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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선비 Aug 01. 2024

흠모의 연원, 관계의 비결

  아내는 간혹 나에게 한 번씩 질문한다. 자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혹은 겸양을 넘어선 자기비하에 가까운 질문을 가끔 하기도 한다. 왜 자신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해주었는지. 아내를 흠모하게 되었던 계기와 결혼 후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톺아본다.


  흠모의 연원

  아내와의 첫 만남은 2018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취업을 위해 맹렬히 돌진하던, 가진 것 하나 없던 시절에 우리는 취업스터디에서 처음 만났다. 6명이 한 조가 되어 이런저런 자료를 정리하고 서로의 상태를 피드백해주는 일종의 취업 게릴라 특공대였다. 처음 만난 6명은 모두 나이대가 비슷한 또래였다. 작은 책상 여러 개를 한데 붙여 그 주위로 둥글게 앉아 첫인사를 나눌 당시 그녀는 내 기준 4시 방향에 앉아 있었다. 통성명을 하며 조원들의 이름을 노트에 적던 내가 그녀의 이름 철자를 잘못 기재하자 이를 정정해주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도 나에게 들려주는, 평균 여성의 목소리 톤보다는 조금 낮은 그 특유의 차분하고도 밀도 있는 단정한 목소리······.


  그녀는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나와 함께 하는 스터디 말고도 다른 스터디에 동시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학원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바빴던 이유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바쁘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생활고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바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기꺼이 바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테면 바쁠 수 있다면 한껏 바빠질 수 있는 사람, 바쁜 것을 어느 정도 즐길 수가 있어 그 바쁨 위에 올라타 삶의 고삐를 잡아채고서 일상의 능률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마치 수많은 인파가 한데 섞이면서도 타야 하는 열차를 향해 각자 분주히 움직이는 서울역사驛舍의 아침 전경, 또는 테이블 회전율과 조리부터 서빙까지의 동선이 최적화되어 북적거리는 손님들로 성업 중인 식당 한복판 같았다. 나처럼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것도 벅차 숨을 몰아쉬면서도 근거 없는 여유와 습관적인 느긋함을 가진 굼뜬 서생에게 그녀의 생활력은 실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해야 할 이것저것을 시간표 위에 바지런히 부려놓고서는 그 많은 것들을 일거에 끌고 가는 모습. 난 그녀의 기관차와도 같은 삶의 태도, 있는 힘껏 삶을 굴려가는 로코모티브(locomotive)한 생동감에 매료되었다.


  스터디 시작 후 나와 그녀는 몇 개월 차이로 모두 취업에 성공했다. 나에 이어 그녀까지 취준생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을 탈피하여 심적 안정감이 확보된 직후 나는 소위 말해 그녀에게 들이댔다. 그녀에게 무엇을 핑계로 연락을 시작할지 고민을 거듭하다가 당시 새로 장만했던 싸구려 자전거를 소재로 메신저를 보냈었고,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의 메신저 대화는 현재까지 하루도 끊긴 적이 없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당시 아내도 나와의 연락을 내심 기대했다고 했다. 서로의 마음이 시차와 오차 없이 상호 반듯하게 향했던 셈이니 참으로 다행스럽고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고, 2년의 연애 후 결혼했다.


아내와의 첫 번째 데이트 당시 서울 명동에서 사먹었던 아이스크림. 이 아이스크림을 시작으로 우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이스크림을 함께 맛보았다.


  관계의 비결

  행복한 관계의 비결이랍시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이지만 사실 그 요령을 구사하는 것은 내가 아닌 단연 아내 쪽이다.

  나의 아내는 꾸밈과 거짓됨이 없는 성정의 소유자다. 이것과 저것을 곡해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며 당장의 심정을 꾸밈없이 꺼내 설명한다. 아내는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시문을 작성하는 성격이 아니며, 스핑크스처럼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로 대화의 앞길을 가로막는 고약한 심보의 소유자도 아니다. 아내는 그날의 감정을 그날 모두 정산한다. 감정 교류에 있어 매출채권 같은 외상거래가 없으니 마음속 장부가 복잡치 않고 뒤끝이 남는 대손貸損의 우려가 없다. 아내는 사고의 채도가 뚜렷하고 감상의 색감이 명징하여 아내의 언동을 받아들이는 나로 하여금 혼란함이 없게 한다. 이는 부부 사이의 혼탁함을 없애고 관계의 순도를 높인다.


  또한 아내는 내가 가장 자연스럽고 솔직한 상태에 놓여있게끔 해주며, 나의 자의식 경로를 계속해서 긍정적으로 설정해준다. 자세히 말하면, 아내는 내 벌거벗은 모든 면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동시에, 그 이면들마저도 속속들이 살피어 그 나름의 가치를 기어코 발굴해낸 뒤 칭찬 일색의 촌평까지 일일이 달아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내의 마음새는 나로 하여금 심신에 힘을 뺀 상태로, 수식의 가감이나 복잡한 함수 없이 원시의 모습 그대로 삶의 수면 위를 편히 부유하게끔 해준다. 괜히 남들 앞에서 무겁게 폼을 잡거나 딱딱하게 굴며 뻗대지 않게끔 허세의 갑옷과 자격지심의 투구를 벗겨내고, 우울과 비관 아래로 가라앉지 않게끔 온화한 부력으로 나의 자아를 구명救命해준다.


  아내를 향한 나의 마음과 나를 위하는 아내의 마음이 만나 흔연한 풍경을 이룬다. 우리는 매일 저녁 평안함 속에서 소파나 침대에 누워 추억의 수면 위를 함께 부유하며 웃음과 대화로 집안 천장을 별별히 수놓는다. 그 쏟아지는 별 아래에는 이제 갓난쟁이 아들이 손발을 바둥거리며 누워 있다.



  추신 1. 결혼식의 사회는 스터디 조원 중 1명이 봐주었다. 나와 아내의 처음을 함께 해준 친구.

  추신 2. 스터디 조원 6명은 현재 전원 취업 후 수도권 각지에 흩어져 각자 일을 하지만 지금도 한 번씩 다 같이 만나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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