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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Aug 09. 2020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더라도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믿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내가 잘하고 있나? 나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물음에 확인받을 방법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 때는 학교를 빠지지 않고 잘 나오면 개근상을 주기도 하고 남모르게 한 착한 일에 부모님의, 선생님의 칭찬을 듣기도 했다. 열심히 준비한 기말고사의 성적표 한 장에 머리를 싸매며 수능특강을 풀던 그 시간을 모두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출근해도, ‘오늘부터 나는 다시 태어난다. 나는 불사조다(왜냐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하루에도 두 번씩 하기 때문에)’하며 불굴의 의지를 다지며 계획했던 일을 열심히 실천해도 ‘어이구, 참 잘했어요’하며 상장을 받지도 칭찬을 해주는 어른도 없다. ‘어이 너 참 잘하고 있어~이번에는 아주 점수가 높다구~’하는 성적표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이상 받을 수 없다. ‘이 무슨 어리광이야, 애도 아니고’ 하는 마음도 들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사실은 여전히 칭찬받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성인이 되고 나서 자신의 소질이나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며 인정받는 사람들 또한 많다. 사실 요즘이야 말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인정받고 있는 시대인가. 모두가 자신의 길을 찾아서 꿈과 현실을 모두 챙기며 어쩜 이리 야무지게 잘 살아가는지. 꿈을 좇는 낭만도 컨텐츠화 되는 시대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때로는 외롭고 의미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들 똑똑하게 자신을 알리고 가치를 창출해나가고 있는데 나는 희망 없는 꿈에 너무 많은 마음과 시간을 쏟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나를 이렇게 고민하게 만드는 나의 오랜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아이였고, 여러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곧잘 상을 받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지만 혼자서 ‘와 내가 썼지만 정말 멋진 일기를 썼다.’하면서 뿌듯해하던 날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언젠가 내가 멋진 이야기를 쓸 거라고 근거 없이 말을 했고, ‘어휴 책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데 어떻게 내가 책을 써’ 하면서도 나 또한 아무 근거 없이 언젠가는 내가 멋진 이야기를 완성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일기장에 일기를 쓰고도 어딘지 찜찜하게 문장을 마무리 짓는 날이 많아지고, 어떤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야 할지 망설이는 날들이 많아졌다. 글 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과제나 계획서가 아니면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많았고 써야 하는 글을 쓴 후에는 다른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변명 같지만 글쓰기에 대한 나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잠깐 잊어버리고 지냈었다.


 어느 날은 일기를 쓰는 텀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 카페에 갔다. 밀린 일기를 쓰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앞으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정말 왜 이제야 생각났나 싶을 정도로 명확하게 ‘다시 글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내 글을 누군가 읽어주고, 막연하게 꿈꿨던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이 들자 너무 행복해져서 갑자기 하루가 새로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멋진 이야기와 글을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렇게 확실한데 어떻게 이 마음을 잊고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날 일기장에 이 마음을 쓰며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일기를 썼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괜히 연락이 드문드문한 단체 카카오톡방에 뜬금없이 ‘나 작가가 될 거야!’하며 괜한 공언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카톡을 보내면서도 ‘정말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의심을 눌러버리고 싶은 마음에 괜한 큰 소리를 쳐보았다. 글쓰기를 계속할 거라는 그리고 언젠가는 작가가 될 거라는 결심은 그때와 다를 게 없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 공모전이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표현한 말들을 쓰지 못해서 키보드 위에 손가락이 멈춰있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이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글짓기 꿈나무였던 학생 때 또한 빨간 원고지의 한 칸을 채우는 것도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글을 쓰는 것이 간절해질수록 이상하게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하고 싶은 말들은 이야기가 되지 못하고 조각난 문장들만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맥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한다며!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글 쓰냐? 아무도 안 읽더라도 글을 써야지!’ 글쓰기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 글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마음의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고,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느끼기도 했으면 좋겠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곡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전시하고 싶듯, 사실은 나도 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일이기에 욕심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싶다. 지금은 내 글을 기다리고 읽어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래도 언젠가의 그 순간을 위해서 계속 글을 써나가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어쨌든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아무도 시키지도 않은 고민을 사서 하더라도 설령 아무도 읽지 않을 이야기를 쓰더라도 말이다. 정말로 글을 쓰는 일이 간절할 때 유튜브에서 우연히 장강명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인터뷰에서 ‘써야 할 사람은 써야 한다.’라는 작가님의 말이 참 인상 깊었다. 그래, 써야 할 사람은 써야 한다. 한 시간을 고민해서 한 문단도 쓰지 못한다고 그 글을 포기해버리면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괜히 찜찜해할 걸 알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글을 쓴다고 해서 글쓰기를 포기한다면 괜한 허망함에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릴 것을 알기에, 쓰고 싶은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설령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의 글들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일이 나에게 의미 없는 일이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그렇게 믿는다. 심지가 없는 양초에 불을 밝힐 수 없듯이, 글을 쓰지 않으면 내 마음을 밝힐 수 없다. 글쓰기는 나를 지켜주는 심지이자 내가 잃고 싶지 않은 나의 세계의 일부이다. 여전히 글을 쓰는 게 어렵다. 그리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에 혼자 고민하는 것이 가끔은 외롭고 허탈하다. 그래도 조금만 지치고 계속해서 씩씩하게 글을 써나가고 싶다. 이 일이 나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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