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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ug 26. 2024

아빠의 인내

인생은 열심히 살아도 가끔 뜻대로 되지 않기도 하더라.

생은 열심히 살아도 가끔 뜻대로 되지 않고, 노력의 결과가 꼭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빠의 삶을 통해 배웠고 그런 아빠가 삶 속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로 인내를 키워 올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아버렸다.




 2018년 2월, 아직은 코 끝이 시린 겨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아빠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일어서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서지도 눕지도 못한 채 소파에 앉아서 자세조차 바꾸지 못하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셨다. 당시 엄마에게 도움을 받아 첫째 아이를 함께 육아하고 있던 나는 남편이 바쁜 시기에 친정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마침 그 시기 친정에 머물고 있었다. 간호사인 내가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나는 근무하는 부서에 급하게 연락하여 연차를 사용하고 구급차를 불러 아빠를 모시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도 아빠는 휠체어에 앉은 자세로 꼼짝하지 못한 채 진료를 대기하셨다. 전날까지도 출근을 하셨던 아빠가 하루 만에 전혀 일어설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마음이 많이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출근을 하시고 할 일들을 하셨기에 큰 질병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급실은 언제나 그렇듯 많은 환자가 있었다. 응급 환자가 많다 보니 아빠의 진료 차례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고 우리는 진료를 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대기하는 시간 동안 아빠는 불편한 자세로 휠체어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앉아계셨다. 내가 계속 아빠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으면 ‘좀 나아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 채 이렇다 할 힘든 내색이 없으셨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가 불안하면서도 휠체어에 앉아서 몇 시간을 불평 없이 대기하시는 아빠를 보며 나는 ‘큰 문제가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라며 불안한 마음들을 가라앉히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했다.      


 드디어 아빠의 진료 차례가 되었다. 아빠의 상태를 확인한 응급실 담당 의사는 검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바로 누운 자세로 변경해야 한다고 아빠에게 설명을 하고 아빠의 자세를 바꾸려고 했는데 그때 아빠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셨다. 결국 담당 의사는 진통제를 처방했고 아빠는 진통제를 투약하고 나서야 겨우 앉은 자세에서 바로 눕힌 자세로 바꿀 수 있었다.      


 먼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척추의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척추 자기 공명영상촬영(MRI)을 시행했다. 검사 판독 결과 ‘척추 압박골절’이 발견되었다. 담당 의사는 아빠의 척추 압박골절을 설명하고 이 골절로 극심한 통증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척추뿐만 아니라 온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고 말씀하셨고 척추 이외에도 아빠가 통증을 호소한 부위들을 확인하는 영상 검사들이 추가되었다. 이렇다 할 원인 없이 척추에 압박골절이 생긴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골밀도 검사도 추가되었다. 아빠의 골절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원인들을 확인하기 위해 입원 후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응급실에서 오랜 시간 대기를 하고 진료가 시작되자마자 이런저런 검사를 다니시느라 피곤하셨는지 아빠는 병실에 올라오자마자 녹초가 되셨다. 밤새 통증으로 제대로 못 주무신 탓인지 아니면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투여된 진통제 때문인지 금방 잠이 드셨다. 나는 퇴근하고 병원에 온 언니와 손을 바꾸고 집으로 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놀라셨을 엄마에게 병원에서의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또 언니와 다시 손을 바꾸셨다. 그렇게 엄마와 언니 나는 돌아가며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서 주말을 보냈다.   

  

‘척추 압박골절이 있었으니 아빠가 얼마나 아프셨을까. 일어서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 원인이 압박골절에 있었구나.’ 생각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도대체 왜 아빠에게 압박골절이 생겼을까? 손주를 안아서? 골밀도가 낮아서? 그렇다고 전일까지 출근한 성인 남자의 척추가 부러지나? 그 어떤 충격도 없이?’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머리를 맴돌며 주말이 지나갔다. 척추압박골절만으로도 너무도 충격적이었는데 주말 뒤 나온 검사 결과는 우리에게 충격 그 이상의 충격이 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주었다.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잔인한 것이었다.

‘다발성골수종’

(다발성골수종: 몸에서 면역항체를 만드는 형질세포가 혈액암으로 변하여 주로 골수에서 증식하는 질환. 뼈를 침윤하여 녹임으로써 잘 부러지게 하며,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의 수가 감소하여 감염, 빈혈, 출혈이 발생할 수 있는 질병)    

특별한 사건 없이 척추에 압박골절이 생겼기에 그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빠가 다발성골수종이라는 혈액암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과 골수 안에 생긴 종양들로 뼈 통증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종양으로 척추가 압박되어 골절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참을성이 대단하신 분 같아요. 다음번에는 아버님이 조금만 힘들어하셔도 바로 병원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아빠의 담당 의사가 아빠의 참을성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아빠 삶 속에서의 인내를 새삼 생각하게 됐다. 아빠 삶 속에서 외벌이로 온 가족을 부양하느라 아빠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아빠는 엄마와 우리들에게 제대로 털어놓지도 못하시고 얼마나 불안하셨을까. 그저 아빠라는 이유로, 그저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빠는 수많은 날을 참고 견디고 묵묵히 인내하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텨오며 살아내셨을까. 아빠가 참을성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그 한 문장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나를 아프게 했다. 아빠는 우리에게 제대로 말씀도 못하시고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빠는 처음 입원을 하자마자 ‘퇴원은 언제 하냐?’고 자주 물으셨는데 그때마다 퇴원은 아직 무리라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래도 퇴원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빠에게 ‘왜 그렇게 퇴원이 급하시냐, 아직 치료 과정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씀드리면 늘 아빠는 말씀하셨다.

“일을 다 정리하지 못하고 와서 그렇지. 출근을 해서 일을 정리해야 하는데...”     


아빠의 삶에서 참는 것이 익숙해지고 단련되어서 아빠는 질병의 증상인 골 통증을 겪으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치부하며 출근을 하고, 당신의 몸이 아픈 와중에도 삶의 책임감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빠가 삶 속에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에 굳은살이 많아져 통증을 버티는 힘이 필요 이상으로 강해지신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아빠의 그 굳은살을 가장 많이 키운 것은 어쩌면 철없는 나였던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려왔다.


인생은 열심히 살아도 가끔 뜻대로 되지 않고, 노력의 결과가 꼭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너무나 잘 알 것 같은데 나는 많은 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아빠 인생의 결과들을, 노력만큼 따라오지 않았던 보상으로 부족한 결과를 맞이했던 아빠 인생의 순간들을 내 멋대로 평가해 왔다. 가장의 삶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가장의 삶의 무게를 내 멋대로 제단 했다. 어쩌면 자식의 시선과 판단 앞에 아빠는 늘 참을성을 키우며 인내하고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병상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며 생각했다.     


늘 참을성이 많았던 우리 아빠.

늘 걱정이 많았던 우리 아빠.


그렇게 나는 평생 나의 보호자였던 참을성 많은 아빠의 보호자가 되었다.

철없는 내가,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어쩌면 병환 중 제일 아빠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온 내가 아빠를 보호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생겼다는 것의 감사를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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