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 그게 뭔데.

69호수 등반기.

by 애라

우리는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났다. 큰 틀의 여행 방향과 꼭 가고 싶은 도시 정도만 정해놓고 출발했던 여행이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세부일정을 조정하기도 했고, 싹 일정을 갈아엎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일정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물론 있지만, 곧 가는 도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와라즈가 딱 그러했다.


우리가 와라즈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69호수 때문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처음 호수 사진을 보면 안 갈 수가 없다. 에메랄드 빛의 호수 뒤에 설산이 한 프레임에 있다는 게 신기하고, 낯설었다. 정말 그 사진만 보고, 와라즈는 꼭 가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와라즈는 고산도시라는 것. 이 마저도 와라즈에 도착하기 며칠 전에 알았다. 지나치게 정보 없이 행동했던 결과이다. 고산병에 대해 들어는 봤어도, 자세한 증상이나 대처법에 대한 건 몰랐다. 아주 다행인 건 와라즈에 도착하고도 고산병을 체감하지 못했다는 거. 약간 빨리 걸으면 숨이 차긴 했지만, 그 정도의 증상은 평이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안심했다.


고산병이 그걸로 끝인 줄 알았던 우리는 와라즈 도착 다음날, 69호수 투어를 신청했다. 다음 날 새벽, 숙소 앞으로 셔틀버스가 왔다. 배낭엔 전날 만들어 둔 에그 샌드위치와 물 2리터, 초콜릿이 가득했다. 투어를 신청하면서 꼭 챙겨 오라고 한 것들이었다. 가이드는 혹시 모르니 고산병 약을 챙겨 먹기를 권유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고산병 약이었다. 한숨 자고 나니, 셔틀버스가 멈췄다. 아침식사 간단히 하고, 마지막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출발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었을 때

호수 입구에 도착했을 때가 오전 9시 반이었다. 가이드는 늦어도 1시 전에는 호수에 도착해야 하고, 그때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중간에 쉬고 있으라고 했다. 평소에 운동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녔던지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제 출발선에 섰는데 당연히 자신감이 가득 했다. 여기까지 와서 호수를 못 볼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근거없는 자신감이 넘쳤던 것이다.


처음 평지 3km까지는 평이했다. 가는 내내 풍경도 너무 멋졌고, 소 친구들도 만나면서 여유로웠다. 사진 찍고 노래 들으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우리 그룹의 꼴찌가 되어있었다. 가이드는 우리 뒤에 붙어서 지금 빨리 걸어야 한다고 재촉했다. 조금씩 빨리 걷기 시작했더니 숨이 가빠졌고, 이러다 끝까지 못 가겠는데?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평지를 지나면 첫 번째 고개가 나온다. 그 고개 자체가 높은 건 아니지만, 지그재그로 오르막이 있어서 중간에 쉴만한 장소가 없었다. 사람들이 이곳저곳 우뚝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고, 나 역시 오르막을 시작하자마자 주저앉았다 걷다를 반복했다. 동생은 중간에 먼저 가라고 나를 보냈고, 그때부터는 혼자 가게 되었다.

69호수로 오해한 호수 / 1KM 지점부터가 두번째 고개의 시작이다.


첫 번째 고개를 넘으면 큰 호수가 나온다. 물론 이게 69 호수는 아니다. 도착한 줄 알고 엄청 좋아했는데, 가이드가 오더니 아니라고, 얼른 더 가자고 하면서 거의 나를 끌고 갔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겼다. 가지고 온 옷을 다 껴입었는데, 호수 바람 때문에 너무 추웠고, 발가락이 쥐 나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살짝 띵하면서 이게 고산병이구나 실감 나기 시작했다. 더 쉬다 가려니까 가이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 너 지금 안 올라가면 여기서 포기해야 돼. 내가 가방 들어줄 테니까 가자.” 사실 거절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미 내 가방은 가이드 손에... 거기 내 샌드위치 있는데!!!! 그렇게 두 번째 고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4400M의 고개를 넘어야 된다니. 가이드는 내 뒤에서 내가 앉으려고 할 때마다 다 왔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마저도 통하지 않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유혹했다.

가이드가 찍어준 사진 / 액션캠으로 찍은 사진


결국 가이드의 회유와 협박 끝에 저 멀리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도착하자마자 앉아서 물을 마시라고 했고, 고생했다며 사진을 찍어줬다. 가이드가 없었으면 아마 호수 근처도 못 갔을 거다. 그렇게 도착한 시간이 12시 20분. 나에겐 40분 동안 숨 돌리고, 사진 찍을 여유가 생겼다. 사진은 역시 실물을 다 담지 못한다. 손이 떨려서 흔들린 사진도 많고, 그 색감을 온전히 담기엔 나의 사진 실력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 어느 곳보다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또 페루를 오더라도 와라즈는 꼭 다시 와서 69호수는 또 갈 것이다.


호수에 앉아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밥 먹을 힘은 없었다. 가방 속 샌드위치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사진도 찍고, 동생에게 보여줄 동영상도 찍고, 호수에 발 좀 담그고 있는데, 내려가잔다! 아니!! 나.. 여기... 더 있고.. 싶은데...! 택도 없는 소리였다. 올라오는 건 3시간이었지만, 내려가는 건 2시간 안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쉼 없이 내려가야 한다. 오르막만 힘들 줄 알았는데, 고도의 변화가 갑자기 생기면서 오히려 내려가면서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우리 그룹의 꼴찌가 된 나는 가이드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내려 왔다. 집에는 가야 되지 않겠냐며 나를 끌어당기는데, 정말 울고 싶었다.


밑에서 기다린 동생은 동생대로 고생이었다. 고산병 약을 하나 더 먹어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구토를 했다고 했다. 다행히 구토를 하고는 괜찮아서, 근처 언덕이랑 평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으면서 기다렸다고 했다. 서로가 가장 애틋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반가웠다.


저녁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그때서야 배가 고프기 시작했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와라즈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찾았더라면 도착 다음날 바로 69호수 투어를 신청하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최소한 2일은 조금 적응하고, 후기들도 찾아보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것 같다. 그랬더라면 고산병 약을 먹는 것에 신중했을 테고, 좀 더 여유롭게 호수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나서 또는 와라즈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고산도시에 적응을 한 후에 69호수 투어를 신청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산병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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