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린 최고의 복지

최고의 동료는 질문하는, 양질의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게 자극하는 사람

by 담쟁이

공교롭게도 팀장님께 퇴사 결심을 알리기 몇 시간 전에 나와 업무상 미팅을 가졌던 동료가 있다. 왜인지 팀장님보다 그에게 먼저 말하고 싶어서, 회의실을 나가는 그의 팔목을 붙잡고 들어와 “저 퇴사할 거예요. 지금 팀장님한테 말할 거예요.”라고 내던지듯 말했다. 그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문이 닫힌 걸 재차 확인하더니, “잠깐만, 잠깐만, 어디 안 아파요? 병가 못 내? 어학 휴직 내면 안 돼?”라며 짧은 시간 나를 회유하려고 애썼다. 본인도 휴직 경험이 있지만 그간 충분한 회복과 쉼이 가능했던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 덕분이었다고, 무작정 그만두지 말고 갈 곳을 먼저 좀 알아보라는 다급한 말에서 내 편에 선 진심이 느껴졌다.


그의 진심 어린 말에도 불구하고 모든 퇴사 절차는 계획대로 진행되었기에, 약 2주 후 동료로서는 마지막이 될 티타임을 가졌다. 인사 부서로 입사했던 그는 지금 마케팅 부서로 직무를 이동했고, 퇴사하는 지금 내가 인사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입사 초기부터 몇 년간 그의 전사 메일을 받았었는데 서명 끄트머리에 달려있던 문구를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나서 인제야 그 이야기를 건넸다.


“그때 그 ‘좋은 노동을 하면 노동자의 자아는 사라진다’라는 문구, 제가 정말 좋아했어요.”


노동의 정당한 대가와 가치, 권리에 대해 싸우고 투쟁하게 되면 피고용자인 내 신분에 대해 계속해서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최고 경영자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자본을 독식하는 구조가 아닌 비영리 단체인 이곳에서, 수많은 의견 개진과 때때로 있었던 갈등은 내 권리를 위한 것인 동시에 내가 일하는 조직과 동료를 위한 개선과 발전의 과정이기도 했다. 힘든 일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이 돌아보면 좋은 노동의 일부였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조직에서 노동자였던 적이 없다.


그 문구를 아직도 기억하냐면서 짐짓 놀라던 그는, 인사 부서에 있을 때는 누군가 퇴사한다고 인사를 하면 조직 관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조언이나 위로나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들을 거의 안 한다면서, 점점 조직에서 개인 관점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해했다. 그리고 나의 결정에 대한 축하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축복의 말을 건넸다.


“보고 싶을 거예요. 이 눈빛, 목소리, 얼굴, 리액션, 모든 게. 나한테는 정말 유니크한 사람이었어요."


유니크한 사람. 흔하지 않은 장점이 있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최고의 칭찬임을 알고 있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당신이야말로 그런 동료였음을 고백했다. 좋은 동료는 많이 있지만 내게 있어 최고의 동료는 질문하는 사람, 양질의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게 자극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 사람을 만나고 오면 나는 늘 나에 대한, 우리 조직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그에 답하곤 했다. 조금은 뜬구름 잡는 것 같고, 누군가는 쓸데없다고 할 수도 있는 대화를 누구보다 진중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이야기 후에는 늘 마음과 생각이 풍요로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번 티타임도 많은 질문으로 채웠다. 앞으로 일하고 싶은 조직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많은 고민 끝에 ‘인재 밀도가 높은 조직’이라는 답을 했다. 단순히 똑똑하고 잘나서 업무 성과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인격적인 사람이라고 신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인재고, 감시와 통제에 들여야 하는 불신의 비용이 필요 없는 곳이 인재의 밀도가 높은 곳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 조직의 인재 밀도를 높이는 데 분명히 기여하고 있는, 내가 아는 많은 동료를 생각했다. 그들 덕분에 내 직장생활이 얼마나 풍성했는지.


짧게 HR에 몸 담는 동안에도 ‘좋은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는 문장을 여러 번 들었다. 비영리에서 계속 직장생활을 했던 내 경험으로만 해석해 보자면 금전적 보상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조직에서 급여 외 동기부여 요인은 각종 복지와 합리적인 제도를 통해 얻는 비금전적 보상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좋은 동료에게서 받는 영감과 도전, 양질의 의사소통과 관계는 가장 높은 수준의 복지이며, 모든 사람이 누릴 수는 없는 일종의 선별적 복지로서 어느 정도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고려할 때 이 조직에 있거나 거쳐간 전체 직원 중에서도 내가 손에 꼽힐 만큼 높은 수준의 복지를 누렸다고 감히 자신할 수 있다. 누군가 나의 가족이나 언니, 동생을 자처해도 허락하지 않긴 했지만, 일하는 전 기간에 걸쳐 애정과 영감을 주고받은 동료들은 분명히 내가 누린 복지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때때로 가족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역할을 실감하는 순간도 있었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도 선뜻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사적으로 만날만한 관계는 아니니까 직장을 떠난 뒤 우연히 만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게 마지막일 거라는 직감이 있었다. 상대방도 똑같이 아쉬운지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계속 이어가며 시간을 끄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늦었지만, 이직과 퇴사를 결심하는 수개월의 과정에 내가 누렸던 복지에 대한 고려가 너무 적었나, 앞으로 또 이런 질문을 던지는 동료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마음 돌릴 것도 아니면서 이제 와 괜히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나는 어디에 가더라도 내가 가진 고유한 장점, 자기가 좋아했던 그 유니크함을 지켜갈 수 있을 거라며 마지막 축복의 말을 해 준 그는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자의든 타의든 조직 안에서 일하면서 존재를 상실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우리 존재 파이팅.”


내 존재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조금은 이상하고 또 유난스러운 나를 받아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큰 기여를 모르는 듯했지만 굳이 설명하기보다는 어디에서 무얼 하든지, 누구와 함께하든지, 내 존재를 잃지 않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일로 만난 사이에, 내 존재의 특별함을 알아보고 좋아해 준 이 특별한 동료의 소식이 나는 언제나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소식은 서로 전하지 않더라도 좋다. 일터에서 이런 동료와 함께였다는 것, 조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를 누렸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가볍게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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