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한 길이다.
오늘 개인적 업무를 보기 위해 A 지역에 있는 한 법무사 사무실에 들릴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A지역은 제가 중학생 때부터 거진 20년 넘게 살았던 곳이죠.
법무사 사무실은 역 근처 모 빌딩의 높은 층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서류를 제출하고,
법무사가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밖을 내다보니,
OO 아파트가 보였습니다.
OO 아파트는 저 개인적으로는 근처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곳인데,
사실, 어머니께서 OO아파트에서 거주하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첫 발견 당시, 대장암3기셨던 어머니는 수술 후, 고된 항암치료를 마치고,
의사에게
'이제 깨끗하다. 앞으로는 항암 안해도 되고, 6개월에 한번씩만 봅시다.'란 말을 들었었죠.
그때가 어제같네요.
얼마나 기뻤던지...
다음해가 어머니 칠순이었고,
우리 형제들이 모 호텔에 있는 음식점에서 어머니 칠순잔치를 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행복했던 순간이죠.
그러다, 갑작스레 찾아온 대장암의 재발.
어머니는 2년 가까이 투병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는데,
당시 어머니께서 집에서 투병하시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며 119를 불러달라고 하셨던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누님이 어머니와 같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였는데,
당시 집에 같이 있던 저는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아파트 복도에서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여행은 되돌아올 수 있기에 행복하다.'
되돌아올 수 없는 여행은 너무나 잔인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을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셨고,
병원에서 며칠 뒤,
그토록 좋아하시던
따스한 햇빛을 다시는 쬐지 못하시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참 강인하신 분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올라와,
엄청난 절약과 강한 생활정신으로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렇게 든든하게 밥 잘먹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늘 운동하던 아파트 오솔길이 있는데,
저는 큰아들 세준이를 데리고 엄마 집에 가면,
엄마와 세준이와 함께
그 오솔길을 늘 같이 걸었더랬죠.
하지만 오솔길을 다시는 갈수가 없을 듯 합니다.
보는 순간 그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거든요.
나중에 재건축돼서 부숴진다는 말 나오면 그때 한번쯤 가보지 않을까 싶네요.
법무사 사무실에서 그 OO아파트가 보이는데,
참...
법무사 사무실에서 울 수도 없고,
미치겠더군요.
이주비대출 신청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타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엄마생각이 너무 나는데...
너무 보고 싶고,
엄마를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은데..
그럴수 없음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계속 나오더군요.
그러면서 지하철을 타는데,
예전에 읽었던
법륜스님의 인생공부란 책의 내용이 많이 떠오르더군요.
이제 가신 분은 놓아드리고,
남은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게
그게 떠나간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란 구절이 저에게 참 많은 위로를 주었었는데,
이제 어머니를 놓아드려야 할 듯 합니다.
저도 이제 마흔이 넘어,
인생의 전반전을 넘었고,
저를 바라보는 아내와,
사랑하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를 더욱 소중하고,
충실히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더이상 슬퍼하지 않고,
더욱 즐겁게 살기로 새삼 다짐했습니다.
그걸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바라고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실 무렵,
늘 저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듯 합니다.
돌아가실 때에도 자식들 걱정이셨던 게지요..
아마 저도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러 갈 무렵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저에게 늘 울지말라고.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고...
니가 울면 내 가슴이 더 미어진다고.
하셨는데,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도
자식 걱정을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그립고 그립네요..
그럼에도,
부모님 생각은 아주 가끔 하는 것으로 하고,
현재와 미래에 보다 충실히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렵니다.
사진: Unsplash의Liana Mik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