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노라바 해물라면을 먹었다
마흔이 되었다. 80년대생인 나는 앞으로 살아갈 일이 불안하다. 역병, 전쟁, 인플레이션 등 즐거운 뉴스가 점점 사라진다. 게다가 지금은 너무 쳐진 개인적 삶. 마치 내 모습의 하늘에서는 장맛비가 내린다. 물론 어딘가는 비가 폭우로 내리는데, 여기는 내릴 듯 말 듯 애만 태우지 막상 빗방울은 구름 속에 자주 숨어있다. 영화 <신세계> 대사처럼 ‘딱 죽기 좋은 날이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 걷는다. 신장 177cm, 몸무게 92kg에서 지방 덩어리를 14kg을 길거리에 버렸던 몸뚱이다. 우울하다고 안에만 있으면 다시금 우울함과 더불어 합체할 테니 우중충한 날씨에도 잠시나마 걷는다. 하지만 다리는 움직이는데, 머리가 심심하다. 그래서 즐겨 듣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바로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인데, 지리를 기준으로 그곳의 역사와 생활, 경제 등을 두루두루 쉽게 설명해주시는 박사님으로 보통 한 회에 1시간의 분량을 운동이나 자동차로 이동 중에 듣는 편이다.
최근에 업로드된 내용은 <부의 미래>라는 책을 소개라기보다는 추억하는 평론 겸 자기반성의 시간이랄까? 차분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설명하는 박사님을 따라서 과거로 그 과거로 되돌아보니 중학교 시절. 학교의 작은 도서관에 모셔진(?)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 <권력 이동>이 생각났다. 그리고 유명하다고 하니, 대학교 다닐 무렵에 <부의 미래>도 읽었던 것 같은 추억이 있다. 아마 박사님 말대로 마흔까지는 알겠지만, 그 이후 세대는 잘 모를 수 있는 미래학자의 저서를 새삼 설명하는 박사님의 농담에 마냥 웃을 수 없는 80년대 생이었다.
불확실한 시대에 뜬소문처럼 들리는 여러 유행 같은 지식보다 역시나 저명한 저자의 고견은 탐구할만하다. 사실 격하게 공감한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결국은 사람은 새로운 변화의 기준을 과거에서 찾고, 발전한다. 그리고 최대한 밝은 희망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그런데, 나 같은 비관주의자가 쉽게 낙관적인 미래를 찾기가 어렵다. 솔직히 저 두꺼운 <부의 미래>라는 책은 라면 받침으로 쓰기도 어렵다. 아마 목침 정도면 모를까…. 그냥 또 부정적 상상을 하다 보니 날씨가 딱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생각났다. 박사님의 설명이 나에게는 신기하게 라면으로 들렸다.
그래 라면!
나의 라면은 유치원에 커피 보트 물에 부어 먹었던 짜장 범벅이었다. 지금과는 사뭇 촌스러운 디자인의 삼양라면도 있었고, 너구리나 신라면, 안성탕면도 골고루 먹었다. 물론 대형 마트에 묶음 포장도 아니다. 그냥 시골 구멍가게에서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르고, 그냥 먼지 쌓인 라면도 사 와서 포장지에 제시된 순수 요리법으로 대충 먹었던 라면. 그때는 나는 라면을 어디까지 가서 먹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기억에 당시의 라면은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비싼 음식이었다. 떡볶이에 단순히 라면 사리가 있다고 라볶이는 두 배가 비쌌다. 라면을 사 먹는다는 개념보다는 잔치 국숫집이 대세였다. 편의점도 없던 시절에 컵라면은 학교 매점이나 집에서 혼자 먹는 애들이나 먹는 대체 식사였다.
밀레니엄이라는 시대에도 여느 지역에서 자정까지 문을 열고 있던 면 요리는 기차역 주변 가락국수가 있었다. 아마 단가도 싸고, 조리도 쉬운 영향이겠지만, 편의점이 생기고 그것도 사라졌다. 편의점이라는 장소가 생기자. 사람들은 집과 학교를 벗어나 어디서나 라면을 먹었다. 또 우리가 어느 민족인가? 컵라면은 싫다고, 호일 용기에 끓여 먹는 라면 기계도 개발했다.
점점 인터넷이 발전하고, 사람의 교류가 발전하자. 이른바 조리법이 공유되었다. 대충 파랑 달걀은 넣어서 먹었던 라면이 이제는 정말 다양한 라면의 조리법이 파생되었다. 지금은 각종 맛집 리스트가 내가 살지 않는 곳에도 공유된다. 책으로 보지 않아도 단순한 검색으로 제주의 라면 맛집을 찾아왔다.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제주도를 갔지만, 내 즉흥적인 기분으로 금방 찾아왔다. 게다가 이미 여러 사람이 다녀간 맛집으로 어느 정도 맛도 보장된 상황이다.
34년 전 유치원을 다니던 내가 꽃게가 올라간 라면을 제주도에서 먹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초등학교 5학년 286 컴퓨터에 플로피 디스크를 쓰던 내가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기로 그것도 키보드 없이 타자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짬뽕보다 비싸지만, 일부러 찾아와서 먹게 되는 음식 메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참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어디까지나 라면은 기본 식사의 대체품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이제 대기하는 줄도 없다. 은행도 있는 번호표도 없다. 입구에서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 알아서 대기 번호와 호출을 해준다. 신기한 세상이다. 라면은 먹은 나도 같고, 라면은 그냥 라면이라고 부르지만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맑은 하늘이 보이는 제주도 애월읍에서 나는 줄을 서서 게가 통으로 들어간 해물 라면을 먹었다. 맛은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냥 맛집이라는 아주 당연한 움직임으로 찍은 사진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솔직히 세상의 장래는 밝지 않다. 화나는 일도 많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변수로 인해서 꼬일 대로 꼬여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책을 보면 답이 보인다고 한다. 특히나 고전을 보면 좀 해결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학자도 아니고, 밝은 빛을 품은 희망 회로를 갖지도 못했다. 그래서 어려운 책을 내식으로 풀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생각해본다. 라면이라는 음식 하나만으로도 과거의 내가 참 편협한 시각으로 생각하고 살았구나 싶은데, 다른 것은 또 얼마나 대단할지.
과연 나는 이제 라면을 어디까지 가서 어떻게 먹게 될까? 정말 최준영 박사님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셨겠지만, 내식대로 풀어본 라면의 미래는 한없이 맛있을 거라. 기대해도 될까? 입맛을 다셔보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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