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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May 19. 2020

혼자서도 잘 크는 내 새끼

교복비 구입은 재난지원금으로 사용 가능할까?

드디어 아들의 개학날 짜가 결정되었다

실로 기나긴 방학이 아닐 수 없다. 작년 12월 방학하던 날 그 방학이 5월까지 이어질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에게 IMF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듯이 내 아들에겐 코로나로 인한 기나긴 방학이 이야깃거리로 남을 것 같다


아들 입에서 "이젠 게임하는 것도 지겨워. 제발 학교 가서 애들이랑 놀고 싶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물론 그 이쁜 입에서 "노는 것도 이젠 지겨워요. 정말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나도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내 아들이 할 리가 없으니 그 희망은 접기로 했다.




처음 이혼했을 때의 우려와 달리 아들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밝아지고 웃음도 많아졌다.

물론 사춘기 청소년인지라 가끔씩 입을 삐쭉 내밀며 불만을 이야기 하긴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OOO 엄마랑 얘기 좀 할까?"라는 나의 목소리에 한껏 놀란 눈으로 달려와 자기가 뭘 잘못한 건가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 같다.


6개월 가까이 지속된 방학에 올라간 건 게임 레벨과  몸무게뿐인 줄 알았는데 키도 엄청 커서 이젠 나보다 훨씬 커져버렸다.

나도 어디 가서 결코 작지 않은 173이라는 큰 키를 가지고 있는데 전남편은 170이 조금 못 되는 자기 말론 평균인 키를 가지고 있는지라 전체적으로 키가 작은 나의 전 시댁에선 첫 만남에 나에게 "키 큰 손주를 낳아다오"라는 요구사항을 거침없이 드러내셨더랬다.


나란 여자 종자개량을 위해 간택된 것이던가?

어쨌든 울 아들은 종자개량에 성공해서 지금은 대략 176이 넘는 중학생으론 결코 작지 않은 키를 가지게 되었다.

아들에 비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전남편은 가끔 아직도 본인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지 아들에게 키를 재보자고 대차게 덤비지만 늘 면박당하기 일쑤다.

심지어 내 아들은 몸무게도 어마 무시하다. 

6개월여의 방학 내내 바깥에 나갈 일이라곤 학원까지 걸어가는 그 잠깐이니 먹고 바로 살로 갈 수밖에.

작년에 샀던 옷들은 이제 다 무쓸모. 하나도 입을 수가 없다. 

아~~~ 나야말로 이혼하고 맘이 편해서 부쩍 찐 살에 옷이나 살까 했더니 아들 옷 사는데 돈을 다 써서 나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개학 준비를 하려니 불현듯 아들내미 교복이 생각났다

작아졌으면 어쩌지? 당장 구매는 가능한 건가?

부랴부랴 입혀보니 아무렴 그렇지... 허벅지가 터져나가기 일보직전

아침에 출근해서 급한 업무를 마친 후 교복을 추가 구매했다.

아~~ 재난지원금이 나왔는지 어떻게 알고 그만큼의 쓸 일이 생기는구나

그래도 울 아들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지불하기로 했다.


아들은 요즘 갑자기 찐 살에 무척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다

"괜찮아. 뭘 또 그거 가지고 기가 죽어. 

넌 키는 크잖아. 살은 맘먹으면 뺄 수 있지만 키는 맘먹어도 클 수 없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


별거 아닌 한마디에 배시시 웃으면서 "그런가?" 하면서 다시 행복한 얼굴로 게임을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아... 이 녀석... 잘 크고 있구나.

오래 힘들어하지 않고 뭐든 잘 털고 웃어주는 네가 있어서 엄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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