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여행자

여행이야기의 서막

by 애라


나는 여행 욕심이 많다. 주변 사람들이 역마살 낀 게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다. “설렘.” 준비를 하는 과정부터 집에 돌아와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것까지. 그 일련의 과정이 나에겐 너무 재미있는 놀이이다. 물론 나에게 여행이 놀이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 여행을 갔을 때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에 여러 곳을 구경하고 맛집도 다니고, 야경까지. 그렇게 알차게 써야 그 여행이 만족스러웠다. 많은 것을 보려다가 대중교통만 타면 잠들기도 했고, 오히려 많은 것을 놓치기도 했다. 어떤 것을 어떻게 보다는 그저 많이 보려는 욕심이었다. 그때의 나도 설레었다. 열심히 다니는 여행에서도 배울 것은 많고, 보는 게 많은 만큼 기억에 남는 곳도 많다.

하지만 지금의 여행 욕심은 그 전과는 조금 다르다. 여러 번의 여행을 다니면서 생긴 나만의 여행 스타일이 생겼고, 이제는 그 스타일을 고수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한다. 한 여행지에 꽂히면 우선 체류일을 길게 잡는다. 그리고 열심히 돌아다니기보다는 그 지역 사람들처럼 생활한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근처 카페에서 밥을 먹고, 숙소 근처를 산책하면서 마트나 시장을 구경 간다. 사온 재료로 점심을 직접 해 먹곤 낮잠을 잔다. 하루가 아쉬울 땐 저녁엔 일몰을 보며 술을 한잔 하기도 하고, 조금 심심한 날엔 유명한 관광지를 가보기도 한다. 새로운 도시에 온전히 나를 물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천천히, 보고 싶은 것을 맘껏 보는 것이 나의 여행 스타일이다. 물론 체류비가 비싼 곳에서는 하루를 36시간처럼 쪼개 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겐 여행지를 분류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마트에 요거트 브랜드가 다양한 곳, 과일주스 한 잔을 다 마시면 리필을 해주는 곳, 편의점 음식이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곳, 대중교통이 특이한 곳. 나만의 기준대로 도시를 정렬하면서 언젠가 내가 살게 될 도시를 맘 속으로 정한다. 미래의 나의 보금자리를 선택하는 신중한 마음과 느린 시선이 모여 설렘을 만들어준다. 과거엔 빠른 여행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여행지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는 것에 욕심을 부리며 여행한다.

또, 나는 물건 욕심이 많다. 사실 배낭여행을 하기엔 최악의 유형이다. 그럼에도 물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 욕심들을 이고 지고 다닌다. 다닐 때뿐만 아니라 짐을 쌀 때마다 고생한다. 짐을 다시 쌀 때마다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원하는 옷도 챙기고, 혹시 모를 물건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게다가 다니면서 하나하나 사모으는 기념품까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수화물 전쟁이다. 그럼에도 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행 내내 같은 옷만 입고 찍은 사진 한 장, 안 쓸 것 같았던 물건을 사용하게 되는 중요한 순간들, 집에 돌아와 가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기념품을 꺼내는 뿌듯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욕심이 많으니 몸이 고생할 수밖에.

제일 좋아하는 기념품은 문구점에서 산 물건들이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스티커나 알림장, 풀, 모형자. 그래서 숙소를 정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근처 문구점을 찾을 정도로, 이 일에 아주 진심이다. 그렇게 산 노트는 여행 중에 일기장이 되기도 하고, 일정을 짜는 스케쥴러가 되기도 한다. 함께 산 풀은 티켓들을 붙이는 데 사용했다. 당연히 쓰지 못하고 새 노트로 한국에 가지고 온 적도 많다.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려고 샀던 크레용은 지금 한국에서 더 자주 사용 중이다. 태국어로 쓰여있는 스티커는 색깔별로 샀지만, 태국어를 전혀 몰라 그대로 서랍장에 있다. 각 나라마다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의 문구점에서 사 온 물건들은 항상 내 책상에, 서랍에 있다. 이것들만이 내가 정말 여행을 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그곳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요술봉 같아서, 정말 소중하다.

물론 정말 욕심이 났지만, 가방 사정 때문에 못 산 것들도 많다. 아르헨티나 시장의 한 골동품점에서 팔던 lp판들, 콜롬비아에서 사고 싶었던 쨍한 색의 해먹, 프랑스에서 사고 싶었던 배지들. 그런 건 핸드폰에 사진 한 장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다시 간다면 꼭 사오리! 하는 마음으로 찍어두었다. 그래서 나의 여행기엔 이런 나의 욕심들을 풀어보려 한다. 여행에서 사 온 기념품의 스토리, 사지 못하고 사진만 남겨온 물건의 스토리. 내가 여행지를 분류한 기준들. 그런 것들에 대해 가볍게 말이다.

그저 읽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에서 그치는 가벼운 글들을 적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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