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차 | 먹고 또 먹고

벌써부터 효도하는 아가 덕분에 입덧 없는 임산부의 먹부림

by 고지은

임산부의 흔한 입덧 증상들.

고기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풍기는 냄새도 역해, 요리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더 심할 때는 아예 주방에 들어서는 것조차 싫다. 새콤한 레몬사탕이나 담백한 크래커만 간신히 입에 넣는다.




나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다.

임신을 처음 확인한 날에도 집에 돌아와 삼겹살을 구워 잔뜩 먹었고, 산부인과에 다녀온 날에는 특별히 더 기름진 곱창이나 족발로 기력을 보충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매일 한 가지씩은 꼭 있어서, 혼자일 때도 정성스레 직접 요리해 챙겨 먹는다. 오래 묵힌 신김치를 잘도 찢어 먹고, 어떤 날에는 구수한 청국장을 푹 끓여 먹기도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평소보다 훨씬 잘 먹고 지낸다.

평소에 못 먹는 음식이 없을뿐더러, 누구와 식사를 하든 제일 먼저 숟가락을 놓는 법이 없었다. 나는 185cm가 넘는 남동생만큼 식사를 하는, 160cm도 안 되는 여자 사람이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으로 살아왔는데, 임신 후에는 먹고 싶은 메뉴가 더 늘고 셀제로 더 잘 먹고 있으니, 나로서는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아무리 먹성이 좋아도

굳이 찾아 먹지 않는 음식들은 있었는데,

임신 후에는 그마저 달라졌다.

머리가 얼얼해져서 절대 찾지 않던 엽기 떡볶이를 가장 매운맛으로 주문하고, 뽀얀 백설기가 먹고 싶어 동네 떡집을 서너 군데나 돌았다. 아이스크림은 무조건 바닐라 맛만 고집했는데, 어릴 적엔 인위적인 사과향이라고 외면했던 스크류바에 새삼 눈을 떴다. 짜장면은 곱빼기로 먹어줘야 직성이 풀린다. 머리가 아파서 누워서 자다가도 치즈 냄새에 입맛이 싹 돌아 피자를 소스에 듬뿍 찍어 세 조각은 기본으로 해치운다.




폭염주의보에 부대찌개 먹고 싶어서 지하철 타고 포장해 온거 실화냐고.


특히 점심은 오직 나를 위한 식사시간.

봄에 임신해 여름과 가을을 풍성한 음식과 함께 보낼 수 있다니,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니! 도마보다 큰 수박은 자르는 것조차 귀찮아했는데, 지금은 한 통도 거뜬히 먹어치운다. 엽산이 풍부한 참외는 하루에 하나씩 꺼내먹었다. 살구, 자두, 복숭아, 블루베리는 번갈아 먹기위해 냉장고에 늘 채워 두는 것이 요즘의 낙이다.




채소는 또 얼마나 싱싱하고 값이 착한지. 한겨울엔 하나에 3천 원을 넘던 애호박이 여름엔 단돈 900원.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구워 먹거나 된장찌개에 듬뿍 넣어 끓인다. 가지는 반찬으로 볶아 먹기도 하고,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올려 구우면 서양식 별미가 된다. 포슬포슬한 감자와 단호박은 넉넉히 구워 손이 닿는 곳에 늘 두는데, 보기만 해도 든든한 간식거리다.




나와 아기를 위해, 점심은 더욱더 정성스럽게 차려먹는 중. 메뉴는 매일 다르다!


먹고 또 먹고.

이렇게 잘 먹는 임산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러니 지금 불룩 나온 이 배는 아기 때문만은 아니다. 절반은, 확실히 내 배다.



아가야,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텔레파시 보내.

여름철 과일이 얼마나 달콤한지 기대해도 좋아.
닭고기 오리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구이까지
고기도 골고루 먹으니 참으로 맛나지?

아이스크림도 종류별로 사 오고
밤 11시에 수박도 썰어주는 아빠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몰라.

그러니 언제든지 말해,
우리 건강하게 잘 자라자.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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