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할 거야

견디는 대신 내가 잘하는 걸 하며 보내야지

by 담쟁이

연초 나의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털어놓았던 대학동기와 한 달 반 정도만에 다시 만났다. 우리는 대학 재학 중일 때 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자주 만나고, 더 깊이 알게 된 사이다. 성향도 체질도 체격도 아주 극과 극 같지만 은근히 잘 맞는 점도 있어서 지난 몇 년간 둘이서 많은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동기들은 거의 다 결혼을 했고, 우리는 여전히 아무 때나 불러내고 이것저것 함께하며 잘 놀고 있다. 서로를 잘 이해하면서도 누구보다 냉정하게 조언해 주고, 판단이 흐려질 땐 뺨따귀를 때리는 심정으로 쓴소리도 해 주는, 스무 살 무렵부터 나에게 이 친구는 그런 존재고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길 바라는 사람이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직전 가을에 우리는 친구의 퇴사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학교 다닐 때 매 학기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친구는 졸업하고 얼마 안 돼서 탄탄한 공공 단체에 취업을 했고, 그 기관에서 십 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지회로 입사한 뒤 두각을 드러내 본부로 발령받고 그 후에도 주요한 업무들을 하나씩 맡으면서 똑 부러지게 일하는 걸 인정받아온 편이었지만 조직 내의 비윤리적인 관행과 관료적인 문화, 그러고도 승승장구하는 상사들에 대한 회의, 그리고 심한 승진 적체까지 친구는 고민이 꽤 많았고 우리는 몇 해동안 계속된 그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친구의 퇴사 결심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 결정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랐었다. 이미 끝난 관계에 미련이나 망설임을 갖는 건 그만두고 힘차게 첫 직장의 문을 박차고 나오길 응원하고 또 종용했다. 하지만 퇴사 후의 일들은 생각보다 빨리 풀리지 않았고, 친구는 일 년 반이 넘도록 인생의 고비라 할만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모종의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부추긴 게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말렸더라면 친구는 안정적인 그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따위의 가정을 하면서. 그래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고 어느 정도 안정되어 보이는 요즘도 종종 조심스럽게 생각하곤 했다. 우리가 서로의 인생에 허락한 영향력은 얼마큼일까 하고.



퇴사 후 정해진 건 없고 일단 직장생활 중에는 어려울 정도의 길이로 여행을 가겠다고 하니 친구는 잘했다며, 퇴사 직후 불안이나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을 느낄 겨를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찌릿했다. 너는 그때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리고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쉬어봤잖아. 그 시간 진짜 불안하게 보냈거든. 내 목표를 상실한 것 같고 뭔가 불안에 떠는 시간을 보냈는데 지나고 보니까 너무 짧고, 돌아보니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리고 그 시간이 있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도 했어. 항상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인 투 식스로 일하고 주말에 쉬었다가 휴일에 기뻐했다가 했던 그 루틴이 깨지는 거잖아. 시간이 흘러가는 게 다르게 느껴지긴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그 시간에도 배움이 있으니까 다시 일을 하게 됐을 때 느낌이 다르긴 하더라고.”


지금까지도 이전의 안정감을 되찾지 못해 마음 한편에 불안과 불만족을 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난 시간이 친구에게 이런 의미로 남았는지 정말 몰랐다. 암흑 같은 시기를 다시 떠올려야 할까 봐 차마 물어보거나 먼저 화제에 올리지 못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내가 가지고 있던 걱정과 미안함이 너무나 쓸데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주 만나고 또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쩜 내 친구의 회복탄력성을 그렇게나 과소평가했을까.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튼튼한 친구의 마음에게 내 마음이 소리 죽여 사과했다. 생각보다 짧을 그 시간 동안 이것저것 발견하라며 나라면 충분히 그 시간을 잘 견디고 의미 있게 보낼 것 같다고 말해주는 친구 앞에서, 어쩜 너는 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지 물어보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그냥 꼭 그러겠다고, 고맙다고 대답했다.


처음에야 그저 조금 긴 휴가 같겠지만 어느 시점부터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낄지 나도 궁금하다. 과연 나는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 일할 동력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꽤나 모험적인 것처럼 말했지만 오히려 지난 십여 년 간 안정적인 직장을 유지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닌지, 내가 친구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했듯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믿어주는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적어도 딱 한 가지는 나를 과대평가한 게 확실하다. 내가 잘 견뎌낼 거라니, 견디긴 뭘 잘 견뎌, 참고 견디는 거 딱 질색인 거 잘 알면서. 나는 내게 주어진 공백기를 절대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놀고 배우고 즐기는 건 체질이자 재능이니까 견디는 대신 내가 잘하는 걸 하며 보내야지. 나는 견디고 싶지 않다. 직업이 있든지 없든지 어느 과정 위에 있든지 언제까지나 재미나게 지내고만 싶다. 다만 나를 움직이는 최고의 동력은 재미니까, 지금까지 재미있게 일했던 것처럼 어떻게 하면 앞으로 계속 재미있을지 좀 더 재미있게 고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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