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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y 29. 2020

오늘도 울며 등원을 하였습니다.

하원을 기대해 아들아.

 오전 9시 반. 출근한 남편이 카톡을 보내왔다.

날씨가 좋아, 금요일이라 기분 탓인가


 반면 그 시각 내 기분은 좋지 않았다.

 등원을 하는 아이가 엘리베이터 타기 시작 할 때부터 안고가라 떼쓰더니 (아들의 몸무게는 18kg이다) 어린이집 도착을 하니 집에 가고 싶다고 오열을 했다. 결국 담임선생님한테 끌려가다시피 들어갔다. 일주일 전부터 등원거부 하다가, 그제와 어제  이틀은 잠잠해져서 이제 좀 괜찮아 졌나보다 마음 놓고 있었던 내 자신이 너무 아마추어 같았다.


 육아란 뭘까. 열심히 걷고 있어도 점점 더 뒤로 가는 느낌이 드는 그런 이상한 무빙워크 위에 수시로 올라타는 기분이랄까? 내가 3년째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기분의 무빙워크는 바로 ‘어린이집 등원’ 이다.


 아이가 최소한 말은 할 수 있을 때 어린이집을 보내야 한다는 소신때문에 세 살부터 가까운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참고로,  세 살은 기관나이로 ‘만 1세’다. 나는 아이들에게 붙이는 ‘만 나이’를 다 떼버렸으면 좋겠다. ‘만 1세’ 라는 표기 자체가 아직 너무 어린 핏덩이를 기관에 보내는 안쓰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굉장히 크게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또 얼마나 오래전에 신청해 두었을까? 당연히 임신했을 때다.

 그렇게 3년을 기다려 얻은 등원의 순간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난 그때 폭삭 늙었다.


 매일 어린이집 안 가겠다며 울고불고 발버둥 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뿌리치다시피 떼어 놓고 나오는 건 정신적으로 굉장한 데미지를 준다. 두어 달 지속된 것 같다. 첫 등원에 닥친 일이라 매일이 멘붕이었다.

 물론 아이마다 기질 차이가 분명히 있어서 우리 아이가 훨씬 유난스러웠을 순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초반 등원의 낯설음을 건너뛰는 아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듬해 네 살 때는, 등원 거부가 한 달 이상 지속돼서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식단, 수면, 놀이 등 무엇이 우리 아이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가 점검하며 골몰하느라 불면증에 시달렸다.


 올해 다섯 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등원도 못하고 엄마와 함께 석 달을 붙어 있던 아이라 더더욱 등원 준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달라진 반 선생님 사진도 계속 보여주고, 이름도 계속 알려주고, 친한 친구들도 다 함께 같은 반이 되는 거라고 끊임없이 주입시켜 주었건만 엄마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또다시 등원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이 싫은 게 아니라, 엄마가 날 두고 가는 게 너무 견딜 수가 없어."

라고 토씨도 달라지지 않고 여러번 얘기하는 통에 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아이가 ‘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헤어짐’을 3년째, 어쩌면 앞으로 몇 년 더, 그리고 성장할 때마다 무수히 겪어가야 할 일이라는 근본적인 사실 때문에 일차적으로 힘들었고,  또한 이런 얘기를 듣는 당사자가 그 누구도 아니고 오롯이 나여야만 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힘들었다.

 

나는 출퇴근이 비교적 유동적인 직업인지라, 일을 하건 안하건 아이 등원담당은 언제나 나였다. 아마 전업 맘들의 경우 대부분 등원은 엄마의 담당일 것이다. 미취학 아동을 기르는 전국의 모든 엄마들이 아침마다, 새 학기 시작 때마다 이런 심적 고통을 겪을 걸 생각하니, 그냥 모두에게 무한 연민이 든다.  다들 너무 애쓰는데 답이 없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냥 다들 계속 이상한 무빙워크 위를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이다.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 보내놓고, 날씨가 좋아 기분이 좋은 남편에게 기어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또 오열등원... 매번 선생님께도 너무 죄송하네....]

돌아온 답은 [ㅠㅠ]

미안해 남편. 당장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인데도 굳이 안 좋은 얘길 전하는 건, 나도 내 힘듦을 나눌 데가 필요해서야. 그냥 좀 나눠 가져줘.


메시지를 남겨놓고 다시 퍼뜩 정신을 차려본다. 이따가 하원하는 아이를 어떻게 기분 좋게 해줄까 생각하다가, 어린이집 앞 청과물 가게에 진열된 커다란 수박을 보았다. 그래, 아들도 남편도 둘 다 좋아하는 수박을 올 여름 첫 개시 해보자!


호기롭게 수박 한 덩이 사서 들고 나오는데, 아우, 너무 무거워 솔직히 좀 후회했다. 정말이지 팔이 빠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 순간 아이 생각이 났다. 이 수박 기껏해야 8킬로그램 될까. 우리 아이가 두 배는 더 무거울 텐데, 난 왠일인지 이 수박 하나가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 수박에 비하면 우리 아이는 너무 들기 편했다. 아마도 내가 안고 있을 때 아이도 날 꼭 잡고 안아줘서 덜 무겁게 느껴졌겠지. 우리가 그동안 서로 함께 안아주고 있던 거라 생각하니 콧날이 조금 시큰해졌다.  


“엄마 안아줘, 안아줘” 할 때마다, “이제 네가 너무 무거워서 의자 위에 올라오지 않으면 안아줄 수 없어”고 선언한지 꽤 되었는데, 수박을 냉장고에 넣으며 다짐했다. 오늘은 아이를 많이 안아줘야지! 아니 우리 함께 많이 안아주기 하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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