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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May 31. 2020

금본위제 및 금환본위제

미국 경제 역사 이야기 39

금본위제(Gold standard System)라는 용어는 경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이나 목적은 지금 경제생활과 맞지 않아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금본위제


금본위제란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돈의 단위)가 일정한 무게의 금과 연동이 되어 있거나 유사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Gold Bar  <출처: 위키피디아>


예를 들어 쌀 10킬로그램짜리를 하나 샀을 때, 지불한 화폐의 가치가 동일한 가치의 금과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초 경제에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금속 화폐인 금화, 은화가 유통이 되었다.


하지만 운반이나 보관, 분실의 위험, 가치의 훼손(금화의 테두리를 깎거나 갈았다)으로 간편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를 대체한 것으로 지폐가 나왔다.


지폐는 동일한 액수의 금과 교환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 지폐가 바로 금태환 화폐이다. 즉 금태환 지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발행한 은행에서 동일한 기준의 금으로 교환이 가능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영국 왕실의 조폐국장으로 30여 년간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1717년 오직 금만이 화폐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공표했을 때, 역사적인 금본위제가 시작되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출처 : 위키피디아>


금본위제와 기축통화 파운드


1816년 영국 의회가 ‘금본위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최초로 국가의 법정화폐로 금이 인정받았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 국가에게 자국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었다.


영국 제품을 수입한 나라들은 반대로 원재료를 영국에 수출하고 있었다. 영국의 금본위제 시행으로 자국의 통화가 환율로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영국과 동일한 정책을 시행해야 했다. 결국 하나둘씩 뒤를 이어 금본위제를 도입했다.


1870년 대에 프랑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도 앞다퉈 금본위제를 확립했다.


이 시기 영국 파운드는 기축통화라는 위치에 오르게 됐다. 런던은 전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금본위제를 통한 영국의 금융에는 어떤 장점이 있었을까?


당시 은행(금융)의 주요 업무는 어음과 수표, 주식이나 채권의 유통이었다. 먼저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환경(수출 포함)을 조성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와 대출을 통한 자금의 공급을 원활히 유지해 주는 것이다. 실물이 오고 가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상상 이상의 이익을 냈다.


영국 잉글랜드 은행 본점  <출처 : 위키피디아>


이를 바탕으로 런던의 금융시장은 거대한 자본을 만들어 공급을 지속할 수 있었다. 얻게 되는 수수료와 이익은 경제 발전에 다시 재투자가 되는 사이클이 만들어졌다.


아울러 이자율 조정을 통해 부족해진 금을 유입하거나 지출할 수 있어 실질적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뒷받침했다.


다만 금본위제 하에서 유통되는 은행권은 금으로 연결되어 있어 임의로 화폐를 발행하거나, 소유하고 있는 금의 총량을 넘어서는 화폐를 발행할 수 없었다.


문제점은 경제 규모가 성장하고 커 나갈수록 금의 용량도 같이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부족해진 화폐의 양으로 물건 값이 하락하는 현상이 발행했다. 장점은 정해진 규모의 화폐를 초과할 수 없어서 안정된 환율을 제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금은복본위제와 금본위제


금과 은을 모두 본위제로 하는 '금은복본위제'는 미국 독립 이후 적용된 제도였다.


1792년 법령  <출처 : 위키피디아>


이것은 금와 은을 모두 지폐와 연동시킨 것이다. 이럴 경우 금화와 은화, 모두 화폐로 유통이 된다.


해밀턴의 1차 주조법(Coinage Act of 1792)에 의해 적용된 이 제도는 금과 은의 비율이 1대 15의 비율로 고정되어 운영되었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금과 은의 잇따른 발견으로 금와 은의 비율이 매번 조정이 됐다. 이런 불편함과 시장 경제(영국의 금본위제)를 맞추기 위해 금을 중심으로 한 금본위제도로 전환하게 된다.



브레턴우즈 회의의 영국 대표 존 메이너드 케인즈 <출처 : 위키피디아>


여러 정치적인 타협과 경제 공황을 거치며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과정에, 전쟁이 터졌다. 급증하는 전쟁 비용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금본위제를 중단하게 됐다. 지폐를 찍어야 했다.


금환본위제의 시작과 기축통화 달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통해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 system)’를 만들게 됐다.


이는 금과 달러를 연계시키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전 세계 기축통화를 달러로 통일해야 했다.


결국 미국의 주도하에 동의된 이 체제는 금 1온스당 35달러(고정 환율)로 연결시키는 것으로 정리됐다. 외국 정부는 달러를 가져오면, 이 비율로 미국의 중앙은행에서 금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출처 : 위키피디아>


닉슨쇼크와 금태환 중단


이 체제는 일정 기간 운영되다가 1971년 '닉슨 쇼크'에 의해 종료되었다. 이 조치를 기점으로 달러는 금으로 태환이 중단되었다.


베트남 전쟁의 전비 압박으로 태환 할 금이 부족해진 미국 연방정부가 내린 조치였다. 지금 유통되는 달러는 금태환이 되지 않는 불태환 지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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