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험을 밑천으로 또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시간을 쪼개어 사람을 만나고 있는 통에 사직원을 올린 이후로 매일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출근하고 있다. 월말 인사 공고가 났을 땐 이미 출근을 안 하고 있을 때라 혹시라도 공고로만 소식을 접하고 서운해할 사람이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내 메신저의 조직도를 접었다 폈다 한다. 청첩장을 돌려본 적은 없지만 소식을 전할 범위와 순서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갈 곳이 정해지지도 않은 나의 퇴사를 축하한다고, 응원한다고 말해 준 동료의 말을 들은 후 뒤이어 만난 한 팀장님께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는 말을 듣고 나니 이제껏 만난 꽤 많은 사람들의 반응 속에 어떤 패턴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배의 경우는 응원도 해 주지만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겪지 않아도 될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퇴사를 고려했다는 데 비중을 두지 않더라도, 내 경력이나 성장의 미래를 우리 조직 내에서 그릴 수 없었다는 말에 대체로 크게 안타까워했다. 여기에서 그 미래를 만들어가느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바깥세상으로 한 번 나가보겠다는 나의 대책 없음에 대한 걱정도 섞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나보다 연차가 적거나 나이가 어린 동료들의 경우 예외 없이 멋지다, 잘됐다, 부럽다, 응원한다 용기 있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먼저 보였다. 어쩌면 나이가 아니라 조직 내 직급에 따른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개별적 특성이라고 보기엔 그 대비는 꽤 뚜렷했다.
내가 속한 팀에서는 직원들의 경력 개발 경로를(CDP: career development path) 제시하는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 연초부터 TFT를 구성하고 다양한 학습과 논의를 계속해왔다. 짧지만 밀도 높은 고민의 시간이었고 그 고민은 결국 나의 퇴사로 귀결되었다. 솔직하게 이 과정을 이야기하자 팀장님은 “CDP 했다가 직원들 다 이직하겠어. 당장 접어야겠어요."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지만 나는 결국 조직에서 개인의 경력을 어떤 방향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때 직원이 더욱 몰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의 직장은 더 이상 평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드물게 정년까지 보장해 주는 조직이라면 조직과 일체가 되기를 요구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하는 게 개인에게 편한 선택일 것이다. 근속하는 것만으로 인정받고 조금씩 급여가 오르는 조직에서 자신의 성장이나 경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건 오히려 똑똑한 거라는 한 교수님의 말을 듣고 지난 8년여간의 나를 돌아볼 계기가 있었다. 그간 커리어 고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늘 인정적이고 또 안정적인 조직이 주는 적당한 만족감 때문에, 고민하는 지점을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았고 그때마다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일 잘하고 특별히 모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수십 개가 넘는 직무를 순환할 수 있는 선택지도 있었고, 그건 규모상 대기업으로 분류하는 우리 조직에서 일하는 이점이라 생각했다.
가장 최근에는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라는 낯선 직함을 가진 전문가분의 책을 읽고 저자와 직접 질의응답을 할 시간이 있었다. 조직 내에서 다양한 부서경험을 요구하는 경우 이후 경력으로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이미 퇴사를 결정지었는데도 뜨끔 했다. 물론 조직의 많은 선배와 동료들은 내가 하는 일의 개인적인 의미를 내 입장에서 많이 설명해주기도 했다. 감사 업무는 우리 조직을 보다 넓게 볼 수 있도록 관점을 확장해 주고, 그걸 통해 이 조직에서 내가 향후 무엇을 할지 더 잘 결정하게 해 줄 거라고, 성과관리와 리더 지원 업무는 앞으로 계속될 내 직장생활에서 좋은 리더에 대한 관점과 그렇게 될 수 있는 역량을 쌓아줄 거라고. 둘 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아주 귀한 경험이라고.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내린 정의는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장은 하겠지만 이렇게 일하고 1년이 지나면 뭐가 되어 있을까, 여기에서 쌓은 것으로 5년, 10년 후에는 뭘 할까, 내가 10센티 자랄 수 있는데도 1센티 자란 것에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는 데 게을렀다. 열아홉 살 때까지 매년 선생님께 제출하는 희망 직업과 비슷한 대답을 매년 스스로에게 제출했었어야 했다.
모두가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건 물론 아니다. 내 무모한 퇴사가 멋있다고, 응원한다고 말했던 많은 동료들이 이 조직에 만족하고, 충분히 성장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경력과 조직을 바라보는 선배들과 후배들의 관점은 이미 큰 간극이 벌어져 있었다. 이 조직 안에서 너의 미래를 풀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그분들은 직원과 회사가 일종의 거래관계에 있다는 관점을 조금은 더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조직의 주인이나 조직 그 자체가 아닌 주고받는 거래관계. 앞서 말한 전문가는 이를 자유연애 관계와 유사하다고도 했다. 우린 뜨겁게 사랑했지만 이미 끝난 관계라면 더 붙들고 있을 이유는 ‘정’ 밖에는 없는 것이다.
내가 8년 전 입사하면서 ‘첫 번째 직장은 첫사랑, 두 번째 직장은 헤어진 남자친구, 이제는 새 연인과 잘해보고 싶다’라고 말하자 듣는 이들 모두가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이 직장과의 관계는 끝났다. 많은 행복한 추억이 있어서 헤어지기가 어렵지만, 나는 이렇게 좋은 경험을 밑천으로 또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더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좋은 점이 있으리라 믿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