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가정을 대하는 못난 어른의 자세
이혼을 결정했을 때
가장 걱정되는 건 역시 아이였어요
어른인 우리야 스스로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니 오해도 손해도 감수할 수 있겠지만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부모의 결정에 의해 원치않았던 삶을 살아가게 될 아이를 생각하면 늘 망설여지고 결정이 두렵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이혼을 결정했을 때.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앞으로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세상의 편견과 오해 속에서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
남들과 다른 환경을 받아들이게 될 아이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견뎌낼 면역력을 기를 것인가
이혼을 한 이후에도 내내 고민했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도 올 것이고 거친 남자 녀석들이 득실득실한 그곳에서 본인의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진 않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충분히 사랑해주면 분명 바르게 자라줄 거라는 믿기로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한 충만한 사랑을 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묵묵히 고민을 들어주는 대나무 숲이 되어주자고 다짐했었다.
미련하게도 나만 잘하면 될 줄 알았다.
우리만 서로 굳건하면 될 줄 알았다.
혹시라도 일부의 사람들은 잘못된 시선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혹여는 색안경을 끼고 아이를 판단하는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거라고 각오는 했다
혹시라도... 다양한 가족형태와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이 시대에도 ..혹시라도 그런 시선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우려했던 현실은 생각보다 일찍 내 앞에 서있었다.
며칠 전 아들은 몹시 억울하다는 듯이 집에 와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이 똑같이 잘못을 했는데도 상대방 친구는 간단한 충고만 하고 보내면서 자신에겐
"너 그러다 왕따 될지도 몰라. 넌 늘 왜 그 모양이니?"등의 자존감을 짓밟는 소리를 해댄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속상해하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내심 침착한 듯
"선생님이 왜 그러셨을까? 울 아들은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왜 선생님이 그러시지?
그냥 선생님이 되신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 아직 경험이 부족하셔서 사춘기 청소년의 심리를 잘 모르시고 그러신 게 아닐까?
선생님도 사정이 있으시겠지.. 괜히 이유 없이 누굴 미워하기야 하시겠어? 오해가 있으신 걸 꺼야"
뒤 이어 나온 아이의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 선생님이 학기초에 나한테 전화해서 '너네 아빠는 왜 주민등록 등본에 없니?'라고 물어봤어
근데 내가 이혼하셨어요~라고 얘기했더니 그냥 끊어버렸어.
그 이후부터 맨날 같이 싸웠는데 나만 교무실로 부르시고 친구가 먼저 시비 걸어서 설명하려고 했더니 넌 됐어!라고 하셔 나 너무 억울해"
순간 선생에게(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화가 나고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분명히 지각이 있는 선생이라는 어른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 만한 질문들을 거침없이 해대고 그런 상황들을 배경으로 아이에게 낙인을 찍고 배려없이 통화를 끊어버림으로 아이 스스로 배척당했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 행동을 했다는게 믿어지질 않았다.
요즘 어지간하면 각 가정의 사생활이나 아이의 상황을 배려해서 가족관계에 대한 확인을 하지 않는데 대놓고 아빠의 부재를 물어보는 이 선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그냥 끊어버리다니 내 아이가 존중받지 못했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나한테 한없이 소중한 그 아이가 누군가에게 한부모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이유 없는 차별을 받게 될 수 있을 거란 현실을 우려는 했었지만 이리도 빨리 현실로 다가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이 어떤 시댄데.
이혼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 부부가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죄를 지은 거도 아니고 단지 같이 살기엔 서로가 불행해서 조금 더 행복한 선택을 한 여러 유형의 가족형태 중에 하나이지 않은가?
심지어 아이들은 본인들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내 던져진 선의의 피해자일진대 어른인 선생님이 오히려 상처를 준다는 사실에 내심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에겐 애써
선생님이 아마도 배려가 조금 부족하셨던 것 같네
선생님은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으셔서 우리 아들 같은 상황을 이해 못하셨나 봐
엄마 아빠 결정에 우리 아들이 고생하네.
힘들겠지만 과정이라 생각하고 적응하고 이겨내 보자
어른이라는 사람이, 심지어 선생님이라는 자리는 아이들을 공평하게 바라봐야 하지 않나?
어른이라면 아이들의 상처를 같이 보듬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상처 받은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구분 지어 낙인찍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부모의 이혼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이런 편견과 오해를 얼마나 더 자주 맞닥뜨리게 될지
내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그 덤불들을 이겨내고 살아가야 할지 각오는 했지만 막상 첨 맞닥뜨리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에게 항의를 할 수도 내 아이의 편을 들 수만도 없어서 아이에겐 적당히 에둘러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억울했을 아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어른인 담임의 행동은 쉽게 이해가 되진 않는다.
어른인데 아이들보다 더 비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단단히 내 아이의 마음을 무장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스스로 단단해지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아이에게 그날 밤 잠자리에서 속삭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엄마 아빠의 결정에 괜한 우리 아들을 힘들게 하네
근데 엄마가 행복해지고 싶었어. 미안한 만큼 더 행복하게 해줄테니까 엄마 이해해줄래?"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미안한 마음만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남은생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고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언젠간 이해할 날이 오겠지만 무리해서 이해해달라고 하진 않을꺼다.
이 또한 내가 감당할 일이리라
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혼을 권장하고자 시작하지 않았다
가장 좋은 부부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같이 견디고 그 안에서 단단해져서 서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부부라는건 그런 힘든과정을 견디고 이겨낸 부부만이 누릴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는 더 이상의 노력을 접고 각자의 행복을 위해 헤어졌지만 주변분들께는 좀 더 노력해보시라 권유하기도 한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건 이혼의 삶을 진솔하게 쓰자는 거였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모두 알아야만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선택, 또는 위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혼은 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꽃길도 아니다
다만 내 선택에 책임지고 그 안에서 다른 행복을 발견하고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당신들과 나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다른 종류의 행복이 있고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