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과 행복. 덴마의 나오미수녀와 벤야민의 도피2

만화로 철학읽기 덴마와 벤야민5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도망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이 지루한 반복되는 일상과 예기치 못한 고난과 고통이 산재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허나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선 도무지 이 현실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유토피아는 항상 외국, 여행 속에만 존재한다.


이 유토피아 낙원에는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땅에서만 진정한 자기를 알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욕망이 잠재되어 있다. 타인이 자기를 알아볼 일이 없는,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의 자기를 알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베를린에서 모스크바로 떠났었고, 나치의 유럽을 피해서 미국으로 가려던 벤야민도, 수녀원을 떠나 어디로든 가고 싶었던 덴마의 나오미 수녀에게도 그런 욕망이.



어디로든 여기서 가장 먼 곳으로. 그렇지만 그 먼 곳 조차도 돈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 안에서만 정해진다. 분명 그러한 속세의 논리가 싫어서 수녀원으로 들어간 나오미 수녀지만, 토지 소유권 문제로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고 거길 나와서도 이 돈의 한계에 갖히게 된다. 이러면 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르나 푸코 같은 사람이 말했다는 '자본주의의, 세계의 외부란 없다'라는 끔찍한 말이 떠오른다.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내부의 바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건 아닐까.


그럼에도 정말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나오미 수녀는 이 모든 한계 속에서도 떠난다. 물론 정처없이 떠난 이 타지에서도 새로운 고난은 당연히 준비되어 있다.



정말로 마지막으로 남은 짐 또는 재산인 가방을 타지에 도착하자마자 도둑질당한 나오미 수녀. 돈이 없기에 식사를 하고서 설거지 노동으로 보상하려는데 그마저도 기차역에서부터 온갖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스트레스를 준다...


시선이란 참으로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 헤겔 시절부터 말해온 것처럼 우리는 타인의 관심 타인의 시선을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인정욕망이 있지만, 그 때문에 또한 인정투쟁에 시달리게 되고 고통을 받고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그래서 앞에서 말했듯 그런 시선이 없는 타지로의 여행을 이상화하지만, 나오미 수녀는 분명 멀리 타지로 왔음에도 오히려 수녀원보다 더욱 타인의 시선에 시달린다. 그리고 왠 낯선 남자가 자기를 찾아오는데...


놀랍게도 도시의 시장이 직접 나오미 수녀를 알아보고 찾아와서 그녀를 극진히 대접한다. 노인이 절반 이상인 실버타운 에벤에셀의 시장은 당연히 건강에 큰 관심이 있었고, 나오미 수녀가 그동안 만들어온 약효있는 만드라고라에 나오미 수녀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기에 시장을 비롯해서 모든 시민이 나오미 수녀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의 비서가 그녀에게 살짝 나오미가 계속 이 도시에 살며 만드라고라를 만들기를 원한다고 전해준다. 살던 수녀원에서 야반도주한 나오미 수녀의 입장에서 정말 만세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진작 그 끝도 없는 노동이 반복되는 수녀원에서 도망쳤어야 하는 게 아닐까 더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20세기 세계대전중 독일에 살던 벤야민도 이런 걸 기대하며 모스크바로 떠나고 미국으로 떠나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듬직한 경호원이 항상 대동해주고 그보다도 더 듬직한 시장의 신용카드를 받은 나오미수녀. 이제 그녀는 돈이 필요없는 수녀로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겨우 며칠만에 잊어버릴 만큼 이 풍족한 소비생활에 익숙해진다. 이는 참으로 무섭고도 매혹적인 돈의 마력이자 자본주의의 매력이 아닐까. 돈이 없을땐 누구나 돈과 자본주의에 악담과 저주를 퍼붓지만 돈이 많을땐 이 자본주의만큼 나에게 쉽게 만족과 행복을 제공해 주는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름신이라던가 sibal비용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가며 나의 행복을 위해 소비를 저지른다. 수녀였던 나오미 수녀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이전에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보며 그런 내용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일랜드였나 어떤 유럽의 소국에선 전통 음악 등 지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서 전혀 미국의 화려함을 부러워하지 않았었는데, 어느날 티비가 아일랜드에 들어오고 엠티비같은 방송이 시작되자 겨우 몇년만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할리우드와 미국 팝송에 열광했다고. 이 나오미 수녀도 그와 비슷한 씁쓸하고도 달콤한 자본의 참맛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부르주아의 자식으로 태어난 벤야민도 아마 그러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며칠만에 완벽하게 바뀌는 사람은 없고 나오미도 그러하다. 5일전에 수도원을 철거하겠다는 용역 깡패의 말을 나오미수녀는 기억해내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때마침 자신을 찾아온 택배원 덴마를 따라 다시 수도원으로 가게 된다. 허나 그곳에서 이전에 자신이 구하고 간호했던 거지들이 수도원 철거를 막는 광경을 보고... 나오미는 이전에 수녀원장님이 자신에게 남긴 말을 떠올린다...


양손에 시장의 카드로 사거나 선물받은 물건을 잔뜩 쥐고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거지 부랑자의 무리를 만난 나오미 수녀.


벤야민은 이 나오미 수녀처럼 도시의 빈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부모손을 잡고 상점가를 가다가 거리의 가난한 아이들을 만났었고... 파리같은 대도시의 거대한 아케이드를 산책하다가 화려한 상품들에 대비되는 거지 매춘업자 노숙자 심지어 온몸을 광고판으로 채운 샌드위치맨을 만났었다.


그리고 이 가진 것 없는 약한 자들 사이를 산책하면서 벤야민은 희망을 수집하고 새로운 서사를 구성해낸다. 어쩌면 나오미 수녀도 벤야민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철학자 랑시에르의 말을 빌려서 사회에서 아무 몫도 없는 자들에게 그들의 몫을 찾아주기...


나오미 그녀가 떠올린 원장수녀님은 왜 이런 말을 힘들어하는 나오미에게 남겼을까? 혹시 원장수녀님도 이전에?...




계속...


다음 주에 만드라고라편이 완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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