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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어예 Feb 18. 2024

제4화 화장실 어디까지 가봤니

톨게이트의 비밀

건강은 친절과 사랑, 존중, 안전이 주는 안락함에서 발견된다.

진정한 건강은 일상의 수많은 사소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다정함의 과학


무릇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 가장 좋은 처방은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만사 오케이. 하지만 화장실을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는 터. 그나마 차선책으로 외출하기 전에 화장실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을 해 놓거나, 큰 건물이 있는 곳으로만 다니거나 주유소의 위치를 알고 나가는 것이 기본이다. 큰 건물이 있는 화장실과 주유소는 주로 오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고 나가도 늘 불상사는 있는 법. 화장실 때문에 일본 여행을 갔다가 요상한 술집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프리지어 한 단 사러 꽃집에 갔다가 집 화장실로 안내해 주신 기억도 있다. 덕분에 10만 원어치 꽃바구니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감사한 것은 어떻게든 짠 하고 화장실이 나타난다는 것.


과민성대장증후군에게 제일 힘든 것은 바로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겠다. 화장실을 미리 알아놓아 봤자 30킬로 이상 떨어져 있으니, 정체 구간이라도 만나면 정말 식은땀 삐질삐질이다.


지방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 어둑어둑해지고 차는 막히고 이미 마지막 휴게소는 바로 지났을 때 배가 또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운전하는 남편의 눈치를 슬슬 봐 보지만, 나에게 심리적 위안을 줄만한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러다 저 앞에 톨게이트! 지금이야 거의 하이패스에 카드 기계지만 톨게이트에 부스에 사람이 앉아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부스로 올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반대편 고속도로 쪽에 건물이 하나 보인다. 아 저 건물에서 부스로 오는 거구나? 그럼 어떻게? 느릿한 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치는데 부스 뒤에 작은 계단이 보인다. 아 저거구나! 나는 다급히 남편한테 소리친다.

"나 좀 세워줘. "

웬만하면 세워달라는 소리에 단련이 되어 있는터라 빠르게 톨게이트 지나자마자 갓길에 정차를 하고 묻는다.

"30분 정도만 가면 집인데 배 아파?"

"응, 나 빨리 갔다 올게."

"어딜 가는데?"

"저기 계단 있어~ 계단 내려가면 저 건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후다닥 뛰어 계단을 내려가니, 초록색 방수페인트를 칠한 바닥에 시멘트 냄새 그리고 초록색 페인트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형광등 불빛, 개미 한 마리도 없을 것 같은 을씨년스러움에 온몸이 차가워진다. 하지만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차마 뛰지는 못하겠어서 경보로 걷는다.


부스 번호인지 한 차선으로 짐작되는 거리마다 번호가 쓰여있다. 내가 내려온 곳이 20 몇 번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15번. 아마 1번까지 가야 하겠지? 왕복 10차선 정도였던가? 뒤에서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너무 무섭다. 끼익 끼익 소리에 물 내려가는 소리. 결국 난 경보로 가던 방향과 반대로 빛의 속도로 뛰어 다시 차로 돌아왔다.

"나 무서워서 못 가겠어~ 같이 가자."

남편의 어처구니없는 얼굴.

하지만 최대한 장화 신은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사정사정해 본다.

하지만 남편은 사정이라도 하지, 말도 안 통하는 뒷좌석 애들.  

"잠깐 여기 있어. 엄마랑 갔다 올게."

애들이 가만히 있으면 애들이 아니지.

가지 말아라. 엄마는 맨날 왜 그러느냐. 아빠 없으면 무섭다. 우리끼리 어떻게 있느냐 난리 난리.

유튜브 보고 있어라 게임하고 있어라 해도 막무가내다.

하지만 나도 양보할 수 없다.

결국 '오늘 집에 가면 게임 무제한이다!'를 공약으로 걸고, 넷이서 손에 손을 잡고 그 기나긴 지하의 초록 길을 지나 반대편 건물의 화장실에 무사히 도착.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중얼 거린다.

"하아 아까 화장실 간다고 차 세운 지 30분도 지났어. 이 정도면 집에 도착하고도 남았겠다."


그러게 결국 난 그날도 쭈굴 모드로 애들에게는 게임 무제한, 남편에게는 급식 봉사를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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