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행복? 드림 뭐시기, 그 촌스러운 거, 그거 뭐래?"
"왜 있었잖아, 헌사장 직속 TF."
"아아! 그 TF가 아직 있었어? 새 사장 오면 폭파되는 거 아냐?"
"강짱똘이가 살짝 바꿔서 살려놨다던데 뭐하려는 속셈인지..."
발령 후 맞이하는 첫 월요일, 액세스 공사 사람들에게 회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탄핵당한 헌사장 본인조차 퇴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예정이다. 주간 회의는 발령과 함께 작동을 멈췄고, 그 이름도 찬란한 '새행복Dream사업TF'만이 19층의 메아리가 되어 떠돌고 있다.
"어이, 유빈이, 나 좀 보고."
발령일부터 뇌가 작동하지 않는 최사원이 굳은 얼굴로 송과장을 따라나선다. 모두의 화젯거리는 단연 새 TF이지만 입사 두 달만에 지방 현장으로 발령받은 최사원에게 있어서는 본인이 이번 발령의 핵이자 최대 피해자다. 예기치 못하게 TF팀에 사로잡혀버린 정대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죽상인 최사원을 배려해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강처장이 이번 발령의 원흉이라고 한다. 송과장에게 화를 내봤자 무의미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정대리다. 송과장과 최사원 단둘이 앉은 소회의실은 오늘따라 광활하다.
"...쉬다 오고."
"..."
"거, 거..., 되게 좋아 거기. 너, 지방 살아본 적 읍지?"
"..."
"거, 그 동네 메카여. 역에, 영화관에, 카페, 마트 다 있어. 거... 그 커피 좋아하는 정대리도 거서 1년을..."
아까부터 1초도 변함없이 얼굴 전면에 내걸린 최사원의 단 하나의 표정이 송과장의 성대를 잡아 막는다. 고르지 못한 숨에 혀가 꼬인 송과장은 어설픈 위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흠, 읏흠.' 하고 내뱉는 날숨이 불편하다.
'후우우우.'
최사원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 순간, 담배에 불을 붙인 송과장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런 날은 좀 피우자. 실내고 나발이고 시*."
"..."
송과장은 번지는 담배연기를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화재경보기를 교묘히 속여본다.
"매너 지키십쇼."
시선은 비스듬히 정면에 고정한 채 무표정으로 짧은 한 마디를 내뱉은 최사원이 선뜻 일어나 천천히 소회의실의 창문을 개방한다. 세 방향의 문을 열고는 소매를 풀어 밀어 올려 부치고 입을 뗀다.
"행복추구권이 타인의 생명권에 우선할 수는 없는 겁니다."
송과장은 어이없다는 듯, 괘씸하다는 듯, 그래 알겠다는 듯 '차암나.' 한 마디를 툭 내뱉고는 고개를 꺾어 비스듬히 천정 모서리를 쏘아본다. 몇 초간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타는 담배를 가만히 놔두더니 이내 창밖으로 꽁초를 튕겨버린다.
"유빈아, 내가 그런 거 아니..."
"처장님이신가요?"
치고 들어오는 말 매무새가 제법 정대리스럽다고 느낀 송과장은 잠시 의자 등받이에 두터운 등고기를 걸치고는 한쪽 팔걸이에 왼팔을 걸쳐 까딱까딱 흔든다.
"뭐, 그리 됐다. 처장님 잘못도 아니고... 하아, 응? 막내가 가야지 으쩌냐? 응?"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유, 아니여어, 그런 거 아녀. 면허 볼 줄 아는 게, 응? 나 말고는 정민이 쟤밖에 없자네."
"강미리 사원은..."
"미리씨는."
송과장은 잠시 말을 끊고는 정면으로 몸을 돌려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안경에 갖다 댄다.
"미리. 걔는. 대리급도 넘고. 응? 괘엔히 거서 그리 돼가지고는... 걔는... 다아 볼 줄 알어. 너나 정민이랑은 다른 사람이고. 응?"
"..."
송과장은 불쑥 들어온 최사원의 의구심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이유를 얼핏 알 것도 같다. 정대리도 조심스러워하는 강사원이다. 그 급여로 버티고 있는 게 용한 인물 아니었던가. 나중에 경력 재산정은 어찌 감당하려고 저러나. 동기라고 다 같은 동기가 아닌데. 우리 때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이었는데 요즘 애들은 이렇게 한 방에 돌변하는구나 생각하니 심기가 불편해진다. 요상하게 꼬여버린 시간을 더는 못 견뎌 일어서는 송과장이다.
"생각 좀 정리허고. 얼굴 펴고, 인마. 처장님 오시면 인사는 해야 헐 거 아녀. 응?"
"..."
죄 없는 송과장이 슬금슬금 소회의실 밖으로 피신하고나니 소회의실에는 온전히 최사원 한 사람만이 남는다. 문틈으로 여전한 최사원의 표정을 살피며 빼꼼 밖을 나선 송과장은 제자리로 돌아가려다 같은 표정의 정대리를 마주하고는 우뚝 선다. 담배를 챙겼어야 했다. 경황이 없어 빈손으로 일어난 게 화근이었다. 정대리의 검은 아우라를 뚫고 제 자리에 들릴 자신이 없는 송과장이 몸을 돌리려는 찰나,
"어, 왔나."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강처장이 공기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전략처 복도로 들어선다. 송과장은 미처 멈추지 못하고 두 눈을 꿈뻑이고 서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강처장의 뒤를 따르려 한 발을 내디딘 순간 강처장 뒤로 정대리가 달라붙는다.
"처장님!"
차분하게 앙칼진 정대리의 부름에 다 안다는 듯이 까딱까딱 눈짓을 하더니 능청스럽게 겉옷을 휘두르며 자리를 찾아 앉는 강처장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쪽 다리를 반대편 다리 위에 올려두고는 일정표를 둘러본다.
"처장님, 말씀 좀.."
"돼따마, 저 가 있그라."
한달음에 달려든 정대리를 별 것 아닌 듯 멈춰 세워 손사래를 치고는 이번에는 슬리퍼를 갈아 신는다. 이내 일어서 되돌아 나가려는 듯 송과장을 향해 눈짓한다. 정대리가 놓치지 않고 따라나선다.
"처장님! 저 좀 보시고..."
"돼따마!"
훽 돌아선 강처장 눈이 매섭다. 작은 키의 마침맞은 눈높이에 그만 기가 눌려 버린 정대리는 입을 닫는다.
"니도 인자 할 때 돼따."
"..."
"새 티에프. 니, 거, 사실상 팀장이다. 고정은 니 하나데이. 니도 인자 사업 배와야지."
어깨를 짚는 처장의 손이 묵직하다. 혹 떼려다 혹 붙인 종류의 불쾌함이 밀려든다. 아니, 이건 불결함에 더 가깝다. 더러운 기분이 되고 만다. 단순히 사무실 탈출에 실패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고정 멤버가 나 하나야?'
송과장이 겸직인 건 알았지만 정체모를 TF팀의 고정 멤버가 본인 혼자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앞으로 차차 윗분들 발령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안 된다. 중부 본부로 가야만 한다. 정 넘치는 선후배들이 기다리고 있는 스위트홈으로. 지금 강처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처장님, 그게 무슨..."/ "왜 접니까!"
갑자기 끼어든 덩치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왜 접니까! 왜 제가 갑니까! 여기 정대리님이 가신다잖아요! 가고 싶어 하시잖아요!"
"돼에따 마."
"저는 지원할 때 사무 6급 지원이었습니다! 현장이었으면 지원도 안 했어요! 이런 법이..."
"여있따."
"..."
"여있따, 여있따고."
단정한 단답에 말문이 막힌다. 최사원의 화는 강처장의 내공을 넘어서지 못했다.
"최, 유비이."
작고 마른 강처장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실린다. 최사원은 순간 큰 실수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자 고개가 까딱까딱 눈동자를 따라 움찔거린다.
"쉬다 온나."
가볍게 어깨를 짚고 돌아서는 강처장이 모습을 감출 때까지 최사원은 한 마디도 더 보탤 수 없었다. 입도 몸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던 것이다. 공연히 말할 기회마저 빼앗긴 정대리야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천둥번개
<전략처 송과장> 싸가지를 밥 말아먹었고? 응?
당돌하구먼? 응? 차암나, 현장이었으면 지원도 안 했다? 아주 잘 났어 그래. 싸가지가 아주 그냥. 평소 지 선배들 으찌 보고 다녔으면 그런 말이 나와 나오길? 지가 잘나서 여기 있나 사장 바뀌는 통에 현장 안 간 줄 모르고 바보 겉은 놈이. 현장 가서 독하게 굴러봐야 인생 좀 배우지. 사회 좀 알지. 왜 평판이 그른가 했드만... 인사 안 하고 다니는 것도 지 잘나서 그런거여? 어이가 읍네.
<전략처 강사원> 저 해로운 인간
그렇게 밑밥을 뿌리더니... 이로운 대리가. 결국. 여길. 온다.
<영업처 이대리> 나이스 중부본부
와 씨, 나 최유빈이 중부 발령은 진짜 몰랐네.
<신입 단톡방(15)>
(재무 엄유미)
뭔데? 유빈이 이거 뭔데?? 연차라 몰랐다 야 ₃
(인사 김규빈)
그러게요, 저도 연차.. 갑자기 중부본부 발령 났다던데... ₃
(중부본부 김두희)
오우~ 유빈행님 여기 와요? ₃
(인사 김규빈)
야 너 알긴 알았어? 나와바바 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