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일했던 경험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또 성장했는지
조직 생활을 하며 다양한 역할을 경험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신입으로 시작해서 사랑을 담뿍 받는 막내인 적도, 싫은 소리 도맡아 하는 팀 중간 연차 대리인 적도 있었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 모아서 재미나는 일을 꾸미는 역할도, 조직 내 정의 구현을 위해 사건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역할도 해보았다. 하지만 십여 년이 넘는 사회생활 연차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역할이 있다면 바로 누군가를 이끌고 육성하는 선임의 역할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공적인 선임의 역할을 수행한 경험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체 직장생활 기간을 통틀어 나에겐 사회생활을 시작한 두 번째 해에 딱 한 명의 후임이 있었고, 그와 단 몇 개월간 합을 맞추었지만, 결과는 썩 성공적이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변명하자면 선임의 역할에 관해 고민하기에는 당시 내게 주어진 업무와 책임은 너무 과중했고, 조직 내에서 그 누구도 그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거나,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과업을 그럭저럭 해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기합 바짝 들어간 의욕 넘치는 풋내기였고, 인격적으로도 미숙했음을 인정한다. 나와는 업무 스타일, 삶과 일에 대한 태도까지 모든 게 달랐던 그는 몇 달 후 본인에게 맞지 않는 업무인 것 같다며 팀 이동을 요청했고, 거기에는 좋은 선임이지 못했던 나의 영향이 크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팀을 옮기고도 얼마 안 가 퇴사했던 그는 모 대학교 근처에서 독립책방을 열었고, 직장에 다녔던 기간의 몇 배나 되는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을 하다가 몇 해 전 책방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애초에 조직 생활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은 되지만 그런 식으로 지난 기억을 덮고 싶진 않다. 그건 나의 분명한 실패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만회할 기회가 오리라고도 생각했지만 공교롭게도 늘 업무 유닛의 후임자거나 선후임 개념 없이 독립적인 형태로 일을 했고, 지금까지도 그는 나의 유일한 후임으로 남아있다.
반면에 내가 경험한 선임은 각각의 시기에 너무나 적절한 도움을 주는 이들이었다. 모두 나의 성장을 위한 지원을 하는 동시에 내 부족함을 메꾸어 주기도 했고, 보고 배울 수 있는 선배이자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짝꿍으로서 재미있게 일을 꾸미고, 때로는 끝없이 토론하면서 서로를 몰입하게 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선임으로서 백 퍼센트 실패의 경험만 가진 나는 좋은 선임과 함께 일을 하면서 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선임이 되기 위해서 내가 가진 역량과 내게 없는 역량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도 했다.
퇴사가 확정되고 가장 먼저 이 조직에서 나의 첫 팀장이었던 분에게 소식을 알렸다. 다음으로는 자연스럽게 첫 선임이었던 선배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순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한 건 아닌데 그게 당연한 것만 같아서 결정되자마자 두 번째로 말하는 거라고 하고, 긴 이야기는 직접 만나 하자고 짤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는데 선배가 말했다.
“고마워, 먼저 말해줘서.”
그냥 넘겨도 되는 마무리 인사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왠지 말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저한테 특별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며칠 후 약속한 날에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가족의 일로 퇴사를 준비하던 선배는 다행히 휴직 사유가 성립되어 올해 하반기부터 꽤 오랜 기간 떠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이미 작년부터 예정되어 있던 선배의 소식은 늘 건너로만 들었다. 여러 제도와 절차가 얽혀있고 본인에게도 스트레스가 컸던 과정이었을 테니 다른 팀에 있는 나에게까지 설명할 여력은 없었겠다고 이해했지만, 진행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언제 어떻게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먼저 물어도 괜찮은지, 작별 인사는 언제쯤 해야 하는지가 조심스러웠다.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떠나게 된 이 상황에서 우리의 만남은 그간의 고민들, 이 년 동안 각자 겪었던 일과 삶의 풍파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로 채워졌다. 내가 전혀 새로운 부서로 발령받아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선배도 새로운 사람과 합을 맞추고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함께 일하던 파트는 확장되고 업무 범위도 넓어지면서 꽤 버거운 시간을 보냈고,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 한 번 물어볼 여력이 없었다며 미안해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한쪽을 탓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선배의 말은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나는 혜빈이 나를 밀어낸다고 생각했어. 나를 불편해하고. 그래서 나한테 먼저 소식을 전해줬을 때 솔직히 좀 의외였고, 고마웠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같이 일했을 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잖아.”
나는 한 팀에 육 년간 있었지만, 선배는 중간 삼 년간 팀을 떠나 있었다. 그러니까 신입직원인 나에게 그룹웨어 사용법까지 차근히 일러주던 선생님 같던 나의 선임은 내가 충분한 업무 주도력을 가지게 됐을 때 다시 돌아와 나의 선임이 되었고, 우리의 관계 양상은 이전과 달라졌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신입이 아니었고, 다른 파트너와 함께 일하며 정립해 온 나름의 일하는 방식도 있었다. 그간 모든 굵직한 히스토리를 다 경험했기에 선배가 돌아온 시점에 파트의 업무 전체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실무자였고, 지난 사오 년 간 같은 방식으로 해오던 일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가장 깊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입사 첫해에 아기 캥거루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할 때는 크게 드러나지 않던 각자의 성격적 특성과 업무 성향 등이 두드러졌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우리는 그 모든 점에서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많은 이유로 우리는 함께 일하는 방식의 재정립이 필요했고, 그 과정을 진행하던 중에 나는 팀을 떠났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결코 이 사람의 선의와 진심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죽이 척척 잘 맞는 선후임이었다고 대답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게 아주 흔하고 평범한, 그리고 우리가 일을 더 잘해 나가기 위한 건전한 갈등일 뿐이라고 믿었다. 팀을 떠난 이유 중 그 어떤 것도 선배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에게 남은 감정적인 앙금 또한 없었다. 오히려 선배는 다루기 어려운 나 같은 후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미련할 만큼 성실하고 또 인격적인 사람으로 남아있고, 나와는 너무 다른 강점을 보면서 내가 저런 선임의 역할을 해내려면 다시 태어나야 할 거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너무 다른 사람이었던 우리는 지난 시간에 대한 해석조차 크게 달랐다. 새롭게 주어진 일을 하며 바쁘게 지내는 시간 동안 각자의 해석이 기정사실로 되고, 선배에게는 나와 함께 일했던 마지막 시간이 마음 한 편의 상처이자, 내 방식대로 말하면 ‘실패의 경험’으로 남아있었다는 걸 인제야 알았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영영 그 오해를 갖고 살았을 거로 생각하니 울고 싶어졌다. 퇴사 소식을 전하러 여러 사람을 만나는 동안 잠시 잠깐 눈시울이 붉어진 적은 있었지만, 이런 감정으로 나를 울린 사람은 처음이었다. 퇴사 소식을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는 그 말도 당연히 인사치레가 아니었을 것이다. 내게 선배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나한테 그 시간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나는 선배를 밀어낸 적도, 미워한 적도 없고 애써 풀어야 할 일도 없었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우리는 줄곧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니 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나에겐 더 이상 진심일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후임이었던 나를 떠올릴 때 갈등과 상처, 편치 않은 마음이 떠올라 우리의 선후임 관계를 실패의 경험으로 생각한다면, 확실히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과 함께 일했던 경험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또 성장했는지, 또 좋았던 것은 얼마나 많았는지, 신입이었던 나를 보살피던 내 언니 같고 보호자 같았던 당신을 얼마나 고맙게 기억하는지. 이것만으로도 나는 당신의 성공 경험이라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전혀 상관없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 생각보다 더 속상한 일이었다. 내가 남들에게 주는 애정의 강도와 범위, 그 방식에 관해 진지하게 되짚어 보게 할 만큼. 나는 그날 헤어지고도 오래오래 선배와, 이날의 만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나의 후임이었던 그를 생각해 보았다.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과 일하는 방식을 좀 더 알게 되고, 그때보다 조금은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더 스스로의 부족에 대해 알게 된 지금 다시 한번 그를 만난다면, 내 선임 역할도 그때보다는 성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고. 계속되는 직장생활 속에 언젠가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때보다는 많이 노력하고, 내가 경험했던 좋은 본보기를 따라갈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