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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l 12. 2024

매실나무

24년 7월 12일 금요일

집을 짓고 마당가로 몇 그루 과실나무를 심었다. 처음 심었던 나무는 매실나무 두 그루와 모과나무였다. 그 뒤로 심은 나무가 일본체리다. 일본체리 뒤에서 자라고 있는 산딸나무가 서 있는 곳은 이웃 땅과 경계가 되는 곳이다. 시간차를 두고 얻어와서 심었던 어린 나무들이 자라 어느덧 작은 숲이 되었다.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작은 숲에는 꽃향기가 가득하다.  매화꽃을 시작으로 일본체리, 모과나무 그리고 산딸나무가 연이어 꽃을 피운다. 날마다 작은 숲에서는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이른 아침 재재대는 새소리는 아침을 깨우는 알람소리다. 경쾌한 새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 것은 그 작은 숲 때문이다.


회초리 같던 작은 일본 체리 한 그루가 세를 확장하더니, 이제는 먼저 심었던 매실나무 자리까지 넘보는 지경이 된 지 오래다. 일본체리와 가지가 엉키고 햇살도 반쯤은 가려서 제대로 열매를 맺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매실이 열렸다. 다닥다닥 알차게 열린 매실로 가지가 꺾일 지경이다. 농부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때는 농사가 되었을 때다. 체리나무의 기세에 굴하지 않고 알차게 맺힌 열매를 보자 좋아서 절로 입이 벌어진다.


빨갛게 열리는 체리열매는 노래 부른 공으로 새들에게 줘버리고, 나는 매실을 수확한다. 해마다 나무가 내어준 매실로 효소를 담고 있다. 매실나무는 둘째 시누이집인 남원에서 올라왔다. 우리가 이곳에 집을 짓고 난 그 이듬해 봄이었으니까 20년도 더 되었다. 경상도 사투리에 목청 좋은 시누들이 모이면 집이 들썩들썩했다. 다섯 시누이중 둘째 누나목소리는 늘 나직하고 조용했다.


누나를 처음 만난 것은 결혼 전이었다. 남편이 된 그와 지인들과 함께 지리산에 가던 길, 둘이서 살짝 빠져나와 남원 누나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갔다. 음식점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크고 넓은 음식점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점심이 지난 식당은 조용했다. 누나는 우리에게 색색깔의 나물이 올라간 예쁜 비빔밥을 내어 주었다.

"너 책 좋아한다며?"

밥을 먹고 있던 나에게 누나가 던진 첫마디였다.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해."

소녀처럼 수줍게 고백하던 누나가 처음부터 좋았다. 누나는 식당을 운영했고 매형은 농사를 지었다. 점심을 먹고 매형을 따라갔던 누나네 집은 넓었고, 시골집 답지 않게 깔끔했다. 집주인의 성격이 짐작되었다.


나는 시댁식구 호칭을 남편이 부르는 대로 부른다. 그렇다고 대놓고 당사자들에게 누나, 매형하고 부르지는 않지만, 남편이나 시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매형은 잘 계시죠?"라고 안부를 묻는다. 언어는 감정과 느낌, 그리고 마음이 담긴다. 일 년에 두어 번 잠깐 만나는 누나들과 매형들을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나는  생성하지 못했고, 누나들도 내 언어를 두고 타박하지는 않았다.


남원에서 올라온 매실나무를 나는 누나나무라고 부른다. 다른 꽃나무와 과실수는 오래전에 누나처럼 세상을 떠났고, 누나나무 두 그루만 지금껏 남았다. 누나나무에서 딴 매실을 손으로 가만가만 문질러 씻었다.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해"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던 누나 얼굴이 자꾸 생각난다. 누나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 나에게 남은 친구는 책이다.


"누나, 지금은 책이 제 친구예요.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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