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다
'돈은 인격체다. 어떤 돈은 사람과 같이 어울리기 좋아하고 몰려다니며, 어떤 돈은 숨어서 평생을 지내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주로 가는 곳이 따로 있고 유행에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붙어 있기를 좋아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패가망신의 보복을 퍼붓기도 한다. 작은 돈을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선 큰돈이 몰려서 떠나고 자신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 곁에서는 자식(이자)을 낳기도 한다.'
'돈은 감정을 가진 실체라서 사랑하되 지나치면 안 되고 품을 때 품더라도 가야 할 땐 보내줘야 하며, 절대로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존중하고 감사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돈은 항상 기회를 주고 다가오고 보호하려 한다.'
'돈은 당신을 언제든 지켜보고 있다. 다행히 돈은 뒤끝이 없어서 과거 행동에 상관없이 오늘부터 자신을 존중해 주면 모든 것을 잊고 당신을 존중해 줄 것이다. 돈을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처럼 대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돈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바뀌기 시작한다.'
스노우 폭스 김승호 회장의 <돈의 속성> 맨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처음 읽었을 때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얼얼했답니다. 돈이 인격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돈이 사람이었다니요.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패가망신의 보복을 퍼붓기도 한다'는데 그나마 내게 머물렀던 돈은 성품이 무던했었나 봐요. 패가망신까지는 안 시켰으니 말입니다. 못된 돈한테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판이네요.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붙어 있기를 좋아한다'에서 옛날 일이 하나 떠올라 알려드릴게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젊은 교수가 있었어요. 첫 시간에 그가 내뱉은 한 마디로 나는 지금껏 그 사람을 저속하게 보고 있답니다. "머니 머니해도(뭐니 뭐니를 그렇게 발음했음) 머니가 최고다' 이게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입에서 나올 소리냐구요. 지금 생각하니 젊어서부터 돈을 소중히 여기라는 중요한 팁을 줬을 텐데, 나는 내가 눈으로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경멸을 그에게 쏘아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몰려다니며 수다의 먹이로 씹어 먹기도 했겠지요. 20대 초반부터 벌써 돈을 멀리하는 태도가 확고했던 거지요. 그러니 뭘 소중히 여겼겠어요.
필시 교육 때문입니다. '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고 배웠잖아요.(최영장군님 왜 그러셨어요) 어려서 다녔던 주일 학교에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든다'라고 했을 때 부자는 참 불쌍하다 믿었고, 나는 절대 부자가 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겠지요. 돈 이야기는 천박하고 저급하게 여겨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지요. 돈 욕심을 내면 인생 망하는 줄 알았어요. '가난은 죄가 아니다 좀 불편할 뿐', 이건 드라마에서 많이 들었는데 가난이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지요.(그럴 수도 있겠지요)
나는 시쳇말로 평생 철밥통으로 살았답니다. 그다지 좋은 뜻으로 쓰인 말은 아니지요.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꾸준하게 들어오는 수입원이 있었던 거지요. 그 무던한 돈을 나는 어떻게 대했을까요? 돌아보니, 참 무심했고 무지했었네요. 무심했다 함은 관심을 가지고 알뜰히 돌보지 않음이고, 무지했다 함은 돈의 속성 자체를 몰랐음 이겠지요.
그러다 그 사달(전편의 사기사건)이 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내가 돈을 대한 태도를 보면 일단 책임감 있게 내 품에서 보호하지 않았어요. 남에게 맡겨서 키우려고 했지만 누가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키워주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기 짝이 없네요. 타인을 대책 없이 믿은 것은 일종의 책임 회피가 아닐까요. 주도권을 넘겨주었으니 무책임의 극치라고 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이렇게 말해볼게요. 새로운 친구가 왔어요. 저랑 잘 사귀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 참 무던한 친구였어요. 정기적으로 찾아와 베풀기만 하는 친구를 본체만체하고 당연하다 생각해서 감사하는 마음도 없었다면 친구가 기분이 어땠을까요. 저라면 점점 기운이 빠졌을 것 같아요. 반갑게 맞이하고 고맙다고 말하기만 했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지요.
육십이 넘어서 돈 공부를 시작하면서 돈의 속성에 대해 처음 알았습니다. 알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돈이 성격이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에 눈이 떠졌습니다. 혹시 돈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은 제대로 대하고 살았나 돌아보게 되었네요.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존중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사람뿐 아니라 물건이나 동물은 또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작은 것도 소중히 여겼는지, 집에 있는 고양이를 대하는 마음은 어떠했는지. 자세하게 돌아볼 것이 참 많네요.
보도 섀퍼의 <돈>에도 그런 말이 나와요. '당신의 생각하는 방식이 현재의 당신을 만들었다.' 돈 공부랍시고 길을 떠났는데 그 길에서 돈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함께 결국 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