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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Aug 28. 2023

Servus!: 인사, 매일 건네는 말

   평론가 신형철 선생님 강의를 듣다가 굉장히 인상적인 프랑스 인사말을 만났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독일에 살지만 옆 나라 말은 뚜레쥬르와 파리바게뜨 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어떻게 읽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안녕!"과 같은 의미라고 했다. 이 인사말의 의미를 꺼내 들었던 철학자 시몬 베유의 문장이자,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고. 프랑스에 8년째 거주하는 분께서 아직 들어본 적은 없는 인사말이라고, 친밀한 관계에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인사말은 아닌 것 같다고 알려 주셨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이런 인사말을 들어보고 싶네요"라고 덧붙이셨다.


   공감한다. 한 번쯤 들어보고 싶고, 들으면 마음이 먹먹해질 것 같은 인사말. 사실 나는 낙천적인 데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저렇게 고통을 물어오면 조금 부담스러울 것 같다. 인사를 긴 대화로 바꿀 것인지의 여부를 그냥 상대에게 담백하게 건네는 "잘 지내요?" "별일 없지?" 정도가 편하다. 그래도 듣는 순간 저 인사가 참 좋았다. 대놓고 맑게 고통을 물어보니 새삼 마음을 두드린다. 덕분에 매일 그냥 기계적으로 꺼내는 인사의 의미를 새삼 손끝으로 낯설게 만져보았다. 타인의 고통을 묻고, 답을 듣고, 공감을 하는 것이 인사의 의미였구나.


   인사는 우리가 매일매일 공처럼 주고받는 말이다. 아이의 작은 손을 붙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아침이면 얼마나 많은 알록달록한 공들이 내게로 우르르 쏟아지는지. 외국어를 배울 때도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인데 그 의미를 곱씹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처음으로 되돌아보았다. 매일 건네는 인사는 나라마다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인사성 밝은 동물 나라

   안녕(安寧)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한지를 묻는 말이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묻는 것과 결이 같다. 우리는 따뜻한 눈을 하고 상대를 바라보며 안녕하셨냐고, 잘 지냈냐고,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한국에 온 지 1 년 된 인도인 엄마가 묻더란다. 한국 사람들이 왜 자꾸 자기한테 밥 먹었냐고 묻냐고. 질문을 받은 지인은 웃으면서 한국식 인사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식사 여부와 더불어 종종 메뉴까지 묻는 이 당황스러운 인사에는 상대의 섭생까지 챙기는 다정한 마음이 들었음을 외국인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밥은 먹었니. 아마 배고팠던 지난 시절에는 가장 큰 고통에 대한 따뜻한 안부였을 거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고통 없이 편안히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인사에 담는다. 인용한 프랑스어 인사말이 직접적으로 고통을 물어보니 마치 얼음물에 손을 담근 것처럼 새롭게 느껴졌지만, 실상 우리가 무수히 건네 온 인사들은 온도감이 조금 미지근할 뿐 물이라는 본질은 같다. 많은 나라에서 너의 아침이, 낮이, 저녁이, 밤이 아름답고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인사를 나눈다. 네팔에서 살다 온 친구에게 처음 들었던 '나마스테'라는 인사말은 나의 영혼이 당신의 영혼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한 지인은 “Pura vida!(Pure life!)“라는 인사말에 끌려 코스타리카 여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런 인사를 매일 주고받는 사람들의 나라는 어떤지 궁금해서. 이렇게 보면 하루에도 수없이 나누는 인사란 얼마나 따뜻하고 놀랍고 아름다운 말들인지.


   독일어 인사는 영어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아침, 낮, 저녁, 밤을 기원하는 구텐 모어겐(Guten Morgen!: 앞 단어를 생략하고 "모어겐!"만으로 인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구텐 탁(Guten Tag!), 구텐 아벤트(Guten Abend!), 구테 나흐트(Gute Nacht!)가 있고 격식 없이 일반적으로 쓰는 할로(Hallo!)가 있다. 영어 인사말 헬로가 원래 옛 독일어 halâ, holâ에서 왔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원래는 그냥 상대의 주의를 끄는 말이나 감탄사에 가까웠는데, 전화가 발명되고 나서 토머스 에디슨이 전화를 받을 때 "Hello!"를 쓰자는 제안을 하고 그게 받아들여져 오늘날 널리 쓰는 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정작 전화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은 "Ahoy!"라는, 왠지 후크선장이 생각나는 단어를 쓰고 싶어 했다고.

"Hello!" 대신 "Ahoy!"가 쓰였을 세상을 생각해 봅니다. 좀 더 귀엽고 개구진 느낌이네요.

   헤어질 때는 다시 보자는 뜻의 아우프 비더제엔(Auf Wiedersehen!: 앞을 생략하고 “비더제엔!”만 쓰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어에서 온 챠오(Ciao!)도 쓰지만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취쓰(Tschüs!)다. 소리가 키스처럼 들리기도 하고 실제로 발음할 때 뽀뽀하는 것처럼 입술이 동그랗게 앞으로 나오기에 귀엽다고 생각하는 인사다. 헤어질 때 상대에게 작은 입술 자국을 남기는 느낌으로 말하곤 한다. 취쓰!


   나는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역에 사는데, 이곳에는 특별히 널리 쓰는 인사말이 따로 있다.

"Servus(제어부스)!"

우리말 '안녕'처럼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참 특이하다. 영어로 노예나 종을 뜻하는 slave, servant의 라틴어 단어에서 왔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활짝 웃으며 “노예!”하고 인사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제어부스가 라틴어로 노예라는 단어임을 알게 됐을 때,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몰아쳐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가만히 곱씹어 보니 마음속에 사르르 온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왓 더?

   남부 독일은 일상에 종교적인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제어부스라는 인사말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같은 성서 속 표현에서 기원을 찾는다. 비슷하게 서로에게 “I’m your servant,” 즉 "내가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너를 마치 신처럼 여기고 나를 낮추겠다는 오래된 마음이 지금까지 남아 전해진다는 건 참 뭉클한 일이다. 특히 전국 노래자랑에 버금가는 전국 갑질 자랑으로 도배된 사회면 뉴스에 지친 마음에는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갑이 되는 것이 소망이다. 을, 병, 정도 모자라 무기경신임계까지 물고 물리는 사슬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조금 더 앞쪽에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고개가 치켜져 올라가 거북목이 교정되는 것이다. 특히 서비스 직종에 있는 분들께 유독 무례하게 굴어 사회적 이슈가 되고 공분을 사는 일이 잦다이런 상황에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제가 당신을 섬기고 살필게요."라고 말하는 인사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활짝 웃으며 온 마음으로 쓰는 인사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 지인이 놀라워했다. 시대가 바뀌고 무수한 역사가 만들어지는 동안 의식주며 문화 같은 것들이 바뀌고 또 바뀌었는데도, 당시의 생활 언어로 태어난 인사법이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살아남았다는 것은 정말 경이롭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연필을 떠올렸다. 독일어로 연필을 블라이슈티프트(Bleistift)라고 하는데, 흑연을 쓰기 이전에 납으로 글씨를 썼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서 앞에 '납'이라는 뜻의 '블라이(Blei)'가 붙어 있는 것이다. (가느다란 갈대나 파피루스 관에 액체 납을 채운 최초의 연필이 약 5,000년 전 이집트에 존재했다고 한다. 그 뒤로 연필심으로 썼던, 당시 사람들이 납의 일종인 줄 알았던 블랙 리드(black lead)는 사실 납은 아니다.) 연필에 흑연이 쓰이기 시작한 게 16세기인데, 21세기가 되도록 납 성분이 연필이라는 단어에서 빠지지 않고 아직껏 살아남은 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독성이 있는 납은 흑연으로 대체되었지만, 내가 스스로를 낮춰 당신을 섬기겠다는 이 해독제 같은 마음은 오래도록 대체되지 않고 남아주기 바란다. 제어부스라는 인사말은 세상의 독성을 정화시키는 고대의 주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 쥐고 있는 게 보이시죠? 허리를 숙이고 집중해서 무엇을 쓰고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납 중독으로 많이 아프지 않았기를요.

   한국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잘 건네지 않는다. 무표정하게 서로를 지나친다. 기본적으로 눈을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문화다. 상대의 얼굴을 보며 살짝 웃기라도 하면 '저 아세요?'의 당황스러운 얼굴을 마주하게 되거나, 혹시 시비라도 거는 건가 싶어 경계하는 표정이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낯선 타인에게 다정한 인사를 받는 일이 내 기분과 내 하루를 얼마나 근사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강아지를 데리고 선글라스를 쓰고 지나가는 멋쟁이 할머니가 환한 미소로 "Guten Morgen, schöne Dame(예쁜 부인,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 주셨던 어느 봄날 아침, 내 마음이 얼마나 따끈한 빵처럼 부풀었는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밀밭길을 지나는 아저씨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건네는 인사를 받으면 상쾌한 산들바람을 맞는 기분이고, 골목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나를 보고 귀여운 입술로 "할로!"하고 인사를 하면 내 안에 불이 반짝 켜지는 느낌이다. 사실 같은 독일이라도 사람들의 걸음이 빠른 도시에서는 인사를 건네기가 어렵다. 그래도 적어도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나누고 다정한 눈길을 보낸다.

   국어사전에서 '인사'를 찾아봤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人事'라는 한자어를 공유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었는데 둘을 엮어보니 묘했다. 하나는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에 예를 표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다른 하나는 "사람의 일. 또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루에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서 무탈히 지내줌으로 인해 우리는 평온을 얻는다. 서로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자, 그들의 일상을 향한 응원이다. 꼭 알지 못하는 타인이라 할지라도 - 실은 내가 그를 모르기에 더욱 - 인사를 나누는 일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공동체의 일원인 동료 시민에게 안녕을 묻는 일.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서로가 고통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엷은 미소라도 서로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

인사를 발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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