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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김민기를 보내며

by 작가서당


나는 그 말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고문을 당하면서 그가 떠올린 생각이 “저들이 나 때문에 죄를 짓는구나”였다고? 그 순간 분노나 증오가 아닌 연민이 떠올랐다고? 어떻게 인간이, 그것도 육체와 정신이 무너지는 그 극한의 상황에서, 예수처럼 생각할 수 있는가.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나였으면 저들을 증오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상황에서조차 상대방을 걱정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나는 그 인터뷰 한 줄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 인간에게 그런 생각이 가능하다면, 이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떤 신념보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사랑이 그를 꺾이지 않게 했고 그를 아름답게 남게 한 것이다. 그는 단지 저항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성의 가능성을 보여준 증인이었다. 조용했지만 깊었던 사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은 사람, 김민기.

김민기 선생이 가셨다. 많은 추모의 글이 실렸다. 생전에 드러나기를 꺼렸던 그였지만 그가 떠난 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애틋한 마음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의 빈자리를 느꼈다. 그는 시대를 상징하지 않으려 했지만, 상징이 되길 원치 않았지만, 어느새 모두가 그를 시대의 얼굴로 기억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가장 깊게 남은 이름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고 스스로 나서지 않았지만 그가 걷던 길은 누군가의 등불이 되었고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빛을 발했다. 그의 존재는 마치 오래된 등불처럼 아무도 모르게 불을 밝혀주었고 그 빛은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따뜻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 기억은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노래와 연극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돈다. 거리에서, 극장에서, 조용한 방 안에서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존재를 잊지 않는다. 김민기는 하나의 사람을 넘어서 한 세대의 감수성과 정서를 품은 상징이었고 그 상징은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다. 나는 요즘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우리에게 김민기 같은 사람이 있는가. 사람들 앞에 서지 않고도 시대의 가장자리에서 빛을 잃지 않는 사람, 조용한 목소리로 영혼을 건드리는 존재 말이다.

그는 음유시인이었다. 저항의 깃발을 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노래는 조용히 시대의 숨통을 틔우는 바람이 되었다. “아침이슬”은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술에 취한 채 무덤에서 깨어나듯 썼다고 했던 그 노래는 한 사람의 삶을 넘어 하나의 시대를 품은 상징이 되었다. 양희은은 청아하게 불렀고 김민기는 읊조리듯 담담한 저음으로 불렀다. 청아한 음색과 담담한 낮은 저음은 그 노래가 지닌 두 개의 결이었다. 그의 노래는 노래 자체보다 그것을 부른 사람의 존재에서 힘을 얻었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여전히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이 울린다.

그는 특정한 이념이나 투쟁을 위해 노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 그의 노래는 지은이를 떠나 생명을 얻었고 듣는 이의 삶과 연결되어 그들의 존재 방식이 되었다. “친구”,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 “공장의 불빛” 같은 곡들도 마찬가지다. 그 노래들은 사회의 변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자체로 위로이자 연대였다. 그는 노래로 싸운 것이 아니라 노래로 품었다. 그의 노래는 외침이 아닌 울림이었다. 그의 음악은 외침이 아닌 부드러운 손길로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들 속에 남아 울려 퍼진다.


그의 창의성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은 소극장 '학전'을 통해 또 한 번 드러났다. 학전은 '지하철 1호선'을 천 회 이상 올리며 새로운 연극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이 연극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이극을 시작하여 이에 집중하며 아무도 보지 않던 것,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던 여린 존재들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늘 소외된 쪽으로 향했고 그의 예술은 사람을 품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의 예술은 무대 위를 넘어 사람들의 내면에 새겨졌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세대의 예술가들이 그 길을 따르게 되었다.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고 언론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 그는 늘 뒤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수많은 이들을 키워냈다. 고 김광석의 공연을 함께 했고, 설경구, 황정민, 김승우 같은 배우들이 그의 품 안에서 자라났다. 그는 뒤에서 앞을 키우는 사람이었다. 시대는 늘 소란스럽지만 진짜 영향력은 언제나 조용한 쪽에서 시작된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많은 이들이 그의 존재를 다시 이야기했다. 그의 뒤를 이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의 가르침을 이어간다는 사실은 그의 삶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안타깝게 그를 보내며 한 시대를 품었던 그의 예술과 삶에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나는 그를 애도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를 보내며"로 <관계와 연결> 연재를 일단 멈춥니다. 그동안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으로 찾아 주셔서, 글 쓰는데 큰 힘과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더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많은 응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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