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욱'이로 산다.

육아와 동욱이의 상관관계

by 밀도


내 이름을 차라리 ‘동욱’으로 바꿔버릴까?

하루의 8할은 ‘동동’거리며 살고 나머지 2할은 ‘욱욱’거리며 살고 있는 나니까, 누가 등 뒤에서 "동욱아!" 하고 부르면 내가 돌아봐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잖아. 안 그래?

동욱이로 산지 어언 5년. 동욱이의 역사는 나의 육아의 역사이며 엄마라는 이름의 역사와 함께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되면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기본 탑재하는 것은 ‘동동’이다.

아무리 느긋한 성정의 소유자이며 명상과 수련으로 단련된 여인이라도 아이가 열 39도 가까이 찍으면 중심을 잃고 ‘동동모드’ 로 아니 변할 수 없다. 아이 때문에 야간 응급실에 한번이라도 가 본 부모라면 아이를 품에 안고 동동거리고 있는 게 뭔지 단박에 떠오를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은 오롯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알려줬던 수많은 자기개발서들과 한판 뜨고 싶게 만드는 놀라운 진실! 그건 바로 내 시간도 내 것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거다. 내시간의 뒤꽁무니를 쫒아가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통째로 날려버리는 날이 허다하다. 그게 바로 육아다.


결혼을 앞둔 절친이 물어본다. “나 결혼식 3시니까 애랑 오기 좀 더 쉽겠지? 11시면 너무 일찍이라 힘들잖아~” 대답은 '어떻게 해서든 갈게' 지, ‘3시’가 아니다. 그냥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촉박하다. 5시간이 더 여유 있다고 해서 제 시간에 도착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게 아닌 거다.

내가 예상 시나리오를 짜봤자 만 가지 변수들이 약 올리듯 치고 들어온다는 걸 아이를 키워보며 깨우치게 되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무언가를 하기로 계획한 이상, 내 마음속의 동동모드는 자동 ON 이다.


반면, ‘욱욱’은 꼭 육아의 기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내면의 ‘욱’ 을 잘 다스릴 수 있는 현명한 엄마들도 더러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육아 중 ‘욱’이 성능좋은 원터치그늘막 마냥 수시로 펼쳐진다. 물론 내 경우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욱’과 동행해 왔던 인생인지라 육아 탓만 할 수만은 없는데, 이게 아이에게 좀 원망스러운 지점이 있다.


아무리 욱하며 살아온 나날이 많았다 해도 이제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이다. 나이 들어가며 어느 순간 타인에 대한 관용도가 높아지고 이 세상의 사사로운 것들에 휘둘리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 이래서 마흔을 불혹이라고 하는구나! 나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을 잘 잡고 좀 더 성숙하고 따뜻한 참 어른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좋다!’ 라는 기특한 결심을 하는데, 하필 그때 딱! 육아란 녀석을 마주하게 된 거다.

아이 때문에 발생하는 ‘욱’의 상황들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고 대부분 너무 자잘하고 소소해서 (하지만 소소해서 당시엔 더 화가 난다는 거) 자세히 늘어놓으면 놓을수록 자괴감 들고 허무해지니 쓰지 않겠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동동욱욱 ‘동욱’이가 되어 아이를 등원시켰다. 부리나케 회의를 가는데 오랜만에 내 이름 지어주신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 미안. 아빠가 지어준 내 이름엔 ‘밝을 경’자가 들어있는데, 난 요즘 자꾸 ‘동욱’이가 되네. 심지어 노안이 오나 눈도 밝지가 않네. (아 눈물이 난다.) 일하러 갈 동안이나마 동욱이는 그만 잊고 원래의 밝은 내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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