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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un 22. 2022

수제비 너무 과식하는 거 아냐

곱빼기 먹고 남원 수제비를 추억한다

전통시장에서 먹은 수제비

  장마가 오려고 한다.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는 여름이면, 부침개와 함께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수제비


  참 묘하다. 같은 음식인데, 먹는 장소나 분위기나 재료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지난번에 먹은 전통시장 수제비는 할머니가 해주신 투박함이 있지만, 추억을 넘기는 맛이다. 그렇지만 평소에 자주 가는 수제비집은 매운 중독성이 있다. 아마도 사람들 성격이 다 같을 수 없듯이 수제비도 그런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메인 사진에 걸린 맑은 국물의 수제비를 먹어보았다. 땀은 덜난 담백한 맛이지만, 김치에 술술 넘어가는 맛이 상상을 더해서 이미 곱빼기를 시켰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럴 때 주의 사항이 있다. 항상 같은 것을 먹기에 "그냥" 해물수제비라고 콕 집어서 말해야지 아니면 먹던 대로 주문이 들어간다. 그냥 혼자 너무 자주 오니까 하는 자동 주문에서 수동으로 바꾼 형태랄까? 그래서 특이한 1인분 곱빼기 주문에도 주방 이모에게 혼자 오는 젊은 손님이라고 말하면 바로 통과다. 

남원 큰집 해물칼국수에서 먹은 얼큰손수제비(곱빼기)


포항 여행 중에 먹은 감자 수제비

  그리고 여행을 가다 보면 가끔 수제비를 하는 곳은 눈길이 간다. 포항을 갔던 때인가?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혼자 밥을 먹기에는 너무 번화가라서 오히려 찾고 찾아서 수제비 한 그릇에 김밥 한 줄을 먹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먹는 수제비 한 그릇이지만, 어쩐지 포항에서 먹은 수제비는 뭔가 허전했다. 김밥을 한 줄 먹고도 부족한 마음에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마셨다. 곱빼기가 아니라서 그럴지. 역시나 혼자 곱빼기를 먹어도 눈치 볼 것 없는 단골이 제일이다.

  어느 날, 단골 식당에서 결제 중에 남자 사장님이 묻는다. 

  "왜 혼자만 오세요? 여자 친구랑도 오시지."


  '역시 내가 여자는 없어 보이나?' 

   생각해보니 일하면서 내가 여자가 있다고 떠들어도 믿지 않는 분위기는 항상 느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을 혼자 즐기는 습관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애써 말하기 뭐해서 변명을 뱉는 말이 아닌 먹는 입으로 솔직하게 답을 했다.  


  "그러게요. 맛있어서 혼자 막 오게 되네요."


  생각해보니 수제비를 참 좋아하지만, 혼자 먹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왜 꼭 2인분 이상이어야 주문이 가능한 음식들은 나 같은 혼밥족에게도 사람을 찾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게 곡성에서 먹는 참게 수제비와 구례의 다슬기 수제비가 아닐지. 

곡성과 구례 사이에 섬진강 쪽 참게 수제비

  여기는 사람이 고플 때 찾는 맛집이다. 섬진강에서나 먹을 수 있는 참게 수제비는 한 시간 전에나 예약해야 나오는 음식이다. 그것도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하다. 솔직히 2인분은 혼자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곱빼기 까지는 혼자 먹어도 눈치가 안 보이지만, 역시 고깃집에서 혼술 느낌이 나서 포기했었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타인과의 추억을 쌓았다. 그중에는 나를 위해서 애써준 동료나 평생지기 친구나 헤어진 여자 친구도 있었다. 다양한 인연으로 맛봤던 순간이지만, 추억만큼 맛은 그립다. 

  항상 누군가 오면, 출발 전에 주문을 하고, 이동하며 군침을 흘렸다. 묘하게 달짝지근한 맛이 매력이다. 그러면서도 칼칼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수제비 중에 단연 최고 아닐지. 겸사로 다슬기 전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 딱이겠는데, 운전해야 해서 그건 못해봤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사무소 인근 다슬기 수제비

  그래도 혼자서라도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 고향에 내려와서 맛집을 모를 때. 한동안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사무소 근처에 수제비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지금의 단골집을 모르기도 했고, 혼자 드라이브하기 딱 좋은 거리였기에 가능했다. 

  전남 구례를 가면 다슬기 수제비가 유명하다. 그 메뉴 하나로 건물을 올린 곳도 있고, 섬진강 주변이라서 다슬기가 많아서인지 모르겠으나 맑은 국물에 시원함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쫄깃한 수제비와 톡톡 터지듯 씹히는 다슬기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맛을 낸다. 사실 국물로도 술 한 잔 부르는 맛이다. 

남원 산내면 다슬기 수제비

  신기하게도 지리산 근방에도 다슬기 수제비가 제법 많다. 물론 이곳은 2인분을 기준으로 팔고 있어서 근무하는 기간에는 지인들을 몰고 가서 주문해서 먹었다. 투박해 보이지만, 사장님 인심과 자부심으로 먹다 보면 국자에 손이 자꾸 가는 맛이었다. 그리고 냄비까지 싹싹 긁어 남은 다슬기까지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놓았다. 


  역시나 나는 수제비를 좋아한다. 그것도 곱빼기를 좋아한다. 억지로 먹는 것도 아니고, 좋아서 멀리도 찾아가는 밀덕후다. 사실 가끔 수제비와 관련된 글을 올리면서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 모를 때가 있었다. 적당히 먹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에 남긴 양이 제법 많았다. 게다가 다양하게도 먹고 다녔다. 참 별나게 좋아하는 티를 냈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내 마음을 살짝 남기고 싶었다.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해야 좋을까? 과연 잘하는 것은 있던가? 아마도 자존감이 떨어지는 어느 순간이 절정으로 다다른 상태였다.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모든 것을 접어 두었다. 먹는 것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저렇게 좋아하는 수제비를 얼마 먹지 못하고 남기기까지 했다. 그런 가운데 꼭 가야 한다면 어떻게 할지 마음을 먹게 해 준 것이 의외로 음식이었다. 


   수제비


  누구에게나 그러한 음식이나 장소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많아도 마냥 편안하고 좋은 것들. 나는 수제비를 곱빼기로 먹고 기운 차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주제로 내가 즐겨 쓰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행복하다. 


  든든하게 먹은 추억으로 어차피 앞으로 나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내가 먹는 단골 수제비 집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으면 살짝 물어봐도 될 것 같다. 혼자 와서 얼큰 해물 손수제비 먹고 가는 남자 글을 보고 왔는데, 아직도 먹으러 오는지? 그럼 아마 방금도 곱빼기 먹고 갔다고 웃으며 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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