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를 찾으러 떠난 길,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떼제 공동체(1)

by 메리힐데

2025년 3월 5일,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떠난 이유는 순례길을 걷기 위함이었다.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는 잠시나마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야 했다. 익숙한 곳에서는 익숙한 모습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고, 나는 변화를 원했다.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진짜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나로 살고 싶었다.


1. 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내 짐이 너무 무겁다고 느꼈다. 이 배낭을 등에 지고 770km를 걸어가야 하는데 어불성설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10kg남짓의 배낭을 매고 걷는다는 것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불가능으로 보였다. 왜 사람들이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가라고 하는지, 왜 사람들이 중간에 짐을 버리게 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참 신기한 건 2025년 3월 7일, 생장 피에드 포트에서 순례길을 시작한지 1일차에도 그 이후 론세스바예스에서의 2일차도 그 이후로도 쭉 나는 나의 배낭을 잘 매고 걸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나의 짐은 나의 일부가 되어 나중에는 배낭을 매고 걷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졌다. 사람이 얼마나 적응을 잘 할 수 있는지 참 감사한 일이었다.


순례길을 걷던 어느 날, 짐에 대해 내가 쓴 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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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무거웠던 것은 나의 배낭이 아닌 내 마음이었다는 사실에 관한 일기였다. 나는 매일 매일 계획을 세워 걷곤 했었다. 마치 걷는 것이 또 다른 일이 된 사람처럼, 내가 걷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성취를 위해 내달리는 한 마리의 말이 되어 있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나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했던 것은 바로 이 '계획'이었다. 길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막았던 것은 내가 지고 가던 짐이 아니라 나를 미래를 위한 계획이라는 틀에 박아 놓고는 출발하는 순간부터 도착하는 순간까지 성취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 모든 계획들이 나를 인간으로 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날을 기점으로 모든 계획을 버렸다.


어차피 비가 온다고 걷지 않을 것이 아니고 다리가 아프다고 멈출 생각은 없었으니, 날씨를 찾아볼 필요도 아플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날 허락된 만큼, 그 길 위에서 내게 찾아온 모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충분히 사람답게 걷고자 했다.


2. 쉼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걷는 것밖에는 없었다.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걸었다. 아파도 걷고 내 몸이 더 이상은 도저히 갈 수 없을만큼 다리에 쥐가 나서 넘어질 때까지 걸었다. 그렇게 내 몸이 한계에 부딛히도록 했다. 한계에 부딛혀 결국은 두 손 두 발 다 들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파서 쓰러질 때까지는 열심히 해야 비로소 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어릴적 가끔 학교에 가기 싫은 날도 있었고 조금 아픈데 크게 아픈 척을 해서라도 조퇴를 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쓰러질만큼 아픈 건 아니었지만 피곤해서 쉬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조퇴를 하기 위한 조건은 '토를 했냐?'라는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학교를 빠지기 위해서는 토를 하거나 쓰러지거나 고열이 나야 했다. 그것이 아닌 이상은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쉼이었다.


다시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막상 그렇지만도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께서 '정말 너무 힘들어요. 오늘만 야자 빼고 싶어요'라는 한 마디에 그냥 아무 질문 없이 '그래, 쉬어'라고 해주셨던 적도 있었다. 아, 어쩌면 그때 나는 몸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한계에 마주했던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선생님이 아무런 질문 없이, 정말 그 정도로 힘든 것이 맞냐는 의문 없이, 나에게 쉼을 허락해주셨다는 사실에 참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내 몸이 진정 한계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쉼에 대해 큰 죄의식을 느꼈다. 몸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의문을 품었고, 그에 따른 어떠한 육체적 표징을 보지 않고서는 쉬어야 한다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순례길에서도 마찬가지, 그렇게 걷다가 나는 비자발적인 3일의 쉼을 가져야 했다. 무릎에 통증이 너무 심해 걷지 못했고 스페인 응급실에 가서 최소한 3일은 걷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다. 너무 억울했다. 나는 열심히 걸은 죄밖에 없고, 내가 이 곳에 와서 원한 것이라고는 딱 하나, 걷는 것 뿐인데 그조차 이제는 허락되지 않는다니.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쉬려고 하니 너무 두려웠던 날, 쓴 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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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쉼은 두려운 존재였다. 쉰다고 나아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두려웠던 것이다. 나에게 쉼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을 위해서만 의미가 있었다는 무의식을 나의 두려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쉼은 꼭 일 뒤에 오는 달콤한 보상이 아니라는 믿음 아래 살기로 했다. 쉼이 보상이 된다면 나는 쉴만한 일을 해야만 쉴 수 있는 가련한 존재가 된다. 쉼은 쉼이다. 그냥 내가 쉬고 싶으면 쉬는 것이다. 내가 자유로이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면 된다. 나아지지 않으면 나아질 때까지 쉬면 된다. 몇 시간을 앉아 있었을 뿐인데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허벅지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허벅지의 힘으로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되었고 의자에도 다른 기구의 도움 없이 앉을 수 있었다. 시간을 주면 충분히 회복해나간다. 애쓰지 않아도.


앞날을 모른다는 것은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만 더 힘들어질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10초 뒤를 상상하며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지나가고 있는 1초를 충분히 느끼고 그때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뿐이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의 끝을 잘 맺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순례길을 걸으며 느꼈던 순간들의 기록을 기억하고 써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글을 다 마무리하는 것, 완성하는 것보다 모든 글자에 나의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이 순간이 '글쓰기'의 99%다. 그 순간들이 모여 마무리에 도달한다면 그 또한 그 순간의 기쁨으로 충분히 느끼면 되는 것처럼. 순례길에서 나는 '쉼'을 처음 가져보았다. 쉰다고 나아질까?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맛있게 먹고 예쁜 것을 보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매 순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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