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투다리>에서 꼬치 먹은 이야기
한 20년 전에는 <투다리>가 유행했다. 일본 선술집의 분위기를 담으면서 약간의 내 공간이 마련된 조촐한 공간과 적절한 조명이 고급스러움을 뿜어냈기 때문이랄까? 친구들과 연인들 혹은 직장 동료 사이에서는 2차로 가기 좋은 술집이었다.
나도 친구들과 혹은 여자친구와 함께 왔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투다리>는 지방의 어느 곳에서도 있었고, 서울에서는 커브 들어가는 골목 어느 장소에는 존재했던 흔한 술집이었다. 지금이야 이자카야 술집이나 다른 먹거리가 많았지만, 회식 아닌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장소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난 이곳에 오면 무조건 염통꼬치를 먹었다. 사실 주메뉴가 아님에도 오롯이 나를 위해서 시켜 놓은 내 최애 안주였다. 별다를 것 없는 꼬치에 조용한 나도 목소리를 내보았던 안주인 염통꼬치는 과거의 나의 요구르트 같은 음식이었다.
중학교를 다닐 쯤에 학교 앞에서 염통꼬치를 파는 노점이 있었다. 트럭을 개조해서 가끔 오는 염통꼬치 장수 부부는 남자 학생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서 작정하고 하굣길에 냄새를 피웠다. 불판 위에 올라간 꼬치에 익어가는 연기는 가던 자전거를 붙잡고, 돈 있는 아이들이 몇 개 먹는 모습을 시작으로 이미 나도 함께 하는 중에 들었던 생각.
'아 감질나게 먹지 말고, 왕창 먹었으면 좋겠다.'
1개에 300원 하던 것을 한껏 양보해서 3개를 먹어도 배는 차지 않았다. 매운 소스와 그냥 먹는 것으로 번갈아가면서 먹다 보면 10개는 먹어야 하겠는데, 그러기엔 너무 나에게는 주머니가 가벼웠다. 그래서 그 후로는 염통꼬치만 보면 일단 먹고 봤다. 그리고 그 장소가 거의 <투다리>였다.
아마도 나에게 투다리란?
부족한 내 마음을 대변하는 음식 같다. 그리고 간간히 떠올리는 추억도 함께 묻어 나온다. 남들에게는 그냥 그럴 음식이지만, 내가 좋아해서 먹고 싶었기에 종종 먹었다. 그랬기에 그 틈 속에서 지층의 결이 생겨서 추억도 보였다. 낡아버린 간판의 투다리에서 내가 먹었던 꼬치의 개수만큼은 아니겠지만, 드문드문 생각나는 과거에 내 모습에서 적잖게 미련이 남았나 보다. 아직도 내가 염통꼬치를 챙겨 먹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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