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차 | 술꾼도시여자가 임신했을 때

맥주쟁이, 술 없이도 잘 지내냐는 안부에 쓰는 글

by 고지은
수납장으로 쫒겨난 나의 술들, 잠시만 안녕



1년 365일 중

356일은 술을 마셨다.

나머지 아홉 날은, 해장을 하느라 겨우 넘어간 것.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동기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 나는 유럽 맥주 여행을 떠났다. 맥주가 맛있기로 유명한 도시만을 골라서 로컬 브루어리와 펍을 찾아 누볐다. 진학하기로 한 대학원 등록을 취소하고 수제맥주 회사에 입사했다. 맥주에 대한 감각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핑계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퇴근주를 마셨다. 그때부터 365일 중 356일은 술과 함께였던 거다.



사실 맥주 회사에 다닌 건 2년도 채 안되는데, 아직도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 다시 브루어리로 돌아갈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직 술꾼으로 은퇴한 건 아니라고. 나의 최애 술들만 모아둔 아지트를 꾸리는 것은 늘 꿈꾸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친구들을 나를 너무 잘 안다. 처음 보는 술인데 특이하다며 선물로 보내거나, 술장고는 꽉 찼을 테니 술잔이나 받으라며 예쁜 잔을 택배로 보낸다.





금주를 한지 두 달째,

이렇게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건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다.

가까운 친구들부터 먼 친척까지, 나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며 묻는다.

“그 술꾼이, 이 무더운 여름에 맥주 생각은 안 나니?”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생각난 적이 없다. 맥주 광고를 봐도, 남편이 내 앞에서 하이볼을 부어도, 그저 “색깔 참 예쁘네” 하고 넘긴다. 요즘엔 알코올 도수 0.00%짜리 무알콜 맥주도 많지만, 굳이 사 마시고 싶지 않다. 예전에 술을 좀 줄여보겠다고 사봤는데, 술맛은 제법 흉내 냈지만 알코올의 존재감이 빠진 맥주는 내게 너무 싱겁게 느껴졌다. 결국 진짜 맥주 세 캔을 마셨다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실망해 둔 게 다행이다. 이 시기에 그 맛을 처음 알았다면, 아마 맥주가 더 그리워 속상했을 것이다.


쿠팡도 있고, 컬리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직접 장을 보러 나가는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술 때문이다. 주류는 온라인 배송이 되지 않으니, 마트 술 매대는 내 산책 코스였다. 할인하는 술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게 나의 취미였는데, 요즘은 그 코너를 그냥 스쳐 지나간다. 대신 온라인 장보기가 늘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임신부에게 하루 한 잔의 술이 허용된다면?

술은 전혀 마시지 않지만, 커피는 종종 즐긴다. 의사 선생님께서 “술 담배 마약은 절대 안 되지만 커피는 하루에 한 잔은 괜찮다”고 하셨으니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맥주도 하루 한 잔은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술을 찔끔씩 마셨을까? 입가에 군침이 도는 걸 느끼며, 이내 상상을 접는다.


다행히,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24주 차인 지금까지도 술이 그립지 않다.

술 없이도 잘 지내냐고? 생각보다, 아주 잘.



아기야,
엄마 아빠를 닮았다면
너도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겠지.

20살이 되는 날,
엄마가 진짜 맛있는 맥주 따라줄게.
아빠한테는 근사한 안주를 준비하라고 하자.
벌써 그날이 기다려진다.

2025.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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