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덕에 마주한 육아의 실체
프리랜서 방송작가 19년차인 나는 프리랜서란 말이 무색하게 계속 일에 파묻혀 지냈다. 임신7개월 까지 일했고, 출산 후 60일 즈음부터 다시 강렬하게 일을 하고 싶어서, 아기가 백일이 되자마자 출근을 하며 워킹맘이 되었다.
양가 어머님들께서 담당 요일에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의 하원과 저녁식사, 목욕 등을 해주셨고(이 대목에서 복 받았다는 말을 천 번쯤 들었다), 주말엔 늘 남편과 함께 양육 했다. 우리 집 나름의 육아 시스템을 정착 시기고 적응하며 살아온 지 올해로 5년째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던 3월, 몸담고 있던 프로그램이 종영했다. 나이 드신 어머님들을 대중교통에 노출시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서, 때마침 제안이 왔던 프로그램도 마다하고 한시적 전업주부를 택했다. 조금만 쉬다가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다시 일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더욱 날뛰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장기화되었다. 가족들은 내가 마침 일을 쉬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고,
나는 불행했다.
하루 풀타임으로 아이와 단둘이 있게 된 건 사실상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너무 신이 났다. 어린이집도 안가고 엄마가 하루 종일 함께 놀아줘서 너무 좋다고 했다. 다섯 살 아들은 “엄마 이제 회사 가지 마.” 라는 얘기를 하루에 한 번씩 꼭 했다.
대부분 이쯤 되면 나오는 연결문장이 있다.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다른 문장이 나왔다.
아들아 미안. 엄마는 그래도 일이 하고 싶어.
물론 내 입장에서도 너무 좋은 기회였다. 엄마로써 아이의 성장과정을 오롯이 지켜보고,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어 나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육아서를 읽고 인터넷 서치를 해가며 매일 뭘 하고 놀아줄지 고민하고 실행했다. 어제 몰랐던 한글과 숫자, 알파벳 같은 것들을 오늘 읽어낼 때마다 물개보다 더 열심히 물개박수를 쳐주며 기쁨을 나눴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보석 같은 언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수시로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기록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들과 비등하게,
수시로 힘들었다.
힘들다가 기뻤다가, 힘들다가 기뻤다. 이 두 가지가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하루 종일 내 정신과 육체를 돌고 돌았다. 그 띠 위에서 정신없이 돌고 돌다 아이가 잠드는 그 순간이 기쁜 면이었다면 그나마 나은데, 힘든 면이었다면 육퇴(육퇴는 육아퇴근의 준말이다) 후 나의 밤도 계속 상태가 안 좋았다. 내일 또 눈뜨자마자 그 띠 위에 올라탈 생각을 하니 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제발 기쁨의 면 위에 올라타서 시작할 수 있기를...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이정도 뿐이라는 게 더 힘들었다.
육아의 이런 고약한 성질이 나는 정말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와 기쁘게 하는 존재는 보통 분리가 돼 있기 마련 아니던가?
중간고사 때문에 괴로워도 친구들과 먹는 분식집 떡볶이 순대로 힐링 받고, 나를 미워하는 상사 때문에 힘들어도 나를 사랑해주는 애인 때문에 위로받고, 주중에 일이 고되어도 주말에 취미가 나를 구원하는 뭐 그런 거.
나를 업 시키는 것과 다운시키는 것들이 대부분 다른 객체로 분리되어 있어서, 미움의 대상에겐 아낌없이 욕을 퍼부으며 기쁨의 대상에겐 세상에 다시없을 애정을 주며 그렇게 나를 회복시키고 살아왔던 것 같은데, 육아란 녀석은 나를 너무 힘들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는 동시성이 있어서 둘 다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운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모드를 전환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때그때의 감정에 솔직히 따르다보면 화냈다가 뽀뽀했다가 얼음됐다가 햇살됐다가 소리질렀다가 콧소리냈다가 하는 정말 이상한 엄마가 돼버리는 거다.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게 (대부분) 엄마고, 저 나름마다의 해소법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육아서로 내 화를 좀 잠재워버리는 편이다. 많은 육아서들이 엄마의 인내와 희생을 강요하는 면이 있어서 반감이 들때도 있지만, 아이의 특성인 ‘연약함’을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책을 읽다보면 드는 생각. ‘어쩌겠나, 아이는 이렇게 미숙한 존재이며, 이게 다 성장의 과정인데...'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터넷으로 책 주문을 한다. [적당히 육아법] 과 [욱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아들을 행복하게 통제하는 법]. 제목들이 어쩜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것 같네. 부디 내일도 기쁨의 띠 위에 올라타길 희망하면서 결제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