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맛을 다시 한번 더 느껴볼 수 있을까?
오늘은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바로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봤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화장실도 없는 지하실 단칸방에서 시작해,
부모님의 억척스러움과 희생,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갔었죠.
지하실 단칸방에서 2층으로,
2층에서 빌라로,
빌라에서 아파트로 말이죠.
때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쯤이었을까요.
지하실 단칸방에서 단독주택 2층집으로 이사하여 세들어살던 무렵이었습니다.
엄마가 볼일이 있다고 밖에 나가셔서,
혼자 집에 있는데,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리더군요.
누구세요? 하고 물어보니,
피자 배달 왔답니다.
피자??
말로만 들어봤던 그 피자?
그때가 벌써 몇십년 전인데,
한창 피자X이 한국에 생겨서 유행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바로 그 피자를 가지고 왔다고 하니
기쁨보다 의심이 앞섭니다.
문을 열고,
저희집은 피자 안시켰는데요? 라고 말하니,
한눈에도 무섭게 생긴 배달하는 형이,
밖에서 엄마가 시켰답니다.
"우리 엄마는 피자 시킬 사람이 아닌데요?"
아직도 이 말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니, 엄마가 참으로 근검절약하며 사셨던 것이 맞네요.
어릴 때를 아무리 떠올려봐도,
가족끼리 외식을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거든요.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식때도, 그 흔한 자장면집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배달하는 형이
어린 저를 보더니,
더욱 강하게 말합니다.
"야, 너희 엄마가 확실하게 시켰어. 바쁜데 얼른 피자 받아."
엉겹결에 피자를 받았습니다.
이쯤되니, 엄마가 진짜 밖에 나가시면서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집에 피자를 시켜주고 가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 속으로 엄마한테 감사합니다를 수천번 외치고,
배달된 피자의 종이뚜껑을 엽니다...
방안에 퍼지는 그 피자 냄새.
거진 30년 넘게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냄새가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서 처음 맡아보는 그 달콤한 냄새..
너무 황홀하여,
나도 모르게 한조각을 어느새 해치웠습니다.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말이죠.
그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다시 한조각을 먹으려는데,
아까보다 더 크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쾅쾅쾅!!
황급히 나가보니,
아까의 그 피자 배달부 형이네요.
"야, 야, 피자 어딨어?"
"네? 아까 저한테 주셨잖아요."
"야, 임마, 그거 너희 집 거 아니야. 잘못 배달했다고."
"이미 한조각 먹었는데요.."
"뭐? 야, 당장 물어내. 이거 얼마짜리인데 어떻게 할꺼야?"
"아까 그래서 제가 안시켰다고 했잖아요."
"뭐? 야, 너 죽을래?"
네, 분위기가 험악해졌습니다.
잔뜩 쫄은 저는 멍하니 서있는데,
하늘이 도우셨을까요?
그때 마침 엄마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기세등등하던 배달부 형이,
이제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달을 잘못한 그 형의 과실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책임지기 싫은지
엄마의 눈치를 살살보며,
그래도 돈은 물어주셔야 한다고 계속해서 우깁니다.
뭐, 상황은 화가 나신 어머니께서 피자가게에 전화 하는 것으로
간단히 정리됐습니다.
피자 한조각 먹은 것은 도로 갖고 가라며 그 배달부 형에게 줘버렸습니다
덕분에 처음 맛본 피자는 그 한조각으로 끝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먹을 기회는 없었죠.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남은 피자를 그 형에게 내밀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저는 어른이 되었고,
직장을 가졌으며, 결혼을 했습니다.
아들도 둘 낳아 키우고 있습니다.
가끔 아들이 졸라서 피자를 먹으러 갈때면,
어릴 때 그 피자 사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맛도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돈을 내고 사먹을 수 있는 피자이건만,
아무리 비싼 피자, 유명한 시그니처 피자를 먹어봐도..
그때의 그 맛이 나질 않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분명 그때보다 피자만드는 기술은 더욱 발전했을 것이고,
맛도 더욱 진일보했을 터인데...
왜 그때의 그 맛이 나질 않는 것일까요.
가끔은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때.
그 초등학생 2학년 때.
피자를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그 간절함이...
그 맛을 느끼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사먹을 수 있는 피자이기에
더욱 그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모두 건강하게 제 옆을 지켜주셨던 그때가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피자 #부모님 #어릴시절의추억
사진: Unsplash의Ivan Tor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