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내 강점의 필터를 통과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서장님과의 퇴사 면담이 끝나고도 팀원들에게 바로 퇴밍아웃을 하지 못했다. 주말 지나고 팀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갤럽 강점검사라는 진단도구를 사용해서 구성원 각자는 물론 우리 팀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지 팀워크 관점에서 확인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내 생각에도 곧 퇴사할 사람이라는 가정 없이 참여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며칠 앞서 도착한 링크로 검사를 20분 만에 후딱 해치우고 상위 테마로(이 검사에서는 ‘강점 테마’라는 용어를 쓴다) 표기된 다섯 개 단어를 확인했다. 상세한 설명은 강사님께 직접 들으면 되는 걸 아는데도 이 다섯 개의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며칠간 관련 글과 영상을 뒤졌다.
갤럽 강점검사에서는 서른네 개의 강점테마를 다시 비슷한 속성끼리 묶는데 전략적 사고, 대인관계, 영향력, 행동의 네 가지 분류이다. 약간의 검사비를 더 내면 상위 스무 개 테마를 알려주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까지는 살면서 상황에 맞게 자주 꺼내어 쓸 수 있는 재능이라고 한다. 재능이라고 하는 이유는 개인의 개발 정도에 따라서 가지고 태어났지만 아직 강점으로 기능하지 않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강점에 초점을 맞추는 갤럽 강점검사는 그래서 약점을 고치는 것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재능을 극대화시키는 접근법이라는 설명이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나의 상위 다섯 개 테마 중 하나인 ‘최상화’가 이런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재능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알고 보니 이 검사를 개발하신 분도 최상화를 강점으로 가졌다고 한다.
나의 상위 테마 다섯 가지는 순서대로 수집, 전략, 최상화, 발상, 행동이었다. 앞서 말한 네 가지 분류 중에서는 전략적 사고에 해당하는 테마가 세 개, 영향력에 해당하는 테마가 두 개로 몰려있어서 균형감이 없는 건가 하고 슬퍼했더니 강사님께서 상위 스무 개 안에는 네 가지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할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수집이라는 게 뭔지 처음 봤을 때는 의아했는데 만물에 호기심을 갖고, 정보를 모으고, 질문하고, 무언가 끊임없이 읽고 찾고 배우는 나의 특성을 너무나 잘 설명해 주는 단어였다. ‘위키빌런’이나 ‘물음표 살인마’ 같은 별칭보다 훨씬 긍정적이니까. 검사 결과를 받자마자 워크숍을 못 기다리고 이것저것 검색하며 찾아다닌 것 또한 이 재능의 발현이었다.
같은 키워드가 있더라도 내가 선택한 문장들의 관계성에 따라 개개인에게 해당하는 설명이 다른 것도 갤럽 검사의 특성이었는데 예를 들면 우리 팀의 절반은 전략테마가 있었지만 내가 최상의 선택을 위해 정보를 분류해 내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는 기획자에 가깝고 누군가는 연구자에 가까운 것처럼 세밀한 차이가 있었다. 남들이 안 하는 생각을 하고 ‘창의적 또라이’라는 말을 듣기도 해 본 터라 발상테마가 들어가 있는 게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많아서 행동은 더디지 않나 싶어 행동 테마가 의외였는데 오랜 고민 끝에 퇴사 결정을 확실히 하자마자 목요일 팀장님과의 정기면담까지 못 참고 월요일에 바로 말해버린 나 자신을 생각해 보니 또 이해가 됐다. 일단 결론이 내려졌다면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고 못 배기는 이 재능은 강점으로 쓰이지 않으면 ‘두들겨보지도 않고 돌다리를 건너는’ 식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부디 나의 선택이 튼튼한 돌다리이길 바랐다.
서른네 개 테마의 전체 순위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강사님은 각각의 설명이 담겨있는 카드를 나눠주시면서 직접 읽어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하위 강점 (약점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특징적이다) 다섯 가지를 각자의 활동지에 적어보라고 하셨다. 주저함 없이 골라낼 수 있었던 몇 가지 안에 개발이라는 테마가 눈에 띄었다. 다음은 개발 테마에 관한 설명 중 일부이다.
개발(Developer) 테마가 특히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포착하여 이를 키웁니다. 이들은 발전을 보여주는 작은 징후들을 알아차리고 사람들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통해 만족감을 얻습니다.
누구나 자기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와 이 테마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결정적으로 이 테마를 가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조언도 ‘사람들은 자기 길을 스스로 찾는 것이 가장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였다. 큰 고민 없이 나의 활동지 빈칸에 ‘개발’이라고 적어 넣자마자 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처럼 HRD를 하시는 분들은 거의 이 개발테마가 상위에 나오시죠.” 마치 내가 쓴 내용을 보고 말씀하시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짚어서. 순간 번쩍하고 깨달음과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랬구나. 이 직무를 내가 잘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하고 싶지 않게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게 없는 재능을 요구하는 거였구나.
동시에 이제 퇴사는 결정한 상태니까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교육훈련을 통해 사람들의 역량을 끌어내고, 거기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서 아주 작은 성과라도 나는 걸 보람 있게 여기는 게 나한테는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던 이유를 알았다.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이게 정말 가치 있나’ 하는 갈등마저 느꼈던 건 많은 교육훈련을 받고도 변함없던 리더에 대한 트라우마적 경험 탓도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태어난 사고 구조였다는 게 더 설득력 있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떠나는 마음이 좀 더 편안하고 후련해졌다. 그리고 내 선택에 대해 확신도 더욱 생겼다.
약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참 훌륭한 일이고 그걸 해내는 것 또한 대단한 역량이지만, 최상화 강점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내게 없는 재능을 계속해서 끌어내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던 것이다. 단지 조직에서 주어진 일,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해낸다는 책임감으로, 그리고 꾸준히 해내면 주어지는 보상을 기다리면서 끝까지 해내기에 나는 스스로의 강점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 높은, 어쩌면 지나친 사람이었다.
워크숍을 마친 후 팀원들에게 퇴사 사실을 이야기했고, 며칠 후 같은 팀의 선배와 함께 한 커피타임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혜빈 님 같은 사람을 프런티어 경력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주도성이랑 관련이 깊은데 조직이 시키는 거 하지 않고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자기 주도적으로 찾아서 원하는 걸 하는 거죠.“
“그렇다기엔 조직이 시키는 일도 하긴 했지만… 맞아요. 자기 설득의 과정이 있었죠. 그게 돼야 할 수 있으니까.”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서로 처음 보직을 이동해야 했을 때 ‘여기서 일하면 뭘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생각에 스스로 완전히 동의한 뒤에야 업무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직무로 발령받은 뒤 작년 말부터 시작했던 그 생각이 끝났을 때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재능과 강점을 진단하고 나니 앞으로 해야 하는 일에 조금 더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가진 수집, 전략, 최상화, 발상, 행동이라는 재능을 주로 쓰고, 그걸 강점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을 선택해야겠다는, 단지 생각보다 좀 더 굳은 결심이 생겼다. 어차피 완전한 사람은 없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육각형 인재로 태어난 게 아니라면 같은 노력을 들였을 때 훨씬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게 더 합리적인 일 아닌가.
나의 팀장이었던 적은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늘 내 선배라고 생각했던 한 팀장님이 퇴사를 아쉬워하시며 건넨 한 마디를 더욱 가슴에 새기며, 어떤 일이든 내 강점의 필터를 통과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맘에 새겼다.
“무엇이 입력되든 자기의 것으로 한번 소화시켜서 출력해 내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혜빈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서 다르게 해낼 것 같아요.”
작년에 들었다면 너무 심한 포장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상의 선택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적으로 분류하는 건 내 가장 큰 강점이니까, 이 조직에서 수집한 모든 경험과 조언들을 통해 앞으로 할 일에 관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