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한테 된통 당했다
(※2편으로 발행했던 글입니다. 발행시 부주의로 브런치북에 넣지 않아 더 늦기 전에 3편으로 끼워 넣습니다. 발행하기전에 꼭 확인해야겠어요. 발행후에는 어떤 변경도 불가능해요. ㅠ)
'예나 지금이나 사기를 당하고 안 당하고는 그 사람이 멍청한지 아닌지에 달린 게 아니다. 지인 중에 누가 사기를 당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 멍청해?” 하지만 정말 멍청해서 속은 게 아니다. 그가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남을 믿지 않는다면 사기는 근절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사회라는 공동체의 역설적이고 모순된 부분이다.'(p.68)
대만대학 인기 강좌인 ‘사기의 사회학’ 교수 쑨중싱이 쓴 책, <신뢰는 어떻게 사기가 되는가>를 발견하고 가슴에 꼭 껴안았다. 머리를 쥐어박으며 빠져있던 ‘멍청이’라는 자책의 구렁텅이에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내려 온 듯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믿어서 그렇다니 일단 위안이 된다. "그래 너무 믿었어. 믿어서 그런 거야!"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통장에 돈이 사라졌다
칠 년여 동안 월급에서 오십만 원씩 종신보험을 들었다. 저축성 보험이고 이자가 1%도 되지 않던 시기에 3.5%의 이율까지 챙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사기당하는 사람도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이기심 때문에 속는 것이다. p.74 ) 입출금도 가능하고 유고시 보험금도 목돈으로 나오는 상품이었다. 직장에서 여러 사람이 들었었다. 2022년까지 사천여만 원을 모았다. 23년에 돈이 필요하여 이천만 원을 인출했다.(이때 이미 사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24년 가을, 예상치 않게 급히 쓸 곳이 생겨 나머지 돈을 찾으려 했더니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보험 설계사
그는 40대 초반이었고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이었다. 보험 영업하기에는 어리숙한 인상으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켰고 무한 신뢰감을 주었다.(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자주 찾아와 월간지 '좋은 생각'과 함께 선물을 건네주었고 내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알려주곤 했다. "선생님 퇴직금은 제가 관리해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강원도 사투리가 살짝 섞인 나직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OMG!) 돈을 불린다며 여러 가지 서류를 해 갔는데 전적으로 믿었다.(이미 사기에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제법 농담도 하면서 올 때마다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23년 겨울쯤 카톡으로 그의 부고을 받았고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에 부조도 하였다. 통장에서 돈이 다 사라진 걸 안 것은 그 후 약 1년 뒤였다.
그의 장난
보험사를 통해 정황을 알아내는데 한 달 이상이 걸렸다. 기가 막히게도, 알지도 못하는 내 명의의 보험 계좌가 두 개가 더 있었다. 돌려 막기를 했던 것이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최초의 원 계좌에서 돈을 빼 다른 두 개의 보험금을 메꾸었다. 그러다 내가 23년 중도 인출로 이천만 원을 요구한 시점에는 원 계좌에 출금 가능한 돈이 칠백여만 원만 남게 된다.
그 상황에서 그가 사용한 묘안은 두 개의 보험을 감액하여 (보험은 성격상 감액하면 원금은 다 날아가 버린다) 삼백만 원 정도의 해약금을 타낸다. 남은 칠백만 원에 보태 천만 원을 만들고, 오래전에 넣어둔 연금저축을 찾아 세금까지 다 토한 후 천만 원을 만들어 나에게 주었던 것이다.(이게 가능하다니) 결과적으로, 남아있어야 했던 이천만 원과 퇴직 후 받을 연금 천만 원까지 합해서 약 삼천만 원이 봄날 눈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믿음의 함정
돌아보면 허술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사람을 그렇게 믿을 수는 없다. 새로운 보험 두개를 들 때 보험회사에서는 확인 전화를 한다. 설계사는 미리 나한테 그런 사실이 있다고만 말하면 된다고 시켰고 나는 아무 의심없이 그렇게 했다. 보험회사에 확인했을 때 서류상에는 가짜 사인이 있었지만 녹화된 전화내용에는 내가 다 확인을 해주고 있었다. (보험회사 규정에 따르면 보험계약이 한번이라도 성립된 사람은 그 후 계약은 반드시 사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내가 빠진 함정은 사실은 나 스스로 판 것이다. 수익을 위해 돈을 굴린다고 설명했을 때 더 자세하게 물었어야했고 확인했어야 했다. 무지와 무관심이 상대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그렇게 함정에 내가 빠진 것이다. 시기꾼의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후폭풍
처음에는 기가 막히고 암울하고 억울하고 속상했다. 보험에 대해 원래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이 뚝 떨어졌고, 그 어리숙한(듯 보였던) 설계사도 원망스럽고 미웠다.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다음 순간 견딜 수 없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그 폭풍 같은 몰아침은 어떤 것으로도 잠재울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견뎌내어야 했다. 사기나 당하고 사는 내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알고 있는 욕을 나에게 퍼부었다. ㅂㅂ, ㅁㅊㅇ, ㅅㅁ, ㄷㅅ!!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래 저래 금전적 손실은 한 번씩 당하며 살고 있었다.(사기의 역사는 유구했다) 명상하는 친한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더니 그 정도에서 끝나서 다행이란다. 퇴직금 날리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냐며 잊어버리란다. 남들은 일찍이 당해봤는데 난 늦게 당한 것이라나.
믿음이 없으면 무너질 세상에서 모순 가득한 세상을 지탱하기 위해, 사람들은 작거나 크게 사기를 치고 당하며 살고 있다.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그래도 돈을 지켜내는 것은 내 몫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억지로 위안을 하며 일어나 본다. (여전히 속은 쓰리지만)
돈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 '다행'스럽게도, 돈을 잃어버리면서 돈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이 육십이 넘어서 비싼 수업료를 내었다. 한 번도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도 '돈'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우직한 애인을 대하듯이, 좋아는 하면서 무시하고, 무심하게 돈을 대했다. 그 애인이 떠나가 버렸다. 후회가 몰려온다. 돌봐주지도 않고, 남에게 맡기고, 긴 세월 동안 이용은 하면서 고맙다고,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나라도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애인'을 떠나보내고 후회와 반성의 마음으로 긴 참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안창호 선생은 문단속을 잘 하지 않아 도둑이 든다면 그것도 자신의 책임이라 했던 말이 생각났다. 문단속을 잘 해야겠다. 평생을 잘 단속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욕심과 게으름의 힘은 이리도 크다.
나는 원래 좀 어떤 사람?
'누군가 구매를 강요했을 때 물건을 사지 않아도 전혀 문제 되지 않지만, 어차피 몇 푼 안 하는데 속으면 좀 어때, 하며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기가 성립하는 것이다.' (p.77)
나는 그렇게 넘어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주 오래전에 학교 여교사들을 모아 놓고 약장수가 뭔가를 팔았는데 아무도 사주지 않자 마음이 불편해진 나 혼자 샀던 기억이 있다. (아무도 사지 않아도 아무 문제 되지 않았는데) 그랬던 사람이기에 사기를 당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DNA가 문제일 것 같은 이 부분도 이제 그만 극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