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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l 10. 2024

마늘

24년 7월 10일 수요일

마늘철이다. 시장에도 노점에도 마늘이 높이 쌓여있다. 내가 키웠던 마늘은 시장에 쌓여있는 마늘만큼 굵게 자라지는 못했으나 잘 썩지 않았고 맛도 향도 진했다. 마늘은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는 강인한 작물이다. 죽었나 싶어 의기소침해졌다가도, 봄과 함께 기운차게 솟아오른 푸른 마늘싹을 볼 때면 대견하고 기뻐서 절로 마음이 밝아졌다.


마늘의 재배 방법은 지역마다 달랐다. 남쪽지방에서 마늘을 키웠던 아버지는 "마늘은 덮어주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지만, 우리나라 중부 이북에 가깝게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 마늘을 키우는 모습은 흡사 갓 태어난 아기 키우듯 했다. 마늘을 땅에 심고 쌀겨나 볏짚으로 두껍게 덮어 주었다. 동네사람들의 방식을 따라서 나도 배밭에 마늘을 심고 키웠다.


겨울 작물인 마늘은 비료만 넉넉하게 넣어주면 잘 자란다. 거름기가 많고 보온이 잘 된 마늘밭에는 봄도 빨리 온다. 푸른 마늘싹 옆에서는 향긋한 냉이가 자랐다. 풋풋한  봄 향기 고팠던 사람들은 서둘러 마늘밭을 더듬어봄나물을 캤던,  마늘밭은 비닐하우스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른 봄을 만날 수 있던 보물 같은 곳이었다.

  

연례행사처럼 심던 마늘 심기를 멈추게 된 것은 닭 때문이었다. 닭들은 마늘을 좋아했다.

넓은 동네분이 양계장에서 얻은 닭 중 일부를  우리 배나무 밭에 풀어놓았다. 양계장에서 키우는 닭은 생명이 짧다. 두세 달 살고 나면 고기가 된다. 고기로 나갈 양계장 닭을 빼고 남는 닭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강한 닭똥 냄새를 참아낸 동네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다.

잘 키워보라며 우리 밭에 풀어놓은 삼계용으로 키워지던 닭이었다. 어린 테가 남아있던 30여 마리 중 절반에 가까운 닭들은 깃털이 빠진 닭, 엉덩이가 부푼 닭, 다리를 저는 닭이었다. 고기로 키워지는 것들의 충격적인 민낯이었다.


생명연장이 가능할지 의심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못 키우겠다고 갔다 줄 수도 없었다.

우선 남편은 볕 좋고 풀 많은 곳을 골라 닭장을 짓는 것으로 닭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파악하듯 이삼일 닭장에서 붙어 지내던 닭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탈출을 감행했던 것. 두더지도 아닌 것들이 어찌나 구멍을 잘 파던지, 닭들의 자유 찾기는  빠비용보다 쉬워 보였다.  집 나온 닭들은 제 멋대로의 삶을 살며, 풀을 뜯고 벌레를 잡아먹으며 아무 곳에나 똥을 갈기며 성장했다.


자유와 대지의 것들로 새 삶을 시작한 닭들의 모습은 점차 변해갔다. 듬성듬성 빠졌던 털이 새로 나고 윤기가 흘렀으며,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궁둥이의 혹도 사라졌다. 다리 절던 닭들도 꼬끼오 힘차게 노래를 부르며 수컷의 위세를 보이며 늠름하게 성장했다. 빨갛게 벼슬이 올라올 만큼 자란 수탉들은 어느 날부터 닐개짓을 하더니 배나무 위로 날았다. 닭은 날수 없다 누가 말했는가! 오리가 날 수 있으면 닭도 날 수 있다는 것을 여봐란듯 닭은 보여주었다.


케이지를 벗어난 닭의 삶은 케이지와 영상, 그리고 책에서 보았던 닭들의 삶과는 달랐다.

암탉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혼신으로 추던 수탉의 구애춤은 그리스인 '조르마'가 추던 춤에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알을 낳아 숨기는 실력은 또 어떻고? 먹이를 주지 않아도 자립적으로 살아냈으며, 튼튼한 두 날개로 날기를 좋아하는 새였다.


배밭에서 자라던 마늘을 닭들이 모두 먹어버리고 난 뒤부터 마늘 키우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몇 해 뒤 건강한 닭을  조류독감으로 모두 떠내 보내야 했던 통증을  경험한 뒤부터는 닭을 키우지 않는다.

어떤 경험들은 오래도록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고 사람을 변화시켰다. 닭을 키웠던 경험이 그랬다. 닭은 나에게 고기 이상의 의미가 되었고, 타동물을 먹잇감으로 삼는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타 생명을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어떤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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