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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선비 Oct 10. 2024

뱃살은 오로지 덧셈,  머리는 오로지 뺄셈

  배는 나오고 머리는 빠진다. 머리가 나고 뱃살이 빠져야 하는데 자꾸만 반대로 된다.


  비록 복근을 가져보거나 상의탈의 퍼포먼스를 해본 적 없고, 하여 몸짱 사조思潮의 첨단을 달려본 경험은 전무하지만, 20대 때까지만 해도 몸무게가 좀 늘었다 싶어 얼마간 운동을 하면 어려움 없이 원상태로 돌아갔었다. 영화배우들이 배역에 맞게 몸무게를 늘리고 줄이는 것처럼 나도 그에 못지않게 나름 몸무게를 관리하곤 하였으며, 내 몸이 내 의지대로 관리된다는 그 주도권 장악의 희열에 심취한 나머지 나는 나의 육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지도편달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따라서 살 빼는 일이란 일도 아니며, 그저 귀찮음에 잠시 미뤄 둔 책상정리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치울 수 있는 정도의 일이었다. 분명 그랬었다. 20대 때까지는.


  나이 30을 넘기고 나니 몸뚱이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 이러한 비극적 변화는 거짓말처럼 돌연한 것이어서 마치 듣던 음악이 순간 장조에서 단조로 바뀌는 듯 순식간인데, 건반 위 손의 위치가 크게 바뀌지 않음에도 타건 지점을 몇 개 바꾸어 곡조를 변화시키는 것처럼 그 과정은 미묘하면서 결과는 확연하다. 나는 내 육신의 주도권을 잃었으며, 고삐 풀린 육신은 이제 제멋대로다. 뭘 먹지도 않았는데 뭐라도 먹었다는 이유로 그것들이 전부 일렬종대로 가차 없이 살로 향하는데, 가는 방향이 뱃살 아니면 옆구리살로 일방통행이다. 가슴에 붙은 살도 운동을 게을리하는 순간 흉하게 쳐지는데 가슴만 놓고 보면 이게 여자 가슴인지 남자 가슴인지 분간이 어렵다. 두꺼워졌으면 싶은 곳들은 얇아지고, 제발 들어갔으면 싶은 곳들만 튀어나오는 인간 육체의 청개구리 같은 성질은 얄밉고 얄궂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배 안에서 차오르는 물을 빼내듯, 끝도 없이 찌는 살을 빼기 위해 쉴 새 없이 팔굽혀펴기를 하고 턱걸이를 하고 뜀박질을 해보지만 그마저도 늙어갈수록 그 효과는 미미해져만 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배에 살이 차오르는 속도는 삽시간이며, 그 침몰과 쇠퇴는 걷잡을 수 없다. 운동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팔다리는 금세 얇아지고 배와 옆구리는 끝을 모르고 튀어나오니, 외계인 체형과 거미 형상을 피하기란 녹록지 않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사람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우니 사람답게 사는 삶은 쉬운 삶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배가 나온 모습을 보며 인간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 모습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모순적이게도 결국 인간적이다. 그 모순을 끌어안고서 우리는 늙어간다.


  머리를 감으면 샴푸 묻은 손에 머리카락이 십수가닥이 들러붙어 있는데,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서늘하다. 이렇게 빠지는 만큼을 벌충할 정도로 많은 머리카락이 새로이 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토록 꾸준한 유실로 인해 언젠가는 민둥산이 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계산기를 두들겨보지 않아도 이미 계산이 끝난 머리숱은 줄어만 간다. 이마 양 끝단이 점점 정수리로 올라간다. M자 대열로 후퇴를 거듭하는 모발 전선에는 패색이 짙다. 빛 밝은 곳 아래 서 있으면 거울로 나의 두피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렇게 보이는 두피 안쪽을 속알맹이라고 하는데, 속알맹이가 보이면 소갈머리가 없다고 부른다. 나는 점점 앞머리도 없어지고 윗머리도 없어지는데, 주변머리가 없고 소갈머리가 없다는 뜻이 바로 이런 뜻이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빠지는 머리카락이 망가진 것들이라면 모르겠으나 멀쩡한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대니 아까워 죽겠는 노릇이며, 그나마 있는 머리카락도 얇아지고 흰색으로 바뀌어간다. 이렇게 머리카락은 얇아지고 빠지는데, 다른 털들은 두꺼워지고 빽빽해진다. 콧털은 며칠만 방심해도 밖으로 기어 나오고, 이제는 귓구멍에서도 털이 자라서 귓바퀴 밖으로까지 한 번씩 삐져나온다. 필요한 머리털은 안 나고 엄한 콧털과 귓털만 수북해지는 모양새가 아주 가관이다. 내 몸이 나를 놀리는 건가 싶다. 뱃살은 오로지 덧셈인데, 반대로 머리는 오로지 뺄셈이다.


  내가 가졌던 것이 비록 미모美貌까지는 아닐지라도, 분명 젊음이라고 불릴 만한 풍족함과 찬란함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말이다. 이젠 나에게서 그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찾아낸다 하여도 이를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게 되었다. 원래 젊음이라는 것은 길가에 널린 강아지풀처럼 애써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젊음은 당연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젊음을 유지하는 데에는 점점 더 많은 품과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이 들게 된다. 나 또한 헬스장에서 하루 2시간씩 시간을 보내고 싶고 집안에 운동기구를 이것저것 구비해놓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불가하다. 나만의 시간은 없고 나만의 공간은 없다. 이 부족한 시공간이 불만이라기보다는, 이것은 어쩔 수 없음이다.


  하루하루 꾸준히 볼품없어져 간다. 특별할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수많은 그저 그런 아저씨들 중 한 명이 되어 그 속으로 점점 섞여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나는 발견하는데, 그렇게 아저씨들 틈바구니 사이에 들어가고 나면 나는 나를 구별해 낼 수가 없다.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던 청년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초조함과 피곤함에 절여진 채로 가자미눈과 옹졸한 입매를 가진 거뭇거뭇한 사내만이 남았다. 돈을 벌긴 버는데 끝장나게 버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하긴 하는데 끝내주는 몸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육아를 하긴 하는데 어딘가 계속 못 미덥다. 이것도 챙겨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신경 써야 할 듯한데 그 전부를 손에 쥘 능력은 없으니 그 교차로 가운데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렇게 이것과 저것의 뒤꽁무니만을 쫓으며 허덕대다 보니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이 시간은 이렇게나 많이도 흘러버렸고, 체력은 어느새 바닥이고, 뱃살은 흘러넘치고, 머리숱은 숱하게 빠져버렸다. 아하, 나이듦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혹독한 것이었다... 젊음은 찬란하되 냉정하다. 젊음은 걷던 걸음을 멈춰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며,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젊음은 많은 나날들을 나와 함께 걸어주었지만, 그렇게 함께 걷다가 어느샌가 골목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리고, 그러면 가던 길 위에 덩그러니 나이 먹은 나뿐이다. 이제 고작 30줄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때에 맞지 않으며 함부로 까부는 것임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는 나의 어제와 오늘 사이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한 채로 이런 잡설들을 글로써 신음하듯 내뱉을 뿐이다.

 

  결혼 전 사진들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 아내와의 연애 시작 시점부터 웨딩촬영까지의 사진들을 가끔씩 보면, 사진 속 저 남성이 과연 나인가 싶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얼굴에 생기가 넘치고 풍성한 머리숱에 턱선이 날렵한 남성은 꽤 봐줄 만하다. 나의 아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나는 지금의 아내를 오늘 처음 봤어도 연애감정이 들 것 같은데, 반대로 아내가 지금의 나를 오늘 처음 보았다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듯하다. 용모단정했던 그 시절은 휴대폰 앨범과 뒤덮인 살 속에 숨어 있다. 나란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냐마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핑계로 늘어난 옆구리살을 모른 척한다. 그렇게 옆구리살을 큰 사이즈의 옷으로 숨긴 채 오늘도 맥주를 들이켠다. 볼품없으며 볼썽사나운 이 모습을 옆에 달고 사는 아내의 입장은 어떠할 것인가. 아내는 분명 이런 생김새의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었다. 함께 결혼식을 올렸던 청년은 어느새 없고, 추레한 얼굴의 배 나온 아저씨가 오늘 하루도 이게 힘들었다 저게 힘들었다 투덜대면서 연거푸 맥주캔만 따고 앉았으니 아내 된 사람 입장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일 게다. 면목面目이라는 것은 얼굴의 생김새라는 뜻인데, 작금의 나는 아내에게 정말이지 면목이 없다.


비싼 돈 주고 맞춘 예복정장도 늘어난 뱃살 때문에 입을 수가 없다. 맞춤정장을 마다하고 뱃살을 입고 다니는 주인으로 인해 예복은 옷걸이가 대신 입는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요즘 하고 다니는 스포츠머리도 없는 머리가 더 없어 보이고 나이는 있는 대로 들어 보여서, 다시 옛날처럼 머리를 길러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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