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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ug 09. 2020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들이 되어봅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두근두근 내 인생 中
김애란




#
사실 저는 늘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꿈이라고 믿었던 나의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하루가 두려웠습니다.
처음에 갖었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빨리 이 모든 상황이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끝난다는 것은...
회복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꼭 회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
아이가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있은지 5년이 되었습니다.
아직 어리니까 일어날 거라 믿었습니다.
건강하게 회복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리면 그만큼 세포가 빠르게 성장해 암의 성장 속도도 같이 빨라진다고 하네요.

없어지길 바랬던 종양이 머리의 절반가량 차지했다는 걸 알게 해 준 MRI 결과를 본 날 저는 절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대단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무엇이 되고 싶거나
무엇을 간절히 하고 싶거나
그런 건 없었지만

그저 아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작은 꿈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꿈이
지금은 너무도 대단한 바람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다시 이룰 수 없겠죠.

딸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는일
쇼핑을 하는 일
식당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일
그리고
학부모 모임이나 졸업식에 가는 일

모두 나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습니다.



#
5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오늘을 살았습니다.
현실을 살아내기 버거웠습니다.

매 순간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일어나면 이 모든 현실이 꿈이길 바랬습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늘 나의 옆에서 조잘거리던 아이가
왜 아직 누워있는지

그 현실을 인지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
나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았습니다.
잘못했던 날들만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은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화풀이할 곳이 없어 내내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체념하고 다시 또 울고 또 받아들이고
그렇게 나의 하루는 온통 아이의 하루가 되었습니다.



#
끝나지 않는 터널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는 많은 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
그러다 이 자리가 내 자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결국 내가 돌아올 곳은 이 자리라는 것을요.

아이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 실낱같은 희망이 이 시간을 버티게 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정말 알아버렸습니다.
수많은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자체가
지나고 보면 너무 그리울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늘 도망치고 싶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잡고 싶습니다.

내일보다 조금 더 건강한 아이의 오늘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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