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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May 12. 2023

회사에는 친구 없어요

댕댕이 유치원 같은 이 조직에서 한 마리의 개냥이로 살아가는 것

입사 후 6년 만에 처음 팀을 옮겼을 때 같이 일하게 된 선임이 지난 팀에서는 누구랑 제일 친했냐고 물었다. 다 친하다고 하니 그런 건 없다며 그래도 특별히 더 친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했다. 친하다는 의미도 알쏭달쏭한데 거기에 ‘제일’까지 붙으니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상대방이 생각하는 ‘친함’의 정의가 뭔지 되물었다. 그러자 질문자는 적잖이 당황하면서 ‘그냥 내가 가깝게 느껴서 내 속마음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건 주제에 따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를 것 같은 데요. 예를 들면 저는 일 얘기를 이 사람한테 하면 가족 얘기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어떤 사람한테는 연애 얘기만 하고,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를 같이 하는 사람도 있고요…….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상대방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됐어! 아니 무슨 친한 걸 물었는데 뭔 놈의 정의는 정의야. 앞으로 아무도 강혜빈한테 뭐 물어보지 말라고 할 거야. 물어볼 거면 정의부터 똑바로 하고 물어보라고.”


흥분하지 말고 친함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말해 달라고 하려다가 내가 먼저 제시했다. “그럼 ‘바깥에서 약속 잡고 따로 만나는 사람’ 정도면 어때요?” 그거면 되겠다며 컨펌받고 그에 부합하는 지인을 꼽아 보니 한 두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 이 사람들이 나와 친한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가끔 점심도 먹고 저녁은 더 많이 먹고 가끔 여행도 같이 가고 특별한 날 손 편지도 써주는 사이, 보통 그런 걸 친한 사이 라고 한다는 걸 정립 한지 3년쯤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에는 친구가 없고 동료만 있을 뿐이라며, 내 나이를 물어본 뒤 친구를 자청하는 사람에게 ‘우린 동료일 뿐’이라 잘라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을 세우고 나니 사실 친한 사람이 더 많이 생겼다. 나는 그 질문을 받기 전에는 친한 사람이라고 하면 마땅히 대답할 이름이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허들을 높이 세워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친한 사람이 늘었고 그건 정의definition의 힘이라 생각한다.


지난달 이사 갔긴 했지만 우리 동네의 주민이었던 같은 팀 동료는 넉 달간 나와 밖에서 저녁을 먹은 적도 있고, 영화를 본 적도, 자전거를 같이 탄 적도 있다. 그러고 보면 전사 통틀어 기간대비 가장 찐하게 논 셈이다. 그 점을 감안하여 팀원 중에서도 가장 먼저 따로 소식을 전했는데, 고맙게도 아쉬워하며 “퇴사해도 자주 연락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저는 용건 없으면 연락을 잘 못 해요.”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 솔직하게 말한다고요?”라고 하길래 “그럼 빈말하는 거였어요?”라고 받아치며 우리의 차이에 빵 터져 웃었다. 그래, 이 사람 정도면 친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친구가 되긴 어림없지. 오히려 충격적으로 좋았던 타입의 대화는 엊그제 만난 입사 동기가 내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이었다.


“오늘 둘이 먹은 이 밥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확률이 몇 퍼센트쯤일까요?”
“아주 높은 확률로 마지막이죠.”


누군가는 쿨하다 못해 냉기가 흐른다 할 수도 있겠지만 연락이 게으른 스스로를 알고, 특별한 용건이 없을 것도 알기에 고양이처럼 서로의 영역을 지켜 주는 사이. 우리는 입사 이래 8년여간 줄곧 이랬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내가 이 조직에서 배운 것은 너무나 댕댕이 유치원 같은 이 조직에서 한 마리의 개냥이로 살아가는 것. 비록 마지막일 것이라 예상되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욱, 다시 연락하자는 말을 빈 말로 만들지 않도록 정확한 연락 지점을 찍어 주는 것.


“일단 월말에 제 퇴사 공고가 나면 연락 한 번 하시고요, 본인이 퇴사하실 때 또 한 번 하세요. 그리고 본인 자녀가 초등학교에 간다, 혹은 이에 준하는 경조사가 있을 때, 그때도 잊지 마시고요. 꼭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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