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얼릿 몰러, 『지식의 지도』
이 책의 질문은 이렇다.
고대의 지식은 어떻게 중세를 거쳐 근대로 이어질 수 있었나?
여기서 고대의 지식의 대표로 삼은 것은 유클리드의 《원론》,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그리고 갈레노스의 많은 저술이다. 이것들은 각각 수학, 천문학, 의학을 대표한다.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 저서들도 충분히 빛나는 고대의 성취라고 할 수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관심 분야인 ‘과학의 지식’에 한정했고, 따라서 보다 명확하게 지식이 전달되는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갈레노스의 지식은 500년 경 ‘거대한 사라짐’을 경험한다. 그리고 10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다 15세기 후반 르네상스와 인쇄술을 통해 수정되고, 전파된다. 저자는 이 1000년을 추적하기 위해 7개의 도시를 골랐다.
저자가 고른 도시는, 알렉산드리아, 바그다드, 코르도바, 톨레도, 살레르노, 팔레르모, 베네치아다. 지식은 당연히 책으로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이 도시들은 이 책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전파시켰는지에 관한 증거가 된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갈레노스의 지식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저술되어 널리 퍼졌었다. 그 지식은 중세의 시작과 함께 유럽에서는 희미한 자취만을 남겼지만, 대신 이슬람 세계(바그다드)에서 수집되어 아랍어로 번역되고 보존되었다. 또한 이를 토대로 독자적인 과학 지식을 발달시켰다.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은 후기 우마미야 왕조의 수도였던 스페인 지역의 코르도바에서 모방되었다. 그리고 이 지식의 전통과 유산은 이슬람 세력이 축소되고 퇴출된 이후에도 스페인의 다른 지역들에 영향을 미쳐 톨레도가 번역 활동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아랍어로 쓰인 책들은 톨레도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그 다음 도시는 살레르노다. 살레르노는 중세 시대 의학의 중심지였다. 북아프리카로부터 아랍어로 쓰인 의학 문헌이 모여들었고, 갈레르노의 저서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살레르노의 의학 지식은 시칠리아섬의 팔레르모로 옮겨간다. 여기서는 노르만 왕조와 프리드리히 황제의 보호 아래 갈레르노뿐만 아니라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의 책들이 번역되고 보존되었다. 특히 아랍어가 아니라 소수로 남아 있는 그리스어 원본을 토대로 번역 작업이 이루어져 보다 정확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지식들은 모두 베네치아로 모여든다. 사실 여기서 베네치아는 어떤 상징과도 같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후로 지식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중심이 된 곳이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 말고도 유럽 각지에서 이런 흐름이 생겼다. 이렇게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지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가능해졌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원래의 내용이 그대로 남았지만(지금까지도), 프톨레마이오스와 갈레노스의 지식은 코페르니쿠스와 베살리우스에서 전복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복’되었기에 그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 지식이 보존되었기에 그것을 토대로 공부하고, 그것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고대의 지식을 온존시켜온 도시들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의 지식은 그것 자체로 옳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토대로 생각할 수 있고, 확인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유클리드, 갈레노스, 프톨레마이오스 저술의 새로운 인쇄본은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안에 있는 오류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6세기에 과학자들이 고전 이론의 부정확한 점ㅇ르 수정하고 자연 세계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토대로 잘못된 부분을 새 이론으로 대체하면서, 17세기 과학혁명기의 놀라운 발견들이 나올 수 있는 길을 닦였다.” (352쪽)
저자는 “정치적 안정, 자금과 서적의 지속적인 공급, 학문에 관심 있는 뛰어난 인재들의 유입,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타민족과 타 종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이 도시들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어쩌면 찬란하다고 할 수 있는 역사에서 조금 서글픔을 느끼기도 한다. 지식의 보존과 전파의 역사에서 지식 자체로 가능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위대한 지식의 보존과 전파, 발전은 도시의 지배자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지식은 허약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지만, 지식의 파괴는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도 멀지 않은 시기에 벌어졌던 지식 파괴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지식이 사라지면 세상이 희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