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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an 09. 2023

섬진강에서 닭볶음탕 먹어봤니?

남원 <섬진강 매운탕>에서 과거의 맛을 느낀다

식당을 들어오는 길은 도로 바로 옆이다.

  섬진강에서는 유독 매운탕 집이 많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다 보면, 다슬기를 이용한 탕이나, 전 혹은 매운탕이나 튀김을 파는 경치 좋은 곳이 많다. 사실 지리산에 있을 때는 계곡이 있어서 그랬지만, 지금은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유유히 강만 흐르고 있다. 그런데도 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는 맛 좋은 식당들이 많다. 딱히 남원이 아니더라도 섬진강은 그러한 경계를 넘어서 흐르고 있으니까. 맛의 지도도 그렇게 흘러간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부모님을 보시고 가끔은 섬진강 경치 좋은 곳에서 매운탕을 먹긴 했다. 수제비도 제법 좋아하니, 다슬기나 참게를 넣은 수제비는 별미라서 종종 지인과도 먹었다. 그런데 닭볶음탕은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어릴 적에 몸이 약한 나를 위해서 삼겹살 다음으로 많이 먹던 닭백숙과 닭볶음탕. 그래도 닭백숙은 집에서 먹는다고 해도, 닭볶음탕은 자주 가던 천변에 있던 평상 있는 식당이 있었다. 그때는 내 나이쯤 되는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가끔 나오는 비상금으로 사주셨던 음식이었다. 붉게 물든 닭이 요즘에는 여러 소스에 범벅이 된 치킨에 익숙하지만, 과거에는 닭은 튀긴 것과 백숙과 붉은 것은 닭볶음탕 정도였다.


  매울 것 같지만, 달다. 순한 맛의 고전적인 닭볶음탕은 닭 기름과 고추장이 섞인 국물이 밥에 닿으면, 씹을수록 찰지게 달았다. 거기다 큼지막한 뜨거운 감자를 으깨서 먹으면, 어느덧 밥 한 공기로는 부족했다. 물론 씹을 때는 잘은 닭 뼈를 조심해야 했지만, 맛이 좋으니 수박씨 뱉어내는 것처럼 입안에서 골라졌다. 요즘으로 하자면, 순한 맛 치킨이라고 해야 할까? 그랬다. 순화한 단어로 ‘닭볶음탕’이라고 했지만, 아직도 ‘닭도리탕’으로 더 익숙한 음식. 나는 요즘 그것을 참 먹기가  힘들었다.      

  아마 혼자라면 절대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경치도 그렇지만, 푸짐한 양에 남기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강물처럼 여럿이 떠밀리듯 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렇게 먹었던 음식이 관내에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혹여나 지인이 와서 내가 밥을 대접할 수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단순한 밥 한 공기 나오는 것은 내가 미안할 테니. 이런 추억도 함께 먹으면서 경치도 본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식사 전에 나온 김치전을 시작으로 역시나 감자가 인기였다. 살코기는 남아도 초반에는 모두 감자를 하나씩 집었다. 역시나 소스와 감자의 달콤한 단맛은 닭볶음탕의 일품이 아닐지. 거기에 돌솥에 지어놓은 고슬고슬한 밥에 이후에 먹을 누룽지는 과식을 부르는 맛이었다. 아무리 배가 부르다지만, 누룽지는 먹게 되는 이유는 뭣 때문일지. 평생을 살면서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아직은 눈이 녹지 않은 미끄러운 길. 그리고 눈밭을 무대로 뛰어다니는 백구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좀 유난스럽지만, 그 모습도 배부른 뒤에 본 후라서 너그럽게 손을 내어줬다. 자기 딴에는 반갑다고 하는 행동인데, 살짝 크다고 물러나면 동물이라도 무안하겠지?

  눈도 오고, 친한 지인들도 있고, 백구도 반겨주는 곳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으니, 섬진강이 더 잘 보이는 것은 역시 기분 탓이겠지?     

무척이나 발랄한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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