다.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평생 가져가야 하는 것도 어렵다.
나는 결혼에 실패한 낙오자라는 자괴감에 혼자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결정했고 그리하여 그 안에서 다시 일어나기로 결심한 거다
지금 난 행복하기 위해서 이혼한 게 아니라 덜 불행하기 위해서 이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순간순간 힘든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괜찮다.
나의 결정이기에 누구도 탓하지 않고 그 안에서 다시 작은 행복과 위로를 지팡이 삼아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은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