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얄밉고도 야속하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그건 결코 가질 수 없고, 반대로 심드렁하여 생각지도 않던 것은 불현듯 품에 안겨있다. 성실한 계획과 간곡한 열망만으로는 가닿을 수 없어 무얼 더 해야 할지 몰라 애닳고 속끓던 것이 바로 아이를 가지는 일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라 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리 까불었는지 싶다. 당시의 내 생각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었는데, 아이라는 존재는 시끄럽고 성가신 존재인 동시에 이기적인 언동을 밥 먹듯 하는 백지상태의 작은 악마적 존재인바,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내가 그러한 존재를 낳아 기르고 이끌며 지도할 깜냥이 있을 리 만무하거니와,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가 간장종지 만하여 부모 될 만한 사람에 해당조차 되지 않으니 내 삶의 옵션에서 일찌감치 배제해버려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는 일이라곤 그저 책이나 몇 장 들추고 담배나 풀풀 피워대며 그럴듯한 뻘소리를 그럴싸하게 늘어놓는, 문과대 소속의 알맹이 없는 백면서생의 치기 어린 컨셉질이었을 뿐 숙려단행한 삶의 정향은 결코 아니었다. 삶이라는 배를 벌써 조타하기엔 당시의 난 너무 어리고 어리숙했으며, 갑판 대걸레질이나 해야 했을 놈이 키를 잡아보겠답시고 한 번 설쳐본 것뿐이었다. 나이가 들면 생이 작동하는 방식을 조금씩 알게 된다. 남들 앞에서 스스로를 정의한답시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멋들어진 푯말을 지레 이것저것 세워봤자 막상 때가 되면 전부 헛방이다. 말로만 내뱉는 생각은 가볍고 속이 비었으며 헛되다. 생각과 실제는 달라서, 생각은 대체로 무게감이 없기에 바위처럼 분명한 현실의 질량에 곧바로 바스라진다. 예측불허로 굴러오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생의 포즈는 그에 맞게 바뀌며, 단지 그뿐이다. 결혼이라는 현실을 맞이한 내가 이토록 아이를 열망하리라고는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결혼 전후로 줄곧 아내와 나는 아이를 갖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아내는 나와 본인의 모습이 반씩 섞인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그 말을 함에 있어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이런 면에선 누굴 닮았으면 좋겠고 저런 면에서는 누굴 닮는 게 나을 것 같으며 얼굴의 이모저모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면 좋겠고···. 20대 때와 별반없이 여전히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나라는 존재를 반씩이나 섞어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노라고 망설임 없이 얘기하는 아내의 말속에는 나에 대한 사랑과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내가 돈이 어떻고 집이 어떻고 요즘 세상이 어떻고 따위의 걱정을 늘어놓으면 아내는 잠자코 듣다가도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투였다. 아둔한 내가 또렷한 미래를 물으면 지혜로운 아내는 꿈과 희망을 예보해주었다. 맑게 갠 새벽하늘처럼 시계視界가 선명하고 생기가 충만한 아내의 마음바탕에 나는 탄복하였다. 나의 철없던 시절에의 객쩍고 어스름한 생각은 어느새 걷히고 없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아이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비로소 동이 터오는 것이었고, 삶의 시작이었다.
한국의 사교육 현실이 어떻고 맞벌이 부부의 육아 스트레스가 어떻고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인간존재가 한 인격체를 기르고 키운다는 것에 대한 회의와 경계 이런 것들은 모두 문제라면 문제이겠으나 우리에겐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언설은 뉴스에 있고 논문에 있고 서적에 있는 말들이었다. 아내와 나에게 있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염원은 보도와 비평과 문학을 아득히 비껴간, 마음 심부에 자리한 태곳적 본능에 속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아이를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이것은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천진한 낙관 혹은 덮어놓고 낳겠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대자연의 섭리였고 사랑의 원리였다. 이는 산천에 초목이 자라고 때마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나 이전부터 이미 그렇게 되어왔으며 원래 그러한 것이어서 불가역적이고 반박이 어렵다. 철부지 20대 때 내가 했던 작위적인 생각 몇 토막으로 만고萬古의 톱니를 멈추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기다리는 것이 전부는 아니로되,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을 경우 대체 무엇을 어찌해야만 하는가.
결혼 직후부터 피임을 하지 않았으나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피임을 하지 않는다고 쉬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 알았다. 아이는 피임을 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지만 피임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생기지 않으니 이것은 참으로 얄궂다. 누구는 하룻밤 인연에도 회임을 하고 또 누구는 속도위반에 서둘러 급히 식을 올리는 마당에 우리 부부는 이 일이 생각 외로 쉽지 않음에 어리둥절하였다.
산과産科 의사는 원인불명의 난임이라 했다. 요즘의 부부들에겐 이런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너무 상심 말고 편한 마음가짐으로 조금 더 시도해 보다가,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난임병원에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의사가 당부했던 편한 마음가짐이란 것은 말이야 쉽지 그걸 하라고 하는 순간부터는 실로 어렵게 된다. 병원 의사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문제를 나와 아내가 무슨 수로 해결한단 말인가. 불안함과 조급함이 이끼처럼 천천히 마음속에 번졌다. 이끼가 번진 마음은 미끄럽고 음습해서, 마음을 딛다 넘어짐의 반복으로 인해 사람은 서서히 멍들고 무력해진다.
한껏 간절해져보라는 하늘의 농간인 듯 여겨지기도 했다. 술을 멀리하는 것은 기본이요, 운동을 습관화하고 컨디션을 조절하고 영양을 고루 섭취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좋은 생각만 하고자 읽을 책과 볼 영화의 장르를 엄선했다. 무교인으로서의 민망함과 평소의 냉담함을 무릅쓰고 각종 신들을 찾아 기도를 하기도 했다. 가마부터 발가락까지 온 신경을 동원하여 갖은 방법을 써보았음에도 백약은 무효하였다. 그 후로 아내와 나는 문제의 원인을 본인들에게서 찾기 시작했는데, 그 말뜻 그대로 그것은 자책이었다. 컵라면을 많이 먹어서 환경호르몬에 노출된 탓인가. 어릴 적 객기로 마시고 피워댄 술담배 탓인가. 아비 될 사람이 부덕하고 경제력이 풍족치 못하여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을 저어하는 것인가···. 대학생 때 떨었던 입방정이 얄미워 이토록 늑장인 것인가···. 임신은 인간의 영역에 있지 않다. 이것은 실로 점지의 영역이다. 가족들의 태몽이나 꿈속 수태고지가 절실하였다.
결국 아내와 나는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