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기였으며 첫 유산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가 모든 것을 잃었던 일이다.
아기는 아기집에 들어앉지조차 못했다. 이제 겨우 임신에 성공하여 태명을 짓고 임신일기를 몇 줄 끄적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아기는 이름도 얼굴도 심장도 전부 마다하고서 우릴 떠나간 것인데, 가지고 간 것이라고는 태명 세 글자가 전부다. 아기는 말뜻 그대로 한사코(限死코) 우릴 떠났다. 비어버린 아기집은 쓸모가 없어 곧 무너져내렸다. 아내의 마음도 무너졌고, 나의 억장도 무너졌다. 모든 것은 무너졌다······.
임신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난임으로 인해 익히 몸소 깨달았기에, 임신 이후에도 최악의 경우가 언제든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임 판정 이후 줄곧 이어진 긴장과 염려에 지쳐 있었던 나와 아내의 가슴은 이미 굳은살에 피투성이었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임신에 성공하였음에 이제는 근심걱정의 노질을 멈추고서 마음 편히 행복하고만 싶었다. 저 멀리서 휘감아치는 불길함의 격랑激浪이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지는 하였겠지만서도, 불길함을 부득불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이유는 없으므로 그저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 아니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에두른 주의사항만으로 충분하길 빌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린 난파당했다. 난임병원에서 유산을 선고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와 아내는 소리 내어 울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아내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단어 몇 개와 말 몇 마디를 건네봤자 아내의 뚫린 가슴에 괜히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꼴이다. 깊은 구멍에 돌을 던지면 적막한 공허에 돌 부딪히는 메마른 소리만 황량히 울려퍼질 뿐이다. 아내의 슬픔은 깊고도 기구했는데, 나는 그 심연의 끝이 어디인지 차마 내려다보지 못하고 그 가장자리만을 맴돌았다. 그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누워있었다.
유산의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가 생기는 것에 논리는 없으니 아이가 사라지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논리는 없을 터라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일 터인데, 그것을 그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그저 말이 그렇다는 것이었으며, 말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유산이라면 그것은 결과인 것이고 결과에는 그에 대한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별다른 원인이 없다면 원인 없는 결과라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가···. 최악의 경우를 어렴풋이나마 생각했었던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것은 이미 예상된 파행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난삽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헝클어놓았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은 거부감이 들었다. 불가해한 현실을 소화해내기 위해 맥없는 질문들만을 되는 대로 던져대는 꼴은 꼴사나웠고, 자문은 끝없이 이어졌으나 자답은 불가능한 현실은 개탄스러웠다. 결국 답이 없는 것을 알고서도 중얼대는 넋나간 물음만이 머릿속을 배회하였다. 찾아갈 답이 없는 질문은 정처가 없어 방황할 뿐이었는데, 그 황망한 헤매임에 나의 정신은 아득하였다.
아내는 곧 소파술搔爬術을 받았다. 모든 병원이 다 매한가지인 것인지 우리가 갔던 병원만 유달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병원은 야속하게도 수술실과 분만실이 같은 층에 있었고 심지어 같은 면에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좌측 문으로는 유산과 질병으로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우측 문으로는 분만 전후의 산모와 그 남편이 드나드는데, 양쪽을 가로막는 벽이 없어 모든 소리가 이쪽저쪽을 넘나들었다. 아내는 출산을 앞둔 산모가 분만을 유도하기 위해 앉은 자세로 튕기는 짐볼이 마룻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소리를, 분만실에서 벼락처럼 터져 나오는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수술대에 손발이 묶인 채 들어야 했다. 이것은 징벌이었다. 나 또한 당시 수술실 바깥 대기실에 앉아서, 이제 막 태어난 신생한 아기들이 울어대는 눈부신 울음소리를 이를 악물고 애써 외면하였지만, 수술대에 손이 묶여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조차 없었던 아내의 당시 심정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나로서는 아내가 느꼈을 비참함을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떠나간 아기는 우리에게 슬픔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살아오면서 그 정도의 절망과 가슴 저린 슬픔을 겪어본 적은 없다. 난 여태껏 살아오면서 어떤 것들에 대해 슬퍼하였던가. 내가 슬픔이라고 알고 있었던 슬픔은 사실 슬픔이라기보다는 슬픔의 하위 호환, 이를테면 아쉬움, 안타까움, 가엾음, 후회스러움 등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것들은 말하자면 슬픔으로부터 파생된 2차 감정이었으며 감당 가능한 아류 감정이었다. 아이를 잃는다는 것, 그것은 진정한 슬픔이었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유산 당시 주변의 어른들께 그 사실을 조심히 알리면 그분들은 마음 구석에 개켜놓았던 오래 전의 같은 경험을 꺼내 들려주며 나와 아내를 위로했다. 부모님, 직장 선배들, 인생 고참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우리와 같은 아픔을 이미 겪었다. 우리만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기보다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다.
결국 아기가 생기고 말고 하는 것은 하늘의 소관이다. 인간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자연섭리의 다층적 진행과정 중 극히 일부분을 초음파와 호르몬 수치 따위의 도구 일습으로 어렴풋이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의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하늘만이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저 그렇게라도 받아들일 뿐이다. 다른 도리는 없다.
누군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임신 계획을 묻는다거나,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왜 아이를 갖지 않는지를 묻는다거나, 심지어 아이를 갖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이 사진을 해맑게 보여주며 너스레를 떤다거나······. 누군가에게 이 모든 것은 모진 고문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누구에겐 갖지 못해 원통한 필생의 원願이다. 나와 아내는 유산 이후 다행히도 다시 임신에 성공했는데, 그 사실을 가족 외엔 되도록 알리지 않았다. 소식이 알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우리가 홍보하고 광고하지 않았다. sns에 올리지도 않았고(나와 아내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 메신저 프로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지금은 정말 감사하게도 아이를 낳아 잘 기르고 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던 때의, 빛도 끝도 보이지 않는 동굴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그 심정을 나와 아내는 안다. 우리는 남들이 먼저 물어오지 않는 이상 구태여 아기와 관련한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아들 사진을 자랑하듯 보여주며 뿌듯해하지도 않는다. 나와 아내는 알고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말 못 할 고민이자 천추의 한이며, 생각 없는 말과 행동이 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넣는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세상 모든 난임부부들에게 기쁜 소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