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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ul 10. 2022

제주에서 고기 국수를 즐기다

혼자서도 고기 국수는 먹을 수 있짆아?

  여행 중에 제일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뭘까? 그것도 혼자라면 의외로 선택권이 거의 없다. 제주에서 혼자 밥 먹기는 쉽지 않다. 단순하게 끼니를 해결한다는 수준이라면, 그냥 편의점이 제격이다. 

  하지만, 여행까지 가서 편의점 컵라면을 먹는 것은 좀 아니다. 그럴 거라면 솔직히 집에서 티브이 보면서 배달의 민족을 애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인간의 소비 중에서 가장 감상이 개입되는 것이 여행 아닐지? 

  제주까지 와서 좀 억울하지 않나? 혼자 온 것도 서러운데, 먹는 것도 제한이 있다면. 그래서 어쩜 외로운 사람이 오히려 면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제주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요즘은 신혼여행으로 온다는 유명한 관광지. 떠오르는 메뉴만 생각해봐도 흑돼지, 고등어구이나 쌈밥, 각종 회, 감귤, 한라봉 등. 먹을 것은 많은데, 결국 혼자 밥 먹기가 가능하면서 유명한 곳만 찾아다녔다.   

   

  그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아마 해물 라면일 것이고, 그다음이 고기 국수 아닐지. 보통 국수라면 멸치국물에 소면을 넣거나, 비빔국수 아니면, 열무국수 정도 생각하고 살았다. 아무리 면을 좋아해도 지역적 특색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내가 다양한 면의 맛을 느낀 것은 부산에 가서 밀면을 먹었을 때 같다. 한여름 해운대에서 밀면을 시켜 먹었는데, 서비스로 나온 뜨끈한 육수를 이온 음료처럼 먹었던 기억은 맛의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 후로는 각 지역에 유명한 국수는 꼭 찾아서 먹는 편이다. 그리고 제주는 쉽게 가지도 또 즐기기도 어려운 곳이기에 밀덕인 나는 더욱 기대했다. 

제주 가시아방

  기왕이면 최대한 두 가지를 다 먹어보자 싶어서 성산 일출봉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가시아방 국수집’을 오전부터 찾아갔다. 역시나 대기가 있었고, 전날 먹은 혼술을 풀어낼 겸. 비빔국수를 먹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매콤 달콤한 소스가 담뿍 비벼진 쫄면에 돼지고기 고명이 올라간 느낌이었다. 그래도 비계 가득한 고기와 면발과 야채가 입안에 함께 씹히는 느낌은 만족스러웠다. 사실 국수는 배불리 먹는 음식이 아니다. 맛을 느끼면서 점을 찍듯이 먹는 음식이다. 여기서 폭식은 국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만 좀 양이 부족하다면 곱빼기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결국, 그릇에 담긴 소스를 고기에 설거지하듯이 쓱쓱 담아 마무리하고, 입가심으로 육수를 마시면서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그럼 진짜 고기 국수는 어떤 맛일까? 돼지 뼈를 우린 구수한 육수에 면을 담은 감칠맛 나는 국수라는데, 보기에는 사골 육수에 면을 넣은 느낌? 보기에는 참 느끼해 보였다. 사골 국물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국수와는 잘 어울릴지. 그냥 대충 설렁탕을 상상하고 식당을 찾아갔다. 

  ‘거멍국수’라는 조금 외진 곳에 식당이 있다. 제주도는 해안 쪽을 제외하고는 내지에는 넓은 평지가 많다. 드문드문 관광지가 보이는데, 아르떼 뮤지엄이나 밀리터리 덕후가 좋아할 만한 실탄 사격장도 근처에 있었다. 솔직히 먹기 위해서 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실탄 사격장을 우연히 마주치고, 신나게 권총을 쐈다. 뭐 성적은 앞에 젊은 여성분보다 잘 못 쐈다면 충분한 설명일까? 공복에 그 정도면 상관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표적지를 둘둘 말아서 빨리 나오긴 했지만 부끄러운 것은 안 비밀이다. 


  그렇게 놀고 와서 먹은 국수다. 뽀얀 국물을 마주하고, 창밖에 혼밥 테이블에서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먹었다. 그런데 의외로 담백했다. 느끼함보다는 든든함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오히려 느끼할 것 같은 하얀 국물과 두툼한 비계로 올려진 고명이 고소했다. 그냥 순식간에 그릇을 비워 버렸다. 혹시나 이런 포만감 상태로 실탄을 쐈다면, 좀 나은 결과가 나왔을 거 같았지만, 아쉬운 만큼만 먹고 즐기는 것이 여행의 묘미니까. 다음을 향해 움직였다. 

거멍국수에서 먹은 고기 국수
거멍국수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단순하게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아쉽다는 마음이 더 진하게 남는다. 아무리 계획적으로 움직여도 돌아오면 허전하다. 그래서 나는 너무 과하지 않은 여행. 혼자라고 해서 즐기지 못할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여행했다. 또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만족스러운 인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비록 영점에서 멀어진 표적지를 남겼지만, 난 고기 국수를 맛나게 먹고 즐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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