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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선비 Jul 25. 2024

아내 몰래 쓰는 일기

들어가는 글

  내성적인 남편을 둔 아내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결혼식 때 내가 노래를 불러줄 것을 내심 바랐던 아내의 원을 나는 애써 피했다. 생에 오직 한 번뿐인 축복의 자리에서 아내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가족친지는 물론이거니와 생면부지의 손님들까지 모인 잔치 중간에 무대 복판에서 마이크를 잡는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는 심경이 더 중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음정을 떨고 박자를 틀려도, 눈 한 번 질끈 감고 한껏 소리를 질러도 모두 너그러이 들어주었을, 심사위원이나 채점표 따위는 없는 화목과 감축의 무대라는 사실을 나 또한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싶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남들 앞에 굳이 나섰을 때 견뎌내야 하는 남사스러운 순간은 필히 우회하고 싶다는, 나의 30년 일평생 속 매 순간을 길라잡아 온 소심함이라는 천성을 나는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축가는 아내의 친구가 불러주는 곡 1곡으로 끝이 났고, 아내로서는 식을 한 번 더 올리지 않는 한 남편이 부르는 축가를 들을 일은 영영 없게 되었다.


  가정을 꾸린 후에도 아내의 결혼생활은 퍽 단조무미했을 것이다. 신혼집을 마련한 후 남들은 한두 번씩은 하는 왁자지껄한 집들이도 벅적거리는 게 싫다는 이유로 마다하였고, 남들에게 은근히 내세울 만한 본격 기념일 이벤트 따위도 일절 없었다. 기껏 하는 것이라곤 편지를 가끔 써주거나, 맛있는 요리를 선보여줄 거랍시고는 괴식을 만들어내어 식고문을 시키거나, 아침저녁으로 사랑한다는 말 몇 마디를 건네는 정도의, 진부한 것이 전부인 사내를 남편으로 맞이한 사람, 나의 아내······.


  그럼에도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맞춰주는 아내를 둔 남편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마치 구멍 뚫린 바퀴와도 같아서 얼마 굴러가지 못하고 진작 주저앉았을 내가, 온전치 못해 번번이 퍼질러져서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한 채 망연茫然히 자실自失하곤 하는 내가 그럼에도 여태 어찌저찌 앞으로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내 옆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숨을 불어넣어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격려와 응원, 믿음과 사랑을 끝없이 불어넣는 심적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나로 하여금 기꺼이 펜을 들어 편지를 쓰게 만드는, 흔쾌히 앞치마를 두른 채 도마 앞에서 식재료를 다듬게 만드는, 흔흔히 밤낮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만드는, 내가 사람으로 기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자 내가 사내로서 행복하기 위한 선결조건, 나의 아내······.


  나와 아내는 어느덧 4년차 부부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얼마 전 득남하기도 했다. 생에 대한 미숙함, 크고 작은 고난, 일터에서의 수난, 내핍으로 박이는 삶의 굳은살······. 이 모든 일상의 굴곡과 삶의 등락을 나와 아내는 함께하고, 이러한 생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이랑과 고랑에 우리는 웃음으로 파종하고 눈물로 관수함으로써 가정을 일구어간다.


  인생이라는 척박한 영토를 가족이라는 윤택한 농토로 개간하는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싶었다. 아내 모르게 한 번씩 일기를 써보고자 한다. 말수가 적어 도통 무슨 생각인지 모를 요령부득의 남편이 나중에나마 쑥스럽게 건넬 작정으로 끄적이는 몇 줄의 연서戀書이자 활자로 털어놓는 고해告解. 이 글들은 부르지 못한 축가를 후회하여 뒤늦게 무대 한켠에 오른 한 사내가 부끄러움을 견디다 못해 뒤를 돌아 부르는 세레나데이자, 때때로 쉽지 않은 일상에 굴복하여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작성하는 자조의 반성문이자,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와 아들의 존재 및 그들의 무사강녕함에 감복하여 단정히 읊조리는 감사의 기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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